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병상일기
엄마는 연세에 비해 잘 드시고 소화력만큼은 자랑할만했었다. 다슬기국은 언제 드셔도 후루룩 많이 드셨다. 비 오는 날이면 풋고추 송송, 부추나 깻잎도 송송 썰고 애호박을 채 썰어서 부침을 해드리면 최고로 맛있다고 두세 장을 드시곤 했다. 그런데 올여름이 너무 더웠나. 여름 끝자락에 병을 얻었다. 소화가 안 되어 힘들어하셨던 엄마는 다시 입원을 하셨다. (2024.9.1) 첫날은 세 번 토하고 배가 아프다고 하셨으나 간단히 치료하면 곧 집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그러나 하룻밤만에 엄마는 기운이 뚝 떨어지셨다. 마음도 약해지셔서 이제 갈 때가 된 것 같다고 당신이 안다고 하셨다.
" 집으로 가자. 넓은 곳에서 편히 세상을 뜨고 싶어. 이런 갑갑한 곳에서는 하루도 못 살겄어."
고관절 수술을 한 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수술이냐며 편하게 가고 싶다고 하셨다. 목이 마르고 입술이 타 들어가는데 왜 물 한 모금을 안 주냐고. 시원한 식혜를 마시면 다 나을 거라고 집으로 가자고 하셨다. 맘껏 뒹굴 수 있는 당신의 돌침대에 누워 있고 싶다고. 능소화가 펴 있는 넓은 마당, 활짝 펼쳐볼 수 있는 하늘, 자유롭게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고 싶다고 하셨다.
하룻밤을 병원에서 금식하면서 보내신 엄마는 복통이 너무 심하셨는지 수술을 거부할 힘도 놓치고 말았다. 식은땀이 줄줄. 눈조차 못 뜨신다. 가슴을 두드려 가래를 뽑아내려 하니 아프다고 못 만지게 한다. 여러 가지 검사를 했다.
'장경색'. 놀란 가슴 진정 시킬 겨를도 없이 수술실로 들어가셨다.(9.2 오후 일곱 시) 아흔여섯의 나이에 큰 수술을 한다는 것이 불안했다. 그러나 담당의는 수술을 하지 않으면 고통스럽게 돌아가신다고 적극 권한다. 애통함이 무엇인지를 다시 실감하는 시간이다. 가족들에게 연락을 하고 가족회의를 했다. 수술을 하기로 결정한다. 그 시간 동안 엄마는 고통스러워하신다. 엄마가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까? 고관절 수술도 몇 달 만에 극복했듯이 이 수술도 기적이 일어나기를 고대한다.
십이지장을 포함하여 소장을 50센티만 남기고 대장도 조금 잘라내는 수술을 했다. (오후 아홉 시) 수술 후에는 장루를 할 수도, 패혈증이 올 수도 있고, 폐렴, 단장 증후군 등등 위험한 후유증이 올 수도 있단다.
엄마와 호흡을 맞추느라 점심도 저녁도 놓쳤다. 밤 열 시가 되어 수술이 무사히 끝나고 중환자실에 들어가신 것을 본 후에야 우린 밥집을 찾아다녔다. 대학병원 맞은편 큰 길가에 '일등병 부대찌개'를 발견했다. 문득 17년 전 그 일이 떠오른다. 폐렴으로 위기를 넘기신 아버지를 간호하시던 엄마는 우리 팔 남매 모두를 이곳으로 보냈다. 밥 먹고 오라고. 청춘들이 배곯으면 안 된다고. 당신은 아버지 곁을 지켜야 된다고, 자식이 배부르면 당신은 더 부르다고. 먼저 먹고 오라고... 그렇게 자식 걱정 하시던 엄마가 다시 대학병원에 갇혀서 걱정을 산다. 우리들에게 얹혀질 짐들이 걱정되어 맘 놓고 신음소리도 못내시는 것 같다. 지금도 변함없이 운영되는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 '잘못 선택했나.' 그러나 그 말은 삼킨다. 우리 모두. 주변에 식당이 별로 없어서 선택권이 없다. 그리고 배가 고프다.
그렇게 하룻밤은 가족끼리 함께 있어서 그럭저럭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밤은 귀뚜라미소리조차 더욱 처량하다. 오늘밤을 중환자실에서 홀로 견디실 엄마가 가엾다. 앓는 소리가 귓가를 적신다. 나를 달래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노래 가사를 만들어 보기로 한다.
엄마 힘내요. 우리 이 노래를 함께 불러요.
엄마, 당신의 꽃
매화가 피면 알아요,
그대가 얼마나 추웠는지를
섬진강을 따라 달려가던 길,
고목에 꽃이 폈어요
나도 피어나요. 나도 피어나요.
노래하던 당신의 속삭임이 들려요.
그대와 함께 이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향기로 응답해 주오
함께 피어나자던 엄마
엄마는 늘 말씀하셨죠,
인생이란 막차를 타도 괜찮아,
속도가 아닌 방향이 중요해
고목에 핀 꽃처럼,
늦게라도 피어나는 꽃이 되라고 말씀하셨죠
쌀 꽃이 피면 느껴요,
그대가 얼마나 거룩한 꽃인지
들판에 쌀 꽃이 폈어요
나도 피어나요. 나도 피어나요.
노래하던 당신의 속삭임이 들려요
그대와 함께 이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향기로 응답해 주오
함께 피어나자던 엄마
(랩) 당신을 중환자실에 두고
우린 배가 고파 밥을 먹었지.
뉴스를 보고, 잠도 자고, 꿈도 꾸었어.
고목에 핀 꽃처럼,
당신도 다시 피어날 거야.
지금이 그때야,
천상의 별 하나, 당신을 응원하러 내려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