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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먹을 것인가

더 나은 선택을 하는 힘을 잃고 있다.

by Ms moody

캐롤린스틸의 책 '어떻게 먹을 것인가' 를 읽고 우리가 음식을 먹기 시작한 이래 겪은 변화와 인사이트를 기록하고자 한다. 책을 읽으며 먹은 아이스크림, 과자는 어쩌면 옛 의미 그대로의 '음식'이 아닌 소비하기 위한 '상품'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미각의 산업화


우리의 미각은 더 이상 개인적인 경험이 아니라, 산업화된 시스템의 일부가 되었다. 식품 산업은 우리의 입맛을 조작하고, 효율과 편리를 내세워 본능적 욕구마저 표준화된 제품으로 대체했다. 자연스러운 단맛과 감칠맛을 인공 조미료가 대신하고, 계절과 지역에 따라 달라야 할 풍미는 글로벌 시장의 논리에 따라 획일화된다. 우리는 진짜 맛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미각을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치 앤디 워홀의 작품처럼, 음식은 이제 대량생산된 상품이 되었다. 캔버스 위의 캠벨 수프 캔이 개성과 수작업의 흔적을 지우고 기계적으로 반복되듯, 현대의 음식도 획일화된 제품으로 변해간다. 한때 지역과 계절의 영향을 받았던 식재료는 글로벌 공급망 속에서 언제 어디서나 동일한 맛을 내도록 조정되었고, 패스트푸드는 ‘브랜드화된 미각’을 표준처럼 강요한다. 이처럼 음식의 산업화는 우리가 먹는 방식뿐만 아니라, 음식에 대한 우리의 감각과 태도까지 균질화하고 있다. 우리는 진짜 ‘맛’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된 ‘맛의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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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가 만든 태도


식문화는 단순히 먹는 방식이 아니라, 사회적 태도와 역사적 배경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맥도날드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는 패스트푸드가 생활 깊숙이 자리 잡으며 효율성과 일관된 맛이 우선시된다. 이에 반해 프랑스는 요리를 개인적인 경험으로 여기며, 재료와 조리 과정에 대한 존중이 강하다. 이러한 차이는 비만율에도 영향을 미친다. 미국에서는 산업화된 음식 시스템이 비만율을 높이는 반면, 프랑스는 지역별 특색 있는 미식 문화와 전통시장의 존재가 건강한 식생활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결국,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태도로 먹느냐가 몸과 삶의 방식을 결정짓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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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 출처: 핀터레스트

먹는 법을 배워야 했듯이, 우리는 나누는 법도 배워야 했다. 특히 첫 번째 집, 가족이 둘러앉은 식탁은 단순히 음식을 나누는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서 행동하는 법을 익히는 첫 번째 학교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한 입을 베어 물기 전에 서로의 접시를 살피는 법을 배우고, 대화를 나누며 타인을 배려하는 감각을 익혔다. 식탁 위에서 나누는 음식은 단순한 칼로리가 아니라, 관계를 형성하고 공동체를 경험하는 과정이었다.


bc11515a3186ec1460c831b1eab9b5c9.jpg 출처: 핀터레스트



생산지에서 소비 공간으로


처음부터 음식은 소비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인간은 음식을 생산하고 이용하는 주체였으며, 각 지역과 문화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식문화를 형성해왔다. 그러나 산업화는 이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유럽에서 농업이 중심이던 시절, 사람들은 공유지에서 식량을 자급자족하며 생활했다. 하지만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공유지는 사유화되었고, 많은 이들이 농지를 잃고 공장 노동자로 전락했다. 이 과정에서 집의 속성도 변했다. 과거 가정은 단순한 생활 공간이 아니라 생산의 중심지, 즉 하나의 ‘생산 엔진’이었다. 가정에서 옷을 짜고, 빵을 굽고, 가축을 길렀다. 이는 고대 그리스 이후로도 크게 변하지 않았던 생활 방식이었다. 그러나 공장의 출현은 노동의 개념을 바꾸었다. 일은 더 이상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임금을 통해 보상받는 노동으로 규정되었고, 사람들은 집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생산의 중심이었던 집은 점차 소비의 공간으로 변했다. 부엌도 더 이상 ‘만드는 곳’이 아니라, 구매한 것을 소비하는 장소가 되었다. 우리가 지금 ‘음식’을 대하는 방식은 바로 이 산업화의 흔적 위에 쌓인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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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핀터레스트

편안함과 기쁨은 대조적인가? 현대 사회에서는 그렇다. 우리는 일시적인 편안함을 위해 장기적인 기쁨을 포기하도록 유도된다. 소비 중심적인 시스템은 언제나 쉬운 선택지를 앞에 두고, 즉각적인 만족을 제공하지만, 그 대가는 종종 후회와 상실감이다.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의 쾌락이, 그 후의 자책감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그러나 좋은 삶이란 편안함과 기쁨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편안함을 단계적으로 기쁨으로 연결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소비가 아닌,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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