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슬리퍼가 부끄럽지 않은 이유

우리는 왜 같은 트랙에 서 있다고 착각하는가

by 간극

인간은 모두 평등하지만,

삶의 시작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그나마 평등하다고 느끼는 건

태어나고, 언젠가는 죽는다는

생물학적 시작과 끝 정도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태어나기만 했는데

이미 상위 1퍼센트의 환경에서 출발한다.

반면 어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난도가 높은 삶이 시작된다.


이건 단지 출발의 문제다.


유아기에는 그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우리는 재능과 환경이라는 이름의

격차를 몸으로 배우기 시작한다.


나 역시 그랬다.

어릴 때는 우리 집이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그 환상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른들은 말한다.

직업에 귀천은 없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소중하다고.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다만 나이를 먹을수록

이 질문은 남는다.


정말 같은 환경에서의 평등이었는가.

같은 출발선에서의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삶의 출발점과 타고난 조건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작위로 주어진 시작을

‘불평등한 삶’이라는

다른 층위의 문제로 끌어내리며

스스로를 비교의 구조 속에 밀어 넣는다.


각자의 삶은

같은 트랙이 아니다.


누군가는 운동화를 신고 출발하고,

누군가는 슬리퍼를 신고 출발한다.

출발선도, 페이스도 다르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빨리 갔는지가 아니라,

내가 어디서 출발했는지를

정확히 아는 일이다.


빨리 간다고 우쭐할 필요도 없고,

늦다고 서두를 이유도 없다.


자신의 출발점을 받아들이는 순간,

비로소 삶의 마라톤은

제대로 시작된다.


슬리퍼를 신고 출발했다고 해서

부끄러울 이유는 없다.

그건 실패가 아니라,

조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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