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퇴사는 존경했던 사수때문이였다.

순간에 대한 감정, 모호한 감정에 대한 이야기

by 조다니

컨설팅펌에서 일하고 있는 지금과 달리, 첫 직무는 MD였다.

매일 성과와 씨름했다.
부담스러웠지만 좋았다.
매일같이 확인하던 매출과 서비스 지표는 압박이었고, 동시에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사수는 좋은 분이었다.

전사에서도 인정받았고, 늘 친절했다.
주로 빅 파트너사를 담당하셨고, 성과를 가져왔다. 그런 모습이 멋져 보였다.
처음엔 그런 분의 부사수라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그만큼 떨어지는 콩고물도 많았다.


입사한 지 1년 6개월쯤 됐을 때였다.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적당한 시간에 맞춰 출근했다.
MD답게 출근길부터 머릿속엔 오전에 돌려야 할 파트너사들이 가득했다.


그래서 전날 매출이 좋지 않으면, 아침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전화였다.

사과하고, 달래고,
“다음엔 더 잘 될 거다”,
“그래도 이런 부분에서는 효과가 있었다”고 말하며
다시 한 번 기대하게 만드는 전화. 그날 사수의 전화도, 우리에겐 늘 하던 그런 전화였다.


그런데 문득, 옆에서 그 통화를 듣고 있는데
머릿속에 작은 이물감이 들었다.

늘 믿고 따랐고, 멋있다고 생각하던 사수였다.
경력 차이는 10년쯤 났을 텐데,
전화기 너머로 머쓱해하며 사과하는 모습이
지금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 순간 스쳐 지나간 생각.

‘내 10년 후는 저 모습일까?’
‘10년이 지나도, 누군가에게 사과하며 하루를 시작해야 할까?’

그 생각이 들자,
미래의 내가 조금씩 초라해졌다.


작은 물방울 하나가
어렴풋이 뭉개져 있던 ‘퇴사’라는 단어 위로 떨어졌고,
그 글자는 그제야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숫자는 사람을 성장시키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엔 사람을 같은 자리에 묶어두기도 한다.

그 경계선을 느끼는 순간이, 나에게는 그 아침이었다.


그 이후로 모든 게 다르게 보였다.

회사의 방향성은 내 생각과 맞는 걸까?
우리는 트렌드에서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하는 일은 정말 나만 할 수 있는 일일까?
애초에 이 일이 특별한 일이긴 할까?
시니어들은 이 상태에 만족하고 있는 걸까?
회사의 성장이 곧 내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시간 동안 고민한 끝에 결국 남은 질문은 하나였다.

‘그럼, 나는 뭘 해야 하지?’

명확한 답도, 거창한 다짐도 없이
나는 그렇게 얼렁뚱땅 퇴사를 말했다.


퇴사의 이유는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순간 순간들의 '축적' 일지도 모른다.

그 축적에는 분명 기준이 있지만,

대부분은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기준이다.


그래서 어떤 날의 선택은 갑작스러워 보이지만,
사실은 오래전부터 조용히 준비되어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평소에 그 기준에 대한 메타인지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결정의 순간엔 설명할 수 없는 감정만 남는다.


반대로 자주적인 생각으로 만들어진 기준은
하루하루를 ‘결정을 돕는 순간’으로 바꿔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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