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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르딕라쿤 Nov 21. 2024

쿠킹 명상

2.  평등하기 : 이유 없는 올라서기가 아닌 제 역할에 충실하기

[불고기 샌드위치]   

쿠킹타임: 30분

재료(2인분)

    (불고기 양념) 불고기 200g, 간장 1.5큰술, 설탕 1작은술, 물엿 1작은술, 다진 마늘, 다진 파 각각 1작은술,

    배즙 2큰술, 물 2큰술, 참기름 조금, 후추 조금

    (샌드위치 재료) 상추 조금, 할라피뇨 8~10 슬라이스, 체다치즈 슬라이스 2장, 마요네즈 4큰술   



스톡홀름의 한 여름날이었다.


스웨덴의 여름이 시작되면 도시 곳곳에는 'Loppis'라는 간판이 나붙는다.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벼룩시장과는 조금 다른데, 스웨덴 사람들에게 로피스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물건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문화적 행사다. 특히 'Gårds Loppis'는 특별한데, 이는 개인의 정원이나 차고를 개방해 이웃들과 소통하는 자리가 된다. 대부분의 집들이 갓 구운 따뜻한 카넬불레(Kanelbulle)와 커피를 내어놓고, 물건의 가치만큼이나 이야기도 함께 나눈다.


나는 스톡홀름 중앙역(Stockholm Centralstation)을 중심으로 동쪽에 위치한 칼라플란(Karlaplan) 분수공원에서 열린 로피스에 참여했다. 이 지역은 19세기 후반의 우아한 석조 건물들이 늘어선 스웨덴의 고급스러운 주거지역인 외스테르말름(Östermalm)이라는 지역인데, 이 동네 로피스에는 나이 지긋하신 스웨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오래된 가구나 서적을 가져와 팔기도 하고 앳되보이는 젊은 청년들이 독특한 패션 아이템들을 박스 채 가져와 팔기도 한다.


나는 오래된 주물 냄비와 도자기 식기구들을 파는 한 스웨덴 할아버지 옆에 자리를 잡았다. 더 이상 입지 않을 옷들을 꺼내놓았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중학교 들어가는 우리 손녀에게 딱 맞겠네요." 아담한 체구의 동양 여성의 옷이 북유럽 십 대, 아니 초등학년생의 사이즈라니.


하루의 장이 끝나고 스웨덴인 친구와 함께 길을 나섰는데 인적이 드문 한 골목에 들어서니 길을 잃은 듯한 한 개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검은색과 갈색이 섞인 털 사이로 희끗한 털들이 보이는 걸 보니 상당한 노견인가 보다 싶었다. 스웨덴에서 개나 고양이, 혹은 어떠한 종류의 반려동물이 주인 없이 다니는 건 흔치 않았기 때문에 나는 더더욱 모른 채 할 수 없었다. 한참을 쓰다듬으며 놀아주다 강아지 목걸이에 달린 펜던트에 새겨진 전화번호를 발견했다.


"지금 내가 당신의 강아지를 데리고 있어요."

"와! 정말요? 우리 강아지를 찾느라 얼마나 애가 탔는지 몰라요. 지금 당장 갈게요!"


다급한 목소리의 여성은 이내 황급히 전화를 끊었고, 약 십여분 정도가 지났을까 검은색 메르세데스 벤츠 한 대가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남자 둘이 차에서 내렸는데, 전화를 받은 여성의 남편인 듯했다. 청바지와 하늘색 스트라이프 면 셔츠를 세련되게 맞춰 입고는 왁스로 한껏 스타일을 한 헤어스타일을 보니 어디 근처 사는 부잣집 도련님인가 싶었다. 잰 채 할 것 같았던 그는 보기와는 다르게 상냥하게 웃으며 개를 찾아 주어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했다.


금방 자리를 떠날 줄 알았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나와 나의 친구이자 동료의 신상을 캐물었다. 나와 내 동료의 풀 네임과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에 사는지 등등. 지금 우리를 취조를 하겠다는 심산인가?

 '우리가 강아지에게 해코지라도 했을까 봐?' 나는 처음 만났고 또다시는 볼 일 없을 것 같은 이들이 우리의 신상을 캐묻는데 상당한 불쾌감을 느꼈다.


"어쩌다가 강아지를 잃어버린 거예요? 어디에서 오신 거죠? 꽤 빨리 오신 것 같은데?"  대화가 계속 길어지자 나는 한 마디 쏘아붙였다.


"유르고덴 안쪽에 있는 베르나도트 다리 근처에 살아요. 그래서 금방 올 수 있었어요. 가든파티를 하고 있는데 강아지가 사라졌지 뭡니까~"


'아니 정원이 커봐야 얼마나 크다고 소중한 반려견이 사라진 걸 몰랐을까~' 나는 부잣집 도련님의 태연한 태도에 개가 집을 떠나고 싶어 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반려견에게 사랑으로 따뜻하게 대해줬다면 가출을 하진 않았겠죠! 지금 데려간다고 해도 강아지가 또 집을 나갈 수도 있어요~"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충고를 하는 사이에도 나는 벤츠에서 내린 그 두 남성의 사이를 왔다 갔다 거리며 개와 꼬리잡기 놀이를 했다. 에티켓이고 뭐고 나는 조금이라도 더 개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남자는 껄껄 소리를 내며 호탕하게 웃으면서 앞으로는 반려견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더 많이 사랑하고 보살피겠다고 했다.


벤츠에 반려견을 태워 모셔가는 그들을 향해 두 손을 흔들었다. "안녕~ 잘 가요! 개가 또 가출하면 우리 다시 만날 수 있겠어요~!" 나는 차 창문을 열어 끝까지 엄지 척을 들어 보이며 약속을 하는 그를 믿고 돌아서면서 종종걸음을 내닫였다.


"너... 저 사람 누군지 알지?" 항상 침착하고 조용한 성격의 요아킴은 그 특유의 나지막한 목소리로 앞서가는 나를 멈춰 세웠다.  


"저 사람이 누군데~ 어서 와, 해 지기 전에 얼른 밥 먹으러 가자~"


요아킴은 나를 지긋이 바라보다 쓱 한마디를 내뱉었다.


"칼 필립 왕자..."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방금 전까지 내가 반말*로 훈계 비슷한 걸 하고, 개와 장난치며 노느라 쳐다도 보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이 스웨덴 왕실의 왕자라고? 대사관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스웨덴 왕실 인사들의 사진과 언론 인터뷰는 수없이 봤지만, 청바지 차림의 그를 나의 일상생활 중에 만날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나는 그가 어느 부잣집 도련님인지 궁금하지도 않았고, 나의 신상을 꼬치꼬치 묻는 것이 불편했다. 오히려 다행이었을까? 만약 내가 "당신은 누구신데요?"라고 물었더라면 그의 반응은 어땠을까?

*영어에도 반말과 존댓말은 분명 존재한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서서는 요아킴에게 왜 내게 미리 눈치를 주지 않았느냐며 나무랐다. 하지만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은 요아킴의 다음 말이었다.


"음... 필립 왕자는 길 잃은 개의 주인으로서 온 거지 여기에 스웨덴 왕자의 자격으로 온 게 아니라고 생각해."


이 한마디는 내가 알던 모든 위계질서의 개념을 뒤흔들었다. 한국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왕족이 청바지 차림으로 강아지를 찾으러 오고(분명 다른 누군가를 보낼 수도 있었을 텐데!) 평범한 차림으로 나와 시민과 농담을 주고받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일반 시민들의 문화라니.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는 그날 하루 모든 순간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갔다. 로피스에서 보았던 수평적 관계들, 할아버지와 청년이 나누던 대화들, 그리고 왕자와 사복 차림의 경찰 혹은 경호관을 만난 모든 순간까지, 그리고 나의 오랜 동료이자 친구인 요아킴을 바라보면서 나는 스웨덴의 수평적 문화가 단순히 표면적인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일상 깊숙이 스며든 생활양식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체감했다.



집 나온 칼 필립 왕자네 강아지 'Si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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