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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가지 않은 길 Nov 09. 2024

사막 한복판에서 차 고장

연재소설

  오늘도 자재부는 현장의 불평불만 속에 시작됐다.

  “앵커볼트가 없어 거푸집을 세우지 못하고 있으니 이거 말이 되나?”

  건축부 차장이 무길을 다그쳤다. 신청을 어제 해 놓고 하는 말이었다.

  “물품 청구서가 아직 결재 중입니다, 차장님.”

  “이 친구야. 결재가 우선인가, 일이 우선인가? 결재는 나중에 받아도 되는 거 아니야?”

  결재 난 물품 대기도 바쁜 데, 그는 언제나 번갯불에 콩 구워 먹기 식이었다. 무길이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선 구매를 했다가 박 차장에게 말을 듣기도 했다.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물건이라도, 매번 그렇게 하면 결재는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5공구장이 식식거리며 들이닥쳤다.

  “수압은 봤는데 모래가 없으니 되덮기를 어떻게 하냔 말이야!”

  그는 암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실적을 만회하려고 작업에 피치를 올리는 중이었다.

  “공구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인샬라, 인샬라, 그놈의 인샬라. 저는 죽어라 뛰어다니지만, 업자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니 중간에 끼어 죽을 맛입니다.”

  신대리가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난감해했다.

  “이 친구야, 지금쯤은 걔들을 길들여놨어야지. 그렇게 끌려만 다니면 어떡하나?”

  “그럴 입장이나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이 나라에서는 공급자가 상전이어요, 상전. 게다가 요즘은 품귀 현상이라 제가 오히려 눈치를 살피는걸요.”     


  담맘 지역에는 지난 두 달 사이에 학교 신축 공사와 국립병원 건립 공사가 시작돼 각각 기초공사와 골조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두 공사장이 생겨나면서 골재 가격이 오름세를 타더니 2개월 사이에 자갈이 40% 모래가 50%나 뛰었고, 그나마 품귀 현상까지 빚어 걸핏하면 약속이 펑크 났다.

  그때마다 공구장과 현장 자재 담당자가 쫓아와 동네북 치듯 신대리를 다그쳤다. 잊을만하면 일이 터지니 그는 신경과민에 걸릴 지경이었다.

  “아, 잡자재가 부럽다, 부러워. 나랑 바꿔서 하자.”

  신대리가 걸핏하면 내뱉는 푸념이었다.

  그럴 때면, 무길은 신대리가 딱하긴 하지만, 한편 고소하기도 했다. 주가 때문에 속상해하는 사람의 속을 긁어대니, 그래도 싸지. 꿈 깨쇼. 내일도 펑크 나고, 모래도 펑크 날 거 거든. 히히.     


  박 차장과 여대리도 부대끼기는 마찬가지였지만, 하역이나 통관이 늦어 어쩔 수 없다는 데는 현장에서도 할 말이 없었다.


  소장실에 들어갔다 나온 여 과장이 무길에게 말했다.

  “강무길 씨, 마대를 추가로 공급할 수 있겠어? 재고가 떨어져 간다는군. 본사에서 보낸 물건은 하역을 못 해 배 위에서 잠자고 있으니······ 본사 물품은 입고가 돼야 온 거야.”

  “저도 식당에서 2공구 자재 담당에게 들었어요. 2일 정도 사용할 분량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다란 총판장은 싹쓸이했으니, 이번엔 주바일로 쳐들어갈 참인데, 가 보기 전에야 알 수 있나요.”

 “없으면 큰일인데. 잘못하면 2공구 공사가 중단될 판이야···세월아 네월아 굼벵이 하역에 목 빠지고, 통관 기다리다 날 새고, 일해 먹기 너무 힘들어.”

  여 과장이 말했다.     




  주바일. 무길에게 워닝 테이프를 선물했던 도시는 이번에도 멀리서 온 손님을 실망시키지 않았으니, 600장이나 되는 마대가 창고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매니저도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않아 가격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지 않고 5리얄에 합의를 봤다.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릴 때도 있다니! 무길이 휘파람을 날리며 차를 달렸다. 다란과 담맘을 거쳐 사막도로로 들어섰다. 여기부터 캠프까지 60km 구간은 평소도 한산하지만, 지금은 정오 쌀라타임 후라 지나는 차 한 대 보이지 않았다.      


  담맘을 지날 때부터 차가 하는 짓이 수상했다. 삐거덕거리더니 사막에 들어서자 점점 소리가 커지며 신경을 거슬렸다. 별일 있겠나 하고 그는 운행을 계속했다.     

  그로부터 20km 정도 지난 지점. 덜컹 차 시동이 꺼져버렸다. 키를 돌려봤지만 부릉대기만 할 뿐이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며,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시도해 봤으나 모두 허사였다.     

  사막 한가운데서 차가 고장 난 것이었다. 도움을 청할 차 한 대 지나가지 않는 곳에서. 어쩌다 이런 일이!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일이 닥치니 현실감이 나질 않았다.

  다시 시동을 걸어봤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열 번, 스무 번,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젠 아예 부릉대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지금 내가 어떤 상황에 놓인 거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점검해 봤다.

  ···사막 한복판에서···차가 고장 나···홀로 남겨졌다. ···지나가는 차 한 대 보이지 않는데···지금부터 4시간은 오침 시간··· 눈앞이 캄캄했다. 공포가 엄습하고, 등줄기가 서늘했다.


  사막은 그에게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았다. 에어컨 냉기는 금세 사라지고, 땡볕에 달궈진 모래밭 열기가 이리떼처럼 덮쳐왔다. 콧속과 입안이 타들어왔고 얼굴이 익을 것처럼 화끈거렸다.

  발밑에 있는 생수병을 집어 들었다. 0.5리터짜리 생수병에는 물이 1/3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 물로 구조될 때까지 버텨야 한다. 그때까지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 모른다. 눈을 감고 생각했다. 이 정도의 갈증을 못 참아서야 되겠나. 열었던 뚜껑을 도로 닫고 물병을 내려놨다.  

   

  무자비한 사막은 시시각각으로 그의 숨통을 조여 왔다. 허허벌판에 몸을 피할 곳은 없었다. 입안과 목에서 불이 나고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이대로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몸속만 그런 게 아니었다. 쏟아지는 햇볕에 노출된 몸이 불덩이였다.

  이렇게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이러다가 모래밭에 쓰러져 죽는 건가? ···남의 일이라 생각하던 ‘죽음’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모든 게 암흑 속에 잠겼다. 암흑 속을 줄지어 지나가는 장면들··· 아버지의 임종··· 폭설이 내리던 날 서울 입성··· 첫 번째 봉급 1,800원··· 5층 옥상에서 내려다보던 청춘남녀들··· 냉차 장사··· 곤봉을 찬 경찰··· 눈을 떠보니 병원··· 24시간 도서관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 한 달이 멀다 하고 쫓겨났던 가짜 대학생 가정교사··· 온갖 고난 끝에 대학입학··· 결혼이 가져다준 새로운 삶··· 분신 같은 경호와 소영의 출생······   

  

  그러나 이젠 대자연 아래 하나의 보잘것없는 미물··· 한평생 살다 가는 게 이런 것인가······?

  늦기 전에 회개하라던 전도사의 말이 귀에 쟁쟁했다. 아, 아 ~ ~ ~ 주여!    

  

  그때였다. 아련히 아내가 모습을 보인다··· 그녀는 이상한 옷을 몸에 걸치고 있다. 경호와 소영이도 나타났다. 그 애들도 아내와 같은 옷을 입고 있다··· 마대로 만든 옷이었다! 마대! 마대! 마대! 차에 실은 마대를 모두 끄집어냈다. 바닥에 넓고 두껍게 깔고 나머지로 몸을 덮었다. 머리와 얼굴도 가리고 눈과 코만 빠끔히 구멍을 내놨다. 일단 직사광선과 모랫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를 막아주니 한결 살 것 같았다.


  당장 위기는 모면했지만 이대로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희망이라면 오직 하나. 지나가는 차에게 도움을 청하는 길밖에 없는데, 지금은 사우디가 잠든 시간··· 그래도 달리 매달릴 게 없잖은가. 만에 하나의 기적에 매달려 눈알이 빠지라고 도로를 훑었다.   

  

  족히 한 시간은 흘렀다. 도로는 기적을 보여주지 않았다. 텅 빈 도로에 눈 부신 햇살만 쏟아지고 있었다. 목숨처럼 아끼물도 이젠 동이 났다.      

  그때 상황이 또 달라졌다. 순식간에 뿌연 먼지가 하늘을 덮으며 모래알이 날아들었다. 모래바람이었다! 그는 자라처럼 마대 속 깊이 머리를 집어넣었다. 지나가는 차량을 살피기는커녕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숨이 막혀 마대를 들추면 굶주린 모기떼처럼 모래알이 덤벼들었다. 모래알을 피하자니 숨을 못 쉬고, 숨을 쉬자니 모래알이 숨통을 막아놓고···정신 줄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지만···역부족···의식이 가물거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얼마가 지났을까. 희미하게 정신이 들었다. 이제는 모래알이 덤벼들지 않았다. 다시 눈을 부릅뜨고 도로를 살폈다. 차를 놓칠까 봐 눈 깜빡일 틈도 없었다. 또다시 정신을 잃으면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살을 꼬집어가며 결사적으로 꺼져가는 정신 줄을 잡아당겼다. 하지만 이렇게 오침 시간이 끝날 때까지 버틴다는 건 하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주여, 살펴주소서. 주여, 살펴주소서.··· 이때처럼 간절한 기도가 있었을까.     

  허벅지를 꼬집어대며 도로에 눈을 박았다. 그때였다. 환상을 보는 것일까? 저 멀리, 반대 방향 차선에, 검은 점 하나가 나타났다. 눈을 비비고, 또 비비고 봤다. 믿어지지 않게도 점은 조금씩 커지며 이쪽을 향해오고 있었다. 무슨 힘이 남았는지 그는 마대를 집어 들고 건너편 도로로 달려 나갔다. 결사적으로 마대를 흔들어댔다. 왜 이렇게 차 속도가 느린지···

  마침내 자동차 형태가 뚜렷해지더니, 속도가 줄어들면서, 천천히 무길 앞에 멈춰 섰다. 그와 동시에 그는 그 자리에 무너졌다.      


  밤새도록 불구덩이 속에서 몸부림쳤다··· 몸부림 끝에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몸을 감싼다. 희미한 시야에 동대문시장 병원 의사의 흰 가운이 아른거렸다. 아니, 눈앞의 안개가 걷히니, 흐느적거리는 흰옷의 남자가 그의 콧속에서 모래알을 후벼내고 있었다.

  눈을 뜬 것을 확인한 남자가 그의 입에 물을 부어줬다. 정신없이 물을 받아 마시고 나니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지옥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무길은 남자의 얼굴을 보고, 보고, 또 봤다. 두 눈에서 감격의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흰옷의 남자가 말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는지요?”

  “신에게 감사하세요. 신이 나를 보낸 겁니다.”

  무길의 사정 얘기를 들은 남자는 가던 방향에서 무길의 캠프 쪽으로 차를 돌렸다.  

   

  30분 후.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던 무길이 캠프에 도착했다. 남자는 식사 전이라고 했다.

  “그럼 우리 식당으로 가시죠.”

  “아뇨, 갈 길이 바빠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일이 있거든요.”

  중요한 일을 제쳐두고 무길을 캠프까지 데려다준 것이었다.

  “그럼 주소라도 가르쳐 주시죠. 꼭 찾아뵙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내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제게도 은혜에 보답할 기회를 주십시오. 백 분의 일이라도.”

  “고맙다고 생각하면 당신도 당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세요. 그러면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겁니다.”

  “······ ”

  “빨리 보내주는 게 나를 돕는 겁니다. 이미 시간이 늦었네요.”

  그는 끝내 이름 한 자 안 밝히고 오던 길을 되돌아 달려갔다.      


  그에게 점심 식사를 권했었지만, 식사 시간이 지난 지 오래였다. 식당은 들를 필요가 없어 곧바로 숙소로 갔다. 무릎 꿇고 하나님께 눈물로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한편으로는 살짝 심술도 나서 100%가 아닌 99.99%만 감사했다. 지난번 사고 때 ‘위험한 일에 처하게 되더라도 도울 사람이 없는 오침 시간만은 비껴가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간구했는데,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던 것이었다. 필시 당신의 능력을 좀 더 과시하려는 의도임을 무길은 짐작하고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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