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생존에 각인된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by 간극

어떤 기억은

끝난 적이 없다.

지나간 것이 아니라,

아직도 안에서

살아 움직인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작든 크든

지워지지 않는 흔적 하나쯤은

각자의 방식으로 품고 살아간다.


어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며 흐려지지만,

어떤 기억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옅어지지 않는다.


망각이라는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조차

그 앞에서는 유난히 무력해 보인다.


이유는 단순하다.


선택적으로 쌓은 기억은

반복해도 쉽게 사라지지만,

생존이 걸린 순간에 새겨진 흔적은

단 한 번으로도 충분히 깊어진다.


그때의 기억은

정보가 아니라

이미 하나의 조건이 된다.


그 조건은

우리가 인식하기 전에 먼저 반응하고,

설명하기 전에 먼저 몸을 움직이며,

선택하기 전에 이미 세계를 걸러낸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 속에서 살아간다.


다만 그것을

현재라고 부를 뿐이다.


이 지점에서

“이제 잊어”라는 말은 잔인해진다.


그건 이미 몸에 새겨진 흐름을

의지로 지우라는 말과 같다.


의식은 설명할 수 있지만,

그 아래에서 작동하는 것은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트라우마는

단순히 생각을 바꾼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건 여전히

살아 있는 작동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극복해야 할 대상일까.


지워야 할 것일까.


아니면

다르게 이해해야 할 것일까.


많은 경우, 우리는

지워지지 않는 것을 지우려 한다.


설명으로 덮고,

이성으로 누르고,

시간에 맡기며 희미해지길 기다린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결은

그렇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은 층으로 내려가

다른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예측할 수 없는 반응,

설명되지 않는 감정,

이유 없이 흔들리는 순간들로.


그리고 그 반응들마저도

우리가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는 전제 안에서

이미 선택된 채 나타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쩌면

문제는 트라우마가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지울 수 없는 것을 지우려 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잃는다.


그리고 그 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오래

존재의 저항을 견뎌내는 일이다.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이것을 완전히 넘어서는 방법이 있는지..

다만, 그것을 지우는 방향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하나다.


트라우마는 약함이 아니다.


그것은

생존이 남긴 증거다.


그리고 그 증거 위에서

우리는 여전히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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