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티 댄싱(6)
Enter Sandman(1)
“4번 폐공장 지대에 투입된 실험체 관련 보고서입니다.”
보고서를 제출하는 연구원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약물을 활용하여 신체 확장자의 신경을 안정시키려는 실험이 지속해서 실패를 거듭한 탓에 최근 헤드의 기분이 좋지 않았다. 헤드야말로 약물 실험 실험체로 적합하지 않겠냐는 말이 부서에 우스갯소리로 떠돌 만큼 그의 성정은 불같은 부분이 있었다. 냉혈한처럼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그는 쉽게 흥분하고 욱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대전쟁의 혼란기에도 살아남아 Cade를 세계 굴지의 대기업으로 이끌었다는 자부심이 더해져 그는 쉽게 타협하거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독불장군이다. 이러한 성정은 분명 기업으로서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윤리, 도덕 같은 말랑말랑한 것들은 제쳐두고 목표에 매진한 덕에 여러 정부와 비밀리에 협약을 맺어 실험체를 공수할 수 있었고 본사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그의 목표는 일반적인 사람과 궤를 달리하는 것이라 승진, 연봉 따위의 세속적 가치는 안중에도 없었다. 워낙 사회성이 떨어져 헤드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없었지만, 이사직을 맡아달라는 요청까지 거부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그의 목적이 자신의 연구를 완수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예상하였다.
그런 사람이기에 그의 밑에서 일하는 연구원들은 날마다 좌불안석이었다. 그렇기에 저번 실험에서 결과를 내지 못한 한 연구원이 보고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화장실로 뛰어 들어간 것을 보고도 누구 하나 위로를 건넨 사람이 없었다. 그 연구원이 슬픔 같은 예민한 감정을 느끼지 않게 생긴 건장한 남성이라는 것에 당황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부서원 모두에게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 보고를 올리는 연구원이 심각할 정도로 긴장한 이유도 신입 시절 보고서를 잘못 올렸다가 본인이 실험체가 될 뻔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헤드는 연구원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4번 지대면……. 10대 실험체를 풀어놓은 곳 아닌가요?”
헤드가 안경을 추켜올리며 물었다. 연구원의 긴장된 기색을 보고도 그는 별말이 없었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힐끗 쳐다볼 뿐이었다.
“예 그렇습니다. 의도적으로 약물을 끊고 방사했습니다. 그래야 그들의 본능적인 움직임을 제대로 관찰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랬습니다. 그 때문에 추적이 어려워지기는 했습니다만. ”
“웬일로 마음에 드는군요. 그래, 결과는 어떻습니까?”
“일단 보고서를 보시는 게 나을 듯합니다. 말로 설명해 드리기 어려운 특이한 부분이 있습니다.”
헤드는 보고서를 받아 한 장씩 넘기기 시작했다. 불편한 침묵이 계속되어 연구원의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다리가 아려 상체를 살짝 숙여 다리를 주무르려 할 때 헤드가 입을 열었다.
“우연한 개입이 이러한 결과를 끌어냈다고 판단한 이유는?”
“보고서에도 나와 있다시피 실험체는 적을 배제하려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그 행동 양식은 단순 프로그래밍에 따른 것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단순 살상보다는 영역에 들어온 존재를 배제하려는 맹수의 움직임이나 사냥, 놀이에 더 가깝습니다. 기존 실험에서는 의도적인 조작이 가해져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우연한 개입으로 확실해졌습니다. 약물은 실험체의 능력을 100% 끌어내지 못합니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본성의 발현을 막아 ‘신체 확장 기술을 통한 인간의 진화’ 실험의 본질을 해칩니다. 다음 실험부터는 약물을 최소화하는 대신 연산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여 적용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확장체에 부착하는 대신 신경 중추에 직접 부착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연산에 관여하는 보조 장치가 줄어들어 연산 속도와 정보량이 감소함에 따라 뇌와 신경계에 부담이 감소하리라 예상됩니다.”
헤드는 턱에 괸 채로 연구원의 말을 묵묵히 들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과거에 사용해 본 적이 있는 방법이지만 당시에는 기술력의 한계로 거대한 보조 장치와 배터리를 사용자가 들고 다녔어야 했기에 몇 번의 실험 이후 폐기해버렸다. 현재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불안정성을 획기적으로 잡은 전지 기술 또한 상용화 단계에 있어 가능성이 충분해 보였다.
“발열은? 고성능의 전지와 보조 장치는 발열이 심각할 텐데? 사용자의 뇌를 태워 먹을 생각입니까?”
연구원은 예상했다는 듯 헤드의 말을 받았다.
“이때 약물을 사용하면 됩니다. 교감신경의 활성화를 막아 사용자에 부담이 되는 작동을 최소화하는 겁니다. 그리고 냉각과 열 방출은 설계로 충분히 극복 가능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구체적인 수치는 보고서로 정리해 올리겠습니다.”
헤드는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연구원은 속으로 한숨 돌리며 다음 질문에 대비했다.
“발상은 좋네요. 일단은 그대로 진행하는 것으로 해봅시다. 배터리 팀 하고는 내가 연락해보지요. 방사한 다른 10대 실험체들은 어떻게 할 계획이지요?”
“전쟁 이후 여론이 좋지 않습니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의견도 내부적으로 나오고 있어 감시를 그만하고 빨리 처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실험체의 행동반경이 넓어지면서 대중에 노출될 우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보안팀에 연락하세요. 우선 그것들부터 처리합시다. 나가보세요.”
명백한 축객령에 연구원의 얼굴에 안도감이 비쳤다. 다행히 헤드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았다. 뒤로 돌아 조용히 빠져나가던 연구원의 뒤로 헤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처리하는데 2주면 충분하겠지요?”
연구원은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날 저녁 보안팀은 중무장한 후 집결지에 모였다. 그들의 장비는 단순한 기업 보안팀으로 보기에 무리가 있었다. 엑소 스켈레톤을 활용한 강화복부터 로켓 런처 등의 중화기로 무장한 그들은 시답잖은 농담을 하며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정렬.”
대장으로 보이는 듯한 사내의 말에 분위기가 달라졌다. 장난스러운 모습은 사라지고 온몸에서 베일듯한 예기가 흘러나왔다.
“장비 점검하고 30분 후에 출발한다. 목표는 인간이 아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파괴할 수 있도록. 이상.”
30분 후 5인 1개 팀으로 모인 그들은 작전지로 떠났다. 작전을 향해 나아가는 보안팀의 모습에서 긴장감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 모두가 전장에서 굴러먹던 베테랑이며 최고의 기업에서 모집한 엘리트 들이었다. 그들 스스로도 살육에 프로라는 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기업의 시제품부터 스테디셀러의 개량형까지 모두 구비한 보안팀의 자신감은 대단했다.
이내 목적지에 도착한 보안팀은 흩어져 수색을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상한 흔적을 포착한 것은 가장 선두에 서서 작전을 수행하던 1팀이었다. 본거지라 예상되는 지역이 이상하리만치 깔끔하게 정리된 상태였던 것이다. 마치 의도적으로 흔적을 지운 듯 보였다. 재빨리 주변 팀을 소집한 1팀은 경계를 시작했다. 전장의 기류가 주변을 자욱이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