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 전 인터넷신문에 잠시 발을 들여놓고 있을 때, 한 후배가 초상권 침해 문제로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다는 ‘인생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시 그는 연예인 사진을 기사에 아무런 생각 없이 사용했는데 그것이 문제였다. 내용인즉 어떤 사진작가가 연예인 사진을 촬영했는데, 후배가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그 사진이 좋아 보여 무단 사용했고 결국 초상권 침해로 소송당해 꽤 많은 돈을 배상했다는 것이다. 연예인은 공인으로 생각했기에 사진은 아무렇게나 가져다 사용해도 되는 줄 알았는데, 그 사진을 촬영한, 즉 저작권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 했던 것이다.
아침 출근길, 휴대폰을 열고 아무런 생각 없이 유튜브를 시청했다. 추천 영상에 올라와 있는 짧은 브이로그 하나를 눌렀다. 누군가의 일상이 담긴 영상,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잘 편집된 화면이 부드럽게 흘렀다. 잠시 멍하니 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영상, 이 음악, 이 글귀를 만든 사람은 누구였을까? 우리는 매일 같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그것을 만든 사람의 존재를 잊은 채 살아간다.
문명 이기의 발달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다.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것이 달라져 버렸다. 인터넷이 일상에 스며들고, 모든 것이 디지털 파일로 전환되면서, 우리는 누군가의 노력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클릭 한 번, 다운로드 한 번이면 끝이 나 버린다. 음악도, 영화도, 책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에 있는 건 그냥 써도 되는 거 아난가?”
회사 근무 시절, 한 후배가 PPT 발표를 준비하며 당연하다는 듯 말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시엔 나도 그랬다. 자료를 인터넷에서 긁어오고, 출처 없이 이미지를 가져다 썼다. 마치 인터넷상에 올라와 있는 내용은 ‘주인 없는 것’처럼 생각이 됐다. ‘어차피 누군지도 모르고, 다들 그렇게 하니까’라는 생각은 점점 습관이 되었다.
하지만 세상은 달라졌다. 유튜브가 큰 흐름이 되고,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틱톡까지 나온 마당에 누구든지 크리에티브(창작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그리고 나 역시 처음으로 블로그를 통해서 내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공유하고, 때로는 짧은 영상을 만들어 올렸다. 누군가 내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러줄 때마다 뿌듯했고, 댓글로 반응을 보일 때면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낯선 계정이 내 글귀를 그대로 복사해 올린 것을 보게 되었다. 아무 출처도 없이, 마치 자기 생각인 양 올린 것이다.
처음엔 어이가 없었고, 다음엔 씁쓸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가져다 썼던 수많은 콘텐츠도 사실은 누군가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는 걸 자각했다. 저작권은 단지 법의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의 시간을, 정성을, 감정을 담보로 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결과 한 편의 시(詩)를 시나브로 손안에 쥐게 되었다.
*이름 없는 노래
어디선가 들려온 멜로디
누군가의 새벽이었겠지
지운 이름, 흐릿한 출처
그 손끝의 온기도 지워졌다
가벼운 클릭 하나에
한 사람의 열정이 흩어진다
기억하자
창작은 바람이 아니라, 숨이다
그 숨을 훔치지 말자
나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사진을 쓸 땐 출처를 분명히 밝히고, 음악을 고를 땐 라이선스를 확인했다. 작은 습관이었지만 내 안에서는 큰 변화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사회 전체가 조금씩 변하고 있음을 느꼈다. 콘텐츠를 무단으로 사용하지 말아 달라는 창작자들의 목소리는 이제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고 있다. 출처를 밝히고, 상업적 이용 여부를 따지는 태도는 더 이상 일부만의 윤리가 아니다. 창작자와 소비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의 한 부분이 되었다.
기술과 제도 역시 뒤따르고 있다. 유튜브의 콘텐츠 ID 시스템, 플랫폼들의 자동 필터링, 라이선스 체계는 창작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장치가 되었다.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는 시대, 동시에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시대. 그만큼 ‘저작권’이라는 말이 가진 무게도 깊어졌다.
물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이 만든 창작물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을까? 블록체인 기반의 NFT는 기존 저작권 체계와 어떻게 충돌할까? 기술은 계속해서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늘 같은 물음이 있다. 이것은 누가 만들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존중하고 있는가?
저작권은 단순한 법적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노력에 대한 존중이자 창작의 숨을 지키는 일이다. 그것을 지키는 일이 어렵다고 느껴진다면, 다음을 기억하자. 단 한 줄의 출처, 정당한 사용, 작은 배려. 그것이면 충분하다.
우리는 지금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성숙해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한 사람의 창작이 지닌 무게를 존중할 줄 아는 태도는 더욱 빛난다. 그렇게 우리가 서로를 기억하고 지켜줄 때, ‘이름 없는 노래’는 더 이상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을 지켜주는 사람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