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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uu Feb 22. 2024

노묘의 시간

17화. 십 년 감수

  2024년 연초부터 심장이 "쿵"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뉴스 속 세상 이벤트에서야 어마어마한 일들로 시작하는 새해가 낯설지 않을 수 있는 거지만... 나와 직접 관계된 일에서 이렇게 다급하고 마음 조리는 사건을 경험하기는 처음이었다.


  어린 고양이로 살던 2~3년간을 포함해도 그 흔한 두루마리 휴지 뜯기 장난 한 번, 아무것이나 주워 먹는 이식 말썽 없이, 오히려 아무거나 먹지 않고, 사람음식에는 흥미 없는 매너고양이로만 16년을 살아온 노랑과 까망이 집사인 내게 고양이는 평화와 안도 그 자체였지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 당연 치 않은, 소중한 평화를 깬 것은 일요일 오후 이불 홑청 꿰매려 꼽아둔 손가락 길이만 한 바늘과 면실 30센티가량. 고작 그것이었다. 이불 꿰매는 용도라 두 줄을 겹쳐 네 줄로 되어 있는 실이 탐스러웠는지, 그날따라 뭔가에 홀린 듯 실을 흡입한 노랑이는 바늘까지 함께 너끈히 삼켰다. 뭔가 이상한 소리를 내지도, 작은 기척조차 없이, 삼키고도 평안하고 평화로웠던 그 얼굴이 지금 생각해도 제일 무섭다.

 

  집 앞 수의사 선생님인 윤쌤은 오늘 같은 날 도움이 되지 않을 걸 알고 있었다. 정기적으로 일요일이면 문을 닫으시니까. 그래서 생각해 낸 곳은 올리브병원. 급히 검색하고 전화를 했다. 다행히 받아주신다.

  긴급상황을 설명하고 의심되는 정황을 설명했다. 선생님의 “지금 바로 데려오라”는 말씀이 없었어도 누구든 수의병원이 문만 열었다면 날아갈 마음 자세였다.

병원 방문 직후 장으로 이동한 바늘 찾음. 수술밖에 해결방법이 없다는게 너무 무서웠음.
환묘복을 잘 견뎌줘서 다행. 카라도 씌워두라 하셨지만 물 마시는데도, 누울 때도, 매번 더 힘들것 같아서 불안하지만 옷만 입혀두고 있다.

  혹시나... 나의 착각이기를…. 했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뚜렷이 보이는 내장 속 바늘. 하늘이 아득했다. 순식간에 16살 나이에 전신마취는 가능한가,  못 깨어나는 확률은? 수술 없이 빼낼 방법은 정녕 없는가 등 전광석화처럼 많은 생각이 지나쳤다. 16살이라고 말씀드리자 의사 선생님의 깊은 걱정의 탄식이 뒤따랐다. 하지만 길게 고민할수록 아이가 감당할 위험은 더 커졌다.


  마무리까지 2시간 예정했던 수술이 4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수술도중 실 전부를 꺼낸 건지 확신할 수 없으셨던지 몇 겹 면실인지를 다시 확인. 상대적 감정으로 영원같이 느껴졌던 대기시간이 끝나고.... 일요일 오후 시작되어 깊은 밤에 끝난 수술의 끝, 탈진한 수의사선생님이 제거에 성공한 바늘실을 들고 나오셨다. 수술이 길어졌던 건 장절제후 다시 봉합하는 과정에서 -나이 탓인지 비만 탓인지 정확지 않은- 경화되고 약화된  장조직이 실을 견디지 못하고 자꾸  미어져 나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취에서 깨어 눈을 뜬 노랑이는 아직 멍해 있었고 이름만은 익숙한 펜타닐 진통제 패치 덕분인지 아픈 기색을 보이지는 않았다.


  수술 후 설명, 역시 무섭다. 세 곳 이상 장을 열고 기나긴 실들을 모두 제거했다고 한다. 박정윤 원장님의 가녀린 손으로 눈이 갔다. 긴 시간 수술하면서 집중하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더구나 통통한 노랑이는 내가 평소 케어할 때도 버겁게 무겁다.

  동물이 겪지 않아도 좋았을 이 모든 사달도 모두 내 부주의 때문. 평생 안 했던 일도 할 수 있는 게 아이, 동물이란 것을 너무 오래 잊고 있었다. 편한 시간은 이제 끝인가.

  면허 딴지 반년도 안된 자가 고양이를 케이지에 싣고 병원으로 날아간 그 엄청난 과단성과 용기는 어디 가고 밀려오는 죄책감에 모든 것을 묻고 또 확인한다.  



  배털을 민 그 약한 피부에 의료용 스테이플러가 가슴깨부터 아랫배까지 길게 박혀있었다.

  너무 순하게, 수의 테크니션의 모든 손길을 받아들여 선생님들이 예뻐하는 고양이 반열에 올랐다는데, 보호자 위로의 세심한 마음씀이려니. 무사히 눈을 뜬 것만 봐도 일단 좋았다. 수술대에서 못 돌아오면 어쩌나  울컥울컥 하던 시간에 비하면 이게 천국이려니.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는 없다.


  이미 밤이 깊었다.

  해가 중천에 있을 시간 병원에 도착하여 그 난리를 겪고 나도 노랑이도, 선생님도 진이 빠졌을 시간.

  일단 한 고비를 넘겼다.


- 다음 이야기로 이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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