영어를 지지리도 못한 영문과생

영어와의 악연

글 한편 써보지 않았으면서 나는 막연하게 작가가 되겠다는 끙끙이 속이었기에 대학은 국문과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근데 막상 입학원서를 쓰려니 국문과보다는 영문과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문학보다는 영미문학이 현대문학에 접근하기 좋겠고, 국문과보다 폼 잡기 좋고, 취업에도 유리하겠기 때문이었다. 하나 더, 여학생이 많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였으리라.

근데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그건 내 영어 실력이 말씀이 아니라는 것. 믿거나 말거나 to부정사도 몰랐으니까.

명색이 우등생이었던 내가 어떻게 다른 과목도 아닌 영어 실력이 그 지경이었나. 생각하면 할수록 울화가 치민다. 누가 들어도 말이 안 되는 얘기지만 내 중학 입학 동기들은 중1 때 영어 수업을 거의 받지 못했다. 겨우 A, B, C, D··· 26자나 배운 단계에서 영어 선생님이 병역기피자로 해직된 것이었다. 그리곤 1학년 마칠 때까지 후임 영어 선생님을 맞지 못하고 1년 내내 자습으로 세월을 낚았다. 이게 말이 되는 얘긴가. 아, 교육청이 내놓은 자식이나 다름없던 내 중학 입학동기들이어!

1학년 영어 시간을 삶아 먹고 2학년 첫 번째 영어 시간. 그날 일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마침 담임이었던 영어 선생님이 물으셨다. '읽고 해석 해 볼 사람?' 나는 전날 '에헴, 영어 공부 좀 시작해 볼까?'하고 사전을 뒤져 가며 열심히 예습을 해 왔기에 손을 번쩍 들고일어나 실력을 선보였다.

Stand up. 스탠드 엎 - 위로 일어서.

Seat down. 씨트 다운 - 아래로 앉아.

훌륭하지 않은가! 또박또박 단어 하나하나에 충실한 리딩, 한 단어도 빼놓지 않은 완벽한 해석!

뭐라고 하시려나 한껏 기대에 차서 선생님을 바라봤다. 한데 선생님 표정은 전혀 아니올시다. 한동안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웃음을 참는 모습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1등으로 받았다는 녀석 실력이 이 지경이라니···' 였으리라).


얼마 후··· "그게 아니라, ‘스탠덮’, ‘씻다운’으로 읽고, 해석은 그냥 ‘일어서’, ‘앉아’라고 하는 거야."라고 수정해 주셨다. 오 마이 갓! 그때 내가 얼마나 민망했던지······.

”그래도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이야.”라는 격려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렇듯 영어 콤플렉스에 빠진 내게 복음이 전해졌으니, 당시 국어 교과서에 ‘우리말을 갈고닦아서’라는 글이 실려있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자기네 말에 자부심이 대단해서 절대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외국인이 영어로 물으면 영어를 알아도 프랑스어로 답한다. 같은 프랑스 사람이 길에서 영어를 사용하면 따귀를 때린다.'는 내용이었다.


국어 선생님은 모국어 사랑에 대해 열변을 토했고,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그건 영어 공포증에 시달리는 나를 유혹하는 악마의 속삭임이었다.

'우리에게는 세종대왕이 창제한 자랑스러운 한글이 있는데, 왜 영어를 해야 한단 말인가. 프랑스인은 처럼 주체성을 가져야지.'


그때부터 골칫덩어리였던 영어가 내게는 이솝 우화의 신포도가 돼 버렸다. 이렇게 신포도만 바라보며 자위했으니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영어는 그야 말고 징글리쉬였다.



대입일. 당시는 대입 예비고사 합격자(커트라인이 전국 대학 입학정원의 2배수)에 한해 대학별 본고사를 치르던 시절이었다. 시험과목은 국어, 영어, 수학, 사회(선택) 4과목이었는데, 거의 주관식이고 객관식 문항은 몇 개 되지 않았다. 그러니 그 괴물 같은 과목의 주관식 문제는 언감생심 엄두도 나지 않았고, 객관식도 내게 우호적인 문제는 보이지 않았다.

어쩌겠는가. 내게 주어진 무기라고는 단 하나. 연필에 돌아가며 1, 2, 3, 4를 표해 놓고

'네가 내 운명을 말해라.'며 시험시간 내내 애꿎은 연필만 굴려댔다.


그래도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은 있었고, 다음에는 형식에 불과한 면접시험이었다. 첫 번째 방에 들어가니 교수님이 영어로 물었다.

"Where is xxhigh school located? “

난감했다. 무슨 말인지는 짐작은 가는데 영어로 답할 자신이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걍 "수원에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순간 교수님 얼굴에 붉은 빛이 스쳐갔다. 당연히 불쾌하셨을 것이다. 명색이 sky대 영문과를 들어오겠다는 녀석이 그 정도 영어가 안 된다고는 상상하지 못하셨을 테니까.

두 번째 방에 들어가니 흰머리의 교수님이 혀를 차면서

"합격은 했는데 영어성적이 이래서야, 원. 어떻게 영문과를 다니겠는가"하다가, 안경을 고쳐 쓰고는

"어허, 그래도 석차가 중상위권이네." 하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최대한 진지한 어조로 “입학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임기응변으로 난국을 모면했다.


이렇게 곡예하듯 영문과에 들어갔으니 당연히 대학 수업은 지옥이었다.

그리고 첫 학기 성적이 나왔는데··· 맙소사! 교양과정 영어강좌 2과목이 모두 F학점!

Y대 영문과 역사상 전무후무한 신기록을 세웠다.


아~ 이 놈의 원수를 어떻게 갚나. 절치부심······

의외로 돌파구는 가까이 있었다. 가장 좋은 공부 방법은 남을 가르치는 것! 그리고 대학을 다니려면 필히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입장··· 중1부터 과외지도를 시작해 고3까지 차례로 밟아 올라갔다. 망신당하지 않기 위해, 아니 생존을 위해, 철저히 사전 준비를 했다. 피나는 준비과정을 알 리 없는 학생들은 F학점 영문과생의 실력에 감탄, 감탄, 감탄······!




그 후 어떻게 됐나. 사람 오래 살고 볼 일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첫 직장으로 xxx무역회사를 시작으로 돌고 돌아 설마 하니 내가 영어 선생이 될 줄이야! 그것도 전국의 영어 수재들이 모였다는 D외고 영어 교사!

믿어 주시라. 나는 비록 영어 공포증 환자였지만 내 제자들은 정말 영어를 잘한다. 끝으로 부탁컨대, 제자들 앞에 체면을 봐서라도 내 F학점은 비밀로 해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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