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불지십년 화무십일홍이라 하였던가. 영원할 것 같았던 주(周) 황실의 권위가 무너졌다. 봉건의 기둥이 무너져 황실은 황실대로, 제후는 제후대로 각자도생 하며 중원을 통제하려 하였다. 그 와중에 희미하게나마 주(周)의 종주권을 인정하고 그 명목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한 것이 바로 '패자'의 힘이었다. 여러 제후들 중 세력이 강한 패자는 회맹을 주최하여 이민족의 침략을 저지하고 주(周) 황실을 존중하여 중원의 안녕을 도모했다.
이 시기 회맹의 맹주를 소위 춘추오패(春秋五覇)라 한다. 제 나라의 환공, 진 나라의 문공, 초 나라의 장왕, 오 나라의 합려, 월 나라의 구천이 바로 그들이다. 오늘 고사성어 절영지회(絶纓之會)의 주인공은 이들 중 세 번째로 패자가 되어 한때나마 중원을 호령한 장왕이다.
"언덕의 새 한 마리가 3년 동안 날지도 울지도 않습니다. 이 새는 어떤 새입니까?"
저 멀리 스산한 바람 소리만 가득한 밤, 한 신하가 장왕을 찾아와 이리 물었다. 장왕은 피곤한 눈빛으로 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신하는 머리를 조아린 채 가지런히 모은 두 손을 벌벌 떨고 있었다. 두려운 모양이었다. 하긴 그럴 만도 한가. 장왕은 헛웃음을 지으며 눈으로 주변에 널브러진 술잔과 집기들을 훑었다.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오거, 목숨을 걸고 자신 앞에서 강단 있게 할 말을 하는 사내. 장왕은 그런 오거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급사로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험한 일을 많이도 겪었다. 아버지 때부터 불안정하던 왕권은 결국 각지의 반란을 야기했고 게다가 재위 초반, 홍수와 기근으로 민심이 흉흉해졌다. 심지어 투극의 반란으로 납치를 당하기도 했다.
이러한 정국이 진정되자 장왕은 모든 업무를 중단하고 조회를 폐지한 채 사치와 향락에 빠져 살았다. 충성스러운 대신들이 간언을 하며 국정에 힘쓸 것을 종용했지만 그는 간언을 하는 자를 용서하지 않겠다며 충신들을 뒤로하고 간신과 어울렸다. 3년간 지속된 이러한 생활 때문에 정계에는 더 이상 간언을 하는 충신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초의 국력은 나날이 쇠락해졌다.
'이런 상황에도 간언을 하는 자가 있구나.'
장왕은 이리 생각했다. 그는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오거의 질문에 답했다.
"3년 동안이나 날지 않고 울지 않았다니, 신기하오. 그렇다면 그 새는 필히 날았다 하면 하늘을 찌를 것이고 울었다 하면 사람을 놀라게 할 정도로 우렁찬 목청을 지녔겠구려. 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았으니 이만 물러가시오."
오거는 장왕의 대답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향락에 빠져 방탕함의 끝을 달리던 왕이, 간언을 하는 자는 용서치 않겠다 선언한 왕이 자신의 간언을 듣고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저리 말한 것이다. 오거는 장왕에게 진심 어린 인사를 올리고 조용히 물러갔다. 곧 초나라에 큰 변화가 있으리라 기대하며.
하지만 그 대화가 있은 후 몇 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오거는 초조한 마음에 괜히 마당만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때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친우, 소종이 찾아왔다.
"오거,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가? 자네 식솔들이 걱정이 많네. 매일 땅이 꺼져라 한숨만 쉰다고. 무슨 일인가?"
오거는 소종의 방문이 기꺼웠다. 그는 이 나라에 몇 없는 충신이자 진심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자였다. 오거는 소종에게 왕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소종은 그 말을 듣고 분개하며 소리쳤다.
"이 나라의 명운이 다했구나! 안 되겠네, 내가 가서 다시 간언토록 하겠네."
오거는 친우가 걱정되어 만류했지만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소종은 그 길로 입궁하여 장왕과 알현을 요구했다. 장왕은 소종이 찾아오는 그 순간에도 간신들과 잔치를 하며 향락을 즐기고 있었다. 소종은 만취하여 나뒹구는 간신들을 발로 치우며 왕 앞에서 외쳤다.
"왕이시여. 목숨을 걸고 감히 간언 하옵니다. 부디 방탕을 멈추고 국정을 살피어 초나라가 천하를 호령하도록 하십시오!"
장왕은 소종의 말에 술이 번쩍 깨는 듯한 기분을 받았다. 오거와의 만남 이후 장왕은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초나라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충신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시점을. 장왕은 즉시 명령을 내려 잔치상을 치우고 소종과 독대했다.
"내가 어찌하였으면 좋겠는가."
소종은 평소 오거와 함께 나누던 국정 운영 방안을 왕에게 전달했다. 왕은 소종의 간언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그들의 대화는 밤이 늦도록 이어졌다. 다음날, 장왕은 간신에게 시간을 주지 않고 즉시 행동에 나섰다. 간신들을 숙청하고, 사치와 향락에 절여진 왕실을 정리하였으며 간언을 하던 충신을 중용했다.
장왕의 3년간 이어진 사치와 향락은 나라가 너무나도 어지러워 충신과 간신을 구분할 수조차 없자 일부러 옥석을 가리기 위해 벌였던 것이었다. 간신 무리를 일거에 소탕한 장왕은 오거와 소종에게 국정을 맡기고 비로소 패업에 나섰다.
이것이 그 유명한 '불비불명(不飛不鳴)'이라는 고사이다. 고사에서 알 수 있듯이 장왕은 큰 뜻을 이루기 위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행동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패업을 이루기 위해 선두에서 북을 치며 군을 이끌었으며 결국 승리를 가져왔다. 하지만 장왕은 언제나 멈출 때를 알고 움직이는 자였으며 예와 도를 아는 인물이었다. 그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일화가 있다.
'절영지회(絶纓之會)'라는 고사가 있다. 투월초와 양유기의 대결을 통해 백발백중이라는 고사성어를 탄생시킨 '투월초의 반란'을 평정하고 초나라로 돌아온 장왕은 거하게 연회를 베풀었다. 호색한이라는 칭호답게 여러 애첩을 거느린 장왕은 가장 총애하는 애첩을 시켜 신하들에게 술을 한 잔씩 따르게 하였다.
절세미녀인 왕의 애첩이 술을 따르자 모든 신하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때 술렁이는 장내에 한줄기 바람이 불어 촛불을 모두 꺼버렸다. 사건은 그때 발생했다. 술에 취하면 용기가 난다고 하지만 그 용기는 대부분 객기일 뿐이다. 어두컴컴한 암흑 사이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황급히 불을 킨 장왕은 무슨 상황인 둘러보기도 전에 자신 앞에 눈물을 흘리며 쓰러진 애첩을 보았다.
"무슨 일이오."
"방금 불이 꺼졌을 때, 어떤 자가 저를 희롱하였습니다. 제가 그자의 갓끈을 잡아 끊어놓았으니 갓끈이 끊어진 자를 잡아 처벌해 주십시오."
장왕은 머리에 피가 몰리는 기분이었다. 감히, 자신의 애첩에게 더러운 손을 들이대다니. 장왕은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범인의 목을 쳐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신하들의 얼굴을 바라보니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을 믿고 패업을 이행하는 자들이다. 저들이 없으면 자신은 패자에 오를 수 없었다. 게다가 저들은 수많은 간신 사이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초나라의 국운을 걱정하던 자들이었다. 장왕은 허리춤에 가던 손을 다시 술잔으로 옮겼다. 그리고 머리 위로 술잔을 들며 크게 외쳤다.
"오늘 연회에서 갓끈이 끊어지지 않은 자는 제대로 즐기지 않았다 여기고 크게 벌하겠다!"
왕의 대인배스러운 면모에 감화된 신하들은 전부 갓끈을 끊고 다시 연회를 시작했다.
기원전 597년, 장왕은 패업의 일부로 정 나라를 쳐 굴복시킨다. 중원의 패자를 자처하던 진나라는 정나라를 구원하겠다는 명목으로 군대를 파견한다. 하지만 필(邲) 전투에서 초나라에 크게 패배하고 만다. 장왕은 진 나라와의 전투에서 한 용맹스러운 장수의 분전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필(邲) 전투를 승리로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장왕은 이 장수의 용기를 높이 사 그를 불러 물었다.
"그대는 누구길래 그토록 용맹하게 싸울 수 있는 것인가."
그러자 장수가 갑주를 벗고 목을 내밀며 대답했다.
"신은 오래전 이미 죽은 목숨입니다. 투월초의 난 이후 연회에서 감히 전하의 애첩을 희롱하다 갓끈이 끊어졌습니다. 그때 왕께서는 저를 벌하지 않으셨습니다. 제 목숨은 전하의 것입니다. 부디 제 목을 쳐 그때의 일을 마무리하시옵소서."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지만 실수로 인한 것을 구태여 드러내지 않고 포용해 줄 수 있는 포용력과 그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는 것도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장왕은 아량을 베풀었고 장수는 그에 보답했다. 그리하여 장왕은 춘추시대 세 번째 패자가 될 수 있었다.
전투가 끝나고 돌아가던 중 장왕에게 한 신하가 말했다.
"전하, 어찌하여 경관을 만들지 않으십니까. 승전을 하면 반드시 큰 무덤을 지어 자손이 그 무공을 잊지 않도록 한다 하지 않습니까?"
이에 장왕은 그를 꾸짖으며 말했다.
"옛 왕들은 불경한 자를 토벌한 후 그 수괴를 죽여 땅에 묻고 흙을 쌓아 올려 치욕을 받도록 하였다. 그런 연유로 경관이 만들어진 것이고 불경한 자에게 경고하며 징계한 것이다. 진나라가 불경한 짓을 하였는가? 아니다. 선량한 백성들이 충성을 다해 군주의 명에 따라 죽은 것뿐이다. 어찌 그들을 구경거리로 삼을 수 있겠는가!"
이후 장왕은 제사를 지내고 선군의 사당을 지어 승리를 고한 후 돌아갔다.
강하면서도 난폭하지 않으며, 많은 것을 가짐에도 예를 아는 사람을 군자라고 부른다. 장왕은 굳은 심지를 가지고 포용력 있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했으며 결국 중원을 호령하였다. 비록 절영지회라는 고사는 그 일화의 소재 때문에 현대에 들어 여성을 성추행한 부하를 용서했다는 일화로 공격당하기도 하지만, 남녀를 막론하고 장왕의 포용력 있는 삶의 태도는 배울만 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