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함 너머의 아름다움, 권력, 욕망, 죄와 구원의 이야기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나는 혼자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젊음의 용기로 무작정 비행기를 타고,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 바티칸 박물관 같은 유럽의 굵직한 미술관들을 한 주먹 쥔 지도처럼 들고 다녔다.
그 여행에서 잊을 수 없는 인상이 있다.
바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쟁반에 담아 들고 있는 한 소녀의 그림이다.
그 그림을 처음 마주쳤을 때는 솔직히 섬뜩했다.
너무 앳된 얼굴의 소녀가, 핏기 없이 새파란 목을 담은 쟁반을 들고 서 있는 장면이라니.
비현실적일 만큼 잔인하고 아름다웠다.
그런데, 문제는 그 그림이 한두 번 보이는 게 아니었다는 것.
미술관을 옮겨 다닐 때마다 비슷한 구도, 비슷한 표정, 그리고 똑같은 장면이 반복되었다.
“대체 왜?”
그 잔혹한 이야기를 왜 그토록 많은 화가들이, 시대를 달리해서, 그렇게 집요하게 그렸던 걸까?
이 궁금증이 너무 커져서, 하루는 유명한 유럽 미술관 가이드 프로그램을 신청해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가이드에게 물었다.
그런데... 가이드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많이 그려졌죠. 유명한 주제예요”라는 말만 돌아왔다.
답답한 마음이 들었지만, 여행이 끝나고 나는 그 기억을 잠시 묻어두었다.
그러다 최근, 다시 그 그림을 우연히 보게 되었고,
묻어두었던 궁금증이 다시 밀려왔다.
그래서 이번엔 제대로 알아봤다.
왜 유럽 미술에서는 살로메가 세례자 요한의 목을 들고 있는 장면이 그렇게 자주 등장했는지.
세례자 요한의 목을 가져오게 한 건 살로메, 혹은 헤로디아의 딸이다.
요한은 헤로데 왕이 형제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결혼한 것을 비난했다.
이에 앙심을 품은 헤로디아는 요한을 없애고 싶어 했다.
마침 헤로데의 생일 잔치에서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었고, 헤로데는 기뻐서 그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헤로디아는 딸을 시켜 요한의 목을 요구하게 한다.
결국 요한은 감옥에서 참수되고, 그의 목이 쟁반에 담겨 살로메에게 전달된다. (마태복음 14장, 마가복음 6장)
이것이 이 장면의 기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엔 정작 이름이 ‘살로메’라는 언급은 없다.
‘살로메’라는 이름은 성경이 아닌 역사학자 요세푸스의 기록에서 유래된 것이다.
하지만 미술과 문학에서는 이 이름이 굳어졌고,
살로메 = 요한의 목을 요구한 소녀가 되었다.
그 이유는 단순히 ‘성경 이야기’라서가 아니다.
살로메는 유럽 미술에서 복합적 상징을 지닌 캐릭터였다.
살로메는 소녀의 순수함과 죽음을 불러오는 잔혹함을 동시에 가진 존재다.
춤을 추는 아름다운 육체와,
사람의 목을 요구하는 섬뜩한 욕망이 겹쳐지면서
화가들은 그녀에게서 “유혹과 파멸의 상징”을 보았다.
즉, 살로메는 팜파탈(femme fatale)의 원형이기도 하다.
중세 후기에 접어들며 여성에 대한 두려움과 판타지를 투영한 결과,
살로메는 단순한 성경 속 인물이 아닌, ‘남성을 죽음으로 이끄는 유혹자’로 그려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녀는 미술뿐 아니라 문학, 연극, 오페라, 심지어 영화에서도 꾸준히 등장한다.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 등)
화가들은 살로메를 단지 잔인한 인물로만 그리지 않았다.
종종 그녀는 무표정하거나, 고개를 돌리고 있거나, 심지어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
왜 그럴까?
이는 “죄를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의 무의식적인 악”에 대한 표현일 수 있다.
살로메는 때때로 희생자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즉, 그녀는 어머니 헤로디아의 계략에 말려든 어린 소녀일 뿐이며,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한 걸까?” 하는 순진한 공포가 깃들어 있다.
이렇듯 잔인함과 순수함, 권력과 유약함, 신성모독과 희생이 겹쳐진 인물은
화가들에게 무한한 해석의 여지를 주었다.
르네상스 이후, 살로메의 이야기는 단순한 성서 장면을 넘어
종종 정치적 풍자, 종교개혁에 대한 은유,
또는 도덕적 타락을 경고하는 그림으로 사용되었다.
예술가들은 살로메의 손에 들린 요한의 목을 통해
“의인이 권력과 욕망 앞에서 어떻게 희생되는가”를 이야기했다.
즉, 살로메는 단지 살인을 저지른 인물이 아니라,
사회의 왜곡된 권력구조, 종교적 위선, 인간의 나약함을 투사할 수 있는 거울이었다.
카라바조 – Salome with the Head of John the Baptist (1607)
→ 어두운 배경과 극적인 빛, 살로메의 복잡한 표정이 인상적.
기도 레니 – Salome with the Head of Saint John the Baptist
→ 소녀의 표정은 무표정하지만, 한 손엔 쟁반, 다른 손엔 부채를 쥐고 있음.
모로조프, 브뤼게헬, 루카스 크라나흐 등
→ 시대와 지역마다 살로메의 의상, 표정, 자세가 모두 다르게 표현된다.
Q 왜 살로메 그림이 유럽에 많을까?
A 단순한 성경 장면을 넘어 권력, 욕망, 성, 종교, 죄와 무죄라는 인간의 복합 심리를 표현할 수 있는 상징이었기 때문.
Q 살로메는 죄인인가 희생자인가?
A 시대와 작가에 따라 다르게 표현됨. 때로는 유혹자, 때로는 조종당한 소녀로 등장.
Q 왜 잔혹한 장면인데도 아름답게 그렸나?
A 인간의 욕망, 도덕의 이중성, ‘죽음과 아름다움’의 충돌을 탐구하기 위함.
그림 속 살로메는 단순한 성경 인물이 아니다.
그녀는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면서도 빠져드는 욕망의 얼굴이고,
무의식적인 악의 무표정함이기도 하며,
자신이 무엇을 요구했는지도 모른 채 누군가의 운명을 바꾸어버리는 권력의 은유이기도 하다.
그때 미술관에서, 나는 그저 ‘왜 저렇게 잔인한 걸 그렸을까’ 하고 생각했다.
지금은 안다.
그건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을 응시한 질문이기도 했다는 걸.
잔인하고 무서운 그림인 줄 알았는데,
그 안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살로메는 욕망이, 슬픔이, 권력이, 인간이, 그리고 내가 들고 있는 쟁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