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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햇살 Feb 09. 2023

심심甚深한 이야기

《집은 텅 비었고 주인은 말이 없다》를 읽고

     

 수필은 민낯이다. 새벽안개 걷히며 드러나는 말간 속살이다. 그래서일까? 수필을 읽다 보면 만나 본 적 없는 글쓴이와 어느새 친밀해져 함께 웃거나 슬퍼하며 고민을 나누기도 한다. 또한 깨달음까지 얻는 희열도 빼놓을 수 없다. ‘시골 법무사의 심심한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조재형 시인의 첫 산문집, 《집은 텅 비었고 주인은 말이 없다》가 그 주인공이다.

 작가는 검찰 수사관으로 16년을 지내고 현재 부안에서 법무사로 일하면서 시를 쓴다. “산문의 소재들은 내 몸을 상하여 얻은 것들”이어서일까 ‘유도 신문, 소송, 기소, 구속, 영장, 지명수배’ 등 법률 용어가 불쑥불쑥 튀어나오지만 시적인 렌즈로 담아냈기에 서정적으로 읽히는 특별함이 있다. 

 수사관과 법무사로서 만났던 사람들은 고달픔이 많다. 딸 앞으로 집을 등기하며 죽음을 준비하는 노부부가 있는가 하면 부모의 재산을 서로 많이 차지하기 위하여 아버지를 법정에까지 세우는 자식들도 나온다. 자식은 많으나 갑자기 쓰러졌을 때 자신을 구조해 줄 사람이 없어서 몇 십만 원을 속잠방이 안에 준비해 놓고 살아야 하는 할머니도 있다. 이 모든 것이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모습이라서 더 애달프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으면서도 늘 웃는 문이 언니의 삶은 “돈에 쫓기며 왕국을 건설하기에 바쁜”우리들의 발걸음에 제동을 건다. 또 텅 비어 있고 말이 없는 집은 “어떻게 늙어가야 하고 어떻게 침묵해야 하며, 어떻게 낮아져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한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작가에게 자상한 아버지를 느끼게 해 주신 석이 아버지가 사주신 자장면 곱빼기에 얽힌 사연은 저장되어 있던 추억들을 소환한다. 아울러 ‘나는 진정한 어른인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 이처럼 66편 속에 담긴 이야기는 예리한 관찰력과 애틋한 감수성으로 바라본 심심甚深하기에 심심하지 않은 우리들의 민낯들이다. 

  시인에게는 신이 허락한 특별한 언어가 있다 했던가. 반복되는 잘못으로 고해성사를 하는 모습을 부객浮客, 풍객風客, 식객食客, 낭객浪客, 숙객熟客, 노객老客, 폐객弊客, 자객刺客으로까지 언어를 확장하며 보여준다. 이야기 속에 소개된 여러 편의 시들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마음에 드는 시 한 편/낭독하면/별 한 동을/거저 분양받는 횡재이다(「광고」)”라는 시구는 그의 시집 〚지문을 수배하다〛와 〚누군가 나를 두리번거린다〛를 찾아 읽게 만든다.

  입춘이 지났다. 머지않아 강추위와 꽃샘추위를 겪어낸 꽃들이 속살을 드러내며 마음껏 피어날 것이다. 코로나19를 이겨낸 우리들도 시 한 소절을 읊조리며 봄밤의 거리를 거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벚꽃이 정차 중이었다. 당신이 하차할 것 같아 달빛이 붐비는 봄밤을 서성이곤 했다”.(「환승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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