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은 미덕일까, 회피일까
겸손은 미덕이라고들 말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어떤 평가나 분석을 들을 때
거의 반사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아니에요, 저는 그 정도는 아닙니다.”
겉으로 보면 이 말은 무척 단정하고 안전하다.
관계에서 튀지 않고,
타인의 기대를 낮추며,
혹시 모를 실망에 대비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처음엔
이 말을 사회적 기술이나
적당한 자기 방어쯤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했다.
이 말은 유독 많은 상황에서,
그리고 거의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이쁘다고 해도 “아닙니다”
잘했다고 해도 “별거 아닙니다”
대단하다고 해도 “저는 아직 멀었어요”
칭찬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대답의 구조는 늘 같다.
여기서 의문이 생겼다.
이건 정말 겸손일까.
아니면 다른 기능을 가진 말일까.
“나는 그 정도는 아니다”라는 말은
자신을 낮추는 말이 아니라,
책임으로부터 한 발 물러서는 말이다.
이 말은
자신을 숨기기 위한 말이기도 하다.
인간은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위치, 능력, 약점을
드러내지 않는 쪽으로 진화해 왔다.
드러낼수록 위험해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사냥의 시대가 아니라
관계의 시대지만,
이 생존 감각은 여전히 남아 있다.
문제는,
이제 우리의 자아는
관계 속 보상을 통해 성장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쪽에서는
드러내지 말라고 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 충돌 지점에서
이 말이 튀어나오는 건 아닐까.
“나는 그 정도는 아니다.”
이 말은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지만,
동시에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막는다.
겸손해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의 무게를 끝까지 감당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그래서 이 문장은
우리를 낮춰서 안심시키지만,
우리를 키우지는 않는다.
안전한 말은 많다.
그러나 인생을 바꾼 말은,
대부분 불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