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반짝이는 순간이 있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행복했던 순간들을 보석말로 담고 싶어서였다.
그때의 행복은 사진으로도, 기록으로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금방이라도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행복을 느꼈다는 건
삶 전체가 빛났다는 뜻은 아니다.
아주 짧지만 분명히 반짝였던 순간이 있었다는 의미에 가깝다.
오래 붙잡고 있지 못하고
시간이 지난 후 비로소 알게 된 반짝임.
반지, 목걸이, 팔찌, 귀걸이에 박혀 있는 작은 보석처럼
행복도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래서 나는 이 행복을 반짝임으로 기록하고 싶었다.
내가 보석말을 기록하기 시작한 건
반짝임이 사라진 후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이자
유일한 내 편이었던 외할머니가
나에게 주려고 따로 보관해 두었다고
어머니에게서 전해 들었던 보석 반지가 있었다.
그리고 그 보석반지들을
최근에 엄마가 팔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돈은 이모와 나눴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자연스럽게 외할머니를 떠올렸다.
어릴 때부터 사촌들은 자주 내 물건을 가져갔고
그럴 때마다 외할머니는 그들을 꾸중하며 되찾아주곤 했다.
외할머니는 늘 내 편이라는 걸 보여주셨다.
그래서 외할머니가 나에게 남겨준 모든 것들은
내가 지켜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석 반지는 내가 알지 못한 사이 값이 매겨졌다.
나는 엄마한테 왜 나한테 묻지 않았냐고
할머니가 나한테 남겨준 거라고 말한 사람은 엄마였다고
눈시울이 붉어진 채 신경질을 냈다.
어머니는 조용히 방에 들어가 버렸고
동생은 나에게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냐며 화를 냈다.
본가에서 자취방으로 가는 길에
나는 기차 안에서 소리 죽여 울었다.
울고 있다는 사실보다
내 슬픔을 아무도 모른다는 느낌이 너무 선명했다.
외할머니의 흔적은 이제 없어졌고
난 예민한 사람으로 남았다.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자취방에 돌아온 나는
외할머니가 나에게 남겨준 것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밤새 펑펑 울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이때가 '반짝이는 순간들'을 기록하기로 결심한 순간이었다.
값이 매겨질 수 없는 방식으로,
나만이 지킬 수 있는 형태로
소중한 행복을 보석말로 담기로 했다.
이 글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보석말을 써 내려가며
특별한 장면이 아니었더라도
반짝이는 행복들이 하나씩 쌓여
지금의 나를 지탱해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 글에 담긴 행복은
높은 성적을 받았거나
원하는 대학교에 입학했거나
어렵게 준비한 회사 면접에 합격했거나
이런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나 자신을 마주하며 온전한 행복을 느낀 순간
비로소 나는 반짝일 수 있었다.
이 글은 이렇게 지나가 버린 순간들을
반짝이는 보석으로 남기기 위해 존재한다.
이 글에 적힌 보석들은 손에 쥘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이미 지나가버렸고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순간들이다.
값으로 매길 수 없고 누군가 처분할 수도 없다.
오직 내가 기억하는 한 그 자리에서 반짝이고 있다.
'반짝이는 순간'을 담은 이 글은
내가 지켜내고 싶은 행복에 대한 기록이고
행복과 마주한 순간 반짝였던 나에 대한 늦은 인정이다.
하루하루가 불행하다 여기는 누군가에게 이 글을 전하며
그들도 스스로의 시간을 돌아볼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크게 웃었던 날이 아니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하루 속에도
지나가 버린 반짝임이 하나쯤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고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자신만의 언어로
조용히 이름을 붙여보기를 권하고 싶다.
보석이 아니어도 좋고 형태가 없어도 괜찮다.
소소한 행복들로 반짝였던 순간들이
사라지지 않게 남겨두는 방식이 각자에게 하나쯤은 있기를.
이 글이 그 시작이 될 수 있다면
난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