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

맞지 않는 조각이 되어버린 사람들에 대하여

by 간극

사회에서 인정받고

성공적으로 살기 위해

우리는 기꺼이 고통을 지불한다.


그 고통을 견디고 숨기는 법은

마치 통과의례처럼

우리 몸에 흉터로 학습된다.


수학을 잘하는 재능과

미술을 잘하는 재능은

태어날 때부터 각기 다른 모양으로 정해져 있다.


기질과 성향은 선택이 아니라

생명 고유의 무늬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사회는 이 다른 무늬와 결을

존중할 생각이 없다.


오직 정해진 형태의 ‘표준 조각’만을 원한다.

성향이 다른 인간을

하나의 틀에 억지로 맞추려 한다.


이 거대한 부조리 앞에서

우리는 나만의 고유한 각을

스스로 뭉개기 시작한다.


사회라는 퍼즐판은

정해진 규격의 형태만을 허용한다.

아무리 정교하고 아름다운 조각이라도

그 홈에 맞지 않으면

그 즉시 ‘잉여’가 된다.


우리는 사회의 일부가 되기 위해

기꺼이 스스로를 난도질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존재할 자격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퍼즐에 맞지 않는 자신을 탓하며

능력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깎아내리기 시작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는 조심스럽게 의심해 본다.


우리 사회는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조각을 찍어내는 데

지나치게 최적화되어 있지 않았을까.


교육은 그 첫 번째 공정이다.

정답이 있는 문제에 익숙해질수록

기질이 다른 모양은

점점 ‘틀린 것’으로 분류된다.


우연히 좋게 맞으면

무난하게 흘러간다.

맞지 않으면

그때부터 지옥문이 열린다.


이건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잘못 설계된 출발선의 문제다.


그 문은 세 갈래의 시선이 교차하는

하나의 거대한 감옥이 된다.


나를 향한 자책,

부모의 소리 없는 실망,

그리고 낙오자로 낙인찍는 사회의 시선.


우리는 그 보이지 않는 감시 속에서

누구보다 가혹하게 스스로를 검열한다.


그 지독한 감옥의 구조를

우리는 ‘파놉티콘’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건 개인의 결함이 아니다.

퍼즐판 자체가

처음부터 잘못 설계된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당신만의 퍼즐 조각을 찾아라.”


나는 그 무책임한 말을 하지 않겠다.


그 말은 너무 자주

실패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며

우리를 더 깊은 수렁으로 민다.


다만 분명한 건 하나다.

맞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그건 당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모든 퍼즐판에

모든 조각이 들어갈 수는 없다.


그 당연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가

폭력적일 뿐이다.


억지로 자신을 으깨며

맞지 않는 자리에

몸을 밀어 넣을 필요는 없다.


조금이라도 덜 아픈 곳을 찾는 건

비겁한 도망이 아니라

가장 지능적인 생존이다.


이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적어도

자기 자신을 부수는 일만큼은

멈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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