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게 질려버린 얼굴
A Whiter Shade of Pale
Procol Harum 〈A Whiter Shade of Pale〉
1967년 5월, 영국 에식스 해안에서 3마일 떨어진 북해 위에는 MV 갤럭시(MV Galaxy)라는 배가 조용히 떠 있었다. BBC가 외면했던 록 음악과 새로운 시대의 사운드를 젊은이들에게 몰래 송출하던 해적방송국 라디오 런던의 거점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배에서, 전 세계를 뒤흔들게 될 한 곡이 최초로 전파를 탔다. Procol Harum의 데뷔곡 〈A Whiter Shade of Pale〉였다.
노래는 발표와 동시에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발매 3주 만에 영국 차트 1위에 올랐고, 전 세계적으로 350만 장이 팔려 나갔다. 하지만 인기가 높아질수록 사람들은 두 가지 질문에 사로잡혔다.
도대체 이 난해한 가사는 무슨 뜻일까?
그리고 Procol Harum이란 이름은 무슨 의미일까?
밴드 이름에는 오래도록 미스터리가 따라붙었다. 어떤 이는 DJ 가이 스티븐스의 친구가 키우던 고양이의 혈통 이름에서 따왔다고 주장했고, 다른 이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고양이 이야기는 홍보팀이 지어낸 것이었고, 라틴어 해석도 억지에 가까웠다. 지금까지도 Procol Harum이라는 이름은 명확히 풀리지 않은 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작사가 키스 리드는 어느 파티에서 “네 얼굴이 완전히 하얗게 질렸네”라는 말을 듣고 강하게 매혹되었다. 그리고 파편처럼 흩어진 이미지들을 엮어 가사를 만들었다.
덕분에 이 노래는 지금까지도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충격과 당혹의 순간, 혹은 죽음에 대한 메타포
1967년 Summer of Love라는 시대의 집단적 욕망
특히 중세 농촌 사회에서 방앗간 주인은 탐욕과 음탕함을 상징했기에, 가사 속 “the miller told his tale”은 단순한 이야기 이상으로 읽힌다.
〈A Whiter Shade of Pale〉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장엄한 오르간 선율이다.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이 연주는 곡의 정체성이라 할 만큼 강렬하다. 하지만 연주자 매튜 피셔는 오랫동안 작곡가로 인정받지 못했다. 당시 대중음악계의 관행은 ‘가사와 기본 멜로디를 쓴 사람만 작곡가’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무려 40년이 흐른 뒤, 매튜 피셔는 법정에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공동 작곡가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미 보컬 게리 브루커(2022)와 작사가 키스 리드(2023)는 세상을 떠난 뒤였다. 남겨진 것은 오직 하얗게 질려버린 얼굴 같은 그들의 음악뿐이다.
We skipped the light fandango
Turned cartwheels 'cross the floor
I was feeling kinda seasick
But the crowd called out for more
우린 가벼운 판당고 춤은 건너뛰고
무도회장을 가로질러 공중제비를 돌았어
난 멀미가 날 듯 어지러웠지만
사람들은 더 하라며 소리쳤지
The room was humming harder
As the ceiling flew away
When we called out for another drink
The waiter brought a tray
방 안은 점점 더 웅성거렸고
천장은 날아가 버린 듯 흔들렸어
우리가 술을 더 달라 하자
웨이터가 쟁반을 들고 왔지
And so it was that later
As the miller told his tale
That her face, at first just ghostly
Turned a whiter shade of pale
그리고 잠시 후
방앗간 주인이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
그녀의 얼굴은 처음엔 창백하다가
점점 더 하얗게 질려버렸지
She said, "There is no reason
And the truth is plain to see."
But I wandered through my playing cards
And would not let her be
그녀는 말했어 “아무 이유도 없어
진실은 뻔히 보이잖아”
하지만 난 내 카드패만 뒤적이며
그녀를 놓아주려 하지 않았지
One of sixteen vestal virgins
Who were leaving for the coast
And although my eyes were open
They might have just as well been closed
해안으로 떠나는
열여섯 명의 베스타 무녀 중 하나처럼
내 두 눈은 떠 있었지만
차라리 감겨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어
And so it was that later
As the miller told his tale
That her face, at first just ghostly
Turned a whiter shade of pale
그리고 다시
방앗간 주인이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
그녀의 얼굴은 처음엔 창백하다가
더 하얗게 질려버렸지
〈A Whiter Shade of Pale〉은 단순한 연애담인지, 시대의 초상인지, 혹은 그냥 몽환적인 이미지들의 나열인지 지금도 해석이 분분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노래가 여전히 우리에게 말로 설명하기 힘든 울림을 남긴다는 사실이다.
하얗게 질려버린 얼굴처럼, 그때의 공기와 멜로디가 지금도 우리 곁에 남아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