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기 7탄
목차
1. 유로스타
2. 파리 입성기
3. 루브르 박물관
파리 북역 → 빌레쥐프(한인숙박) → 루브르 박물관
첫 도시, 런던을 뒤로 하는 날이다. 런던을 떠난다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파리를 보겠다는 설레임을 마주하러 가는 길.
새벽 6시부터 바리바리 짐을 싸서 숙소를 나왔다. 아침 유로스타가 티켓값이 저렴해서 아침 표를 끊었다.
지하철은 한산하다. 따뜻한 온기가 감돈다. 노숙하기 좋은 온도다.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면서 다급하게 찍었다. 이렇게 허겁지겁 영국을 뒤로 하는 게 못내 아쉬웠다.
"Underground.." 프랑스에서는 지하철을 뭐라고 부를까. 프랑스 말로 지하철은 뭐지?
런던에서 파리까지 가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 첫째, 유로스타. 둘째, 버스. 유로스타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버스 타면 10시간 넘게 걸린다.
유로스타를 타는 건 비행기 타는 절차와 유사하다.
영국에서 프랑스로 넘어가는 유로스타는 여권을 챙겨야 한다. 티켓은 물론이다. 티켓도 항공권처럼 생겼다.
유로스타 열차 시간은 수시로 바뀌는 일이 많다. 배차가 미뤄지거나, 심지어 당겨지는 경우도 있다. 미뤄지는 건 어찌저찌 이해가 되는데 당겨지는 건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시간 맞춰 오는 사람이 못 탈 수도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최소 1시간 전에는 미리 가서 기다리는 것을 추천한다.
저렇게 여권과 티켓을 찍고 들어가면 대합실이 나온다. 공항으로 치면, 면세점이 늘어서 있는 그 구간이다.
카페들도 있고 빵집도 많다. 이제야 좀 여유가 생기는 타이밍이다.
창 밖으로는 재미없는 풍경이 반복된다. 시속은 330KM/H. 수시로 귀가 먹먹해진다. 요금은 50유로.
유로스타는 영국과 프랑스를 해저 터널로 연결한다. 처음엔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영국해협의 해저 경치를 바라볼 수 있을 줄 알았다. 수족관처럼, 아쿠아플래닛 이런 데에서 투명 유리로 상어를 지켜보듯 유로스타를 타고 지나가면서 바닷속을 구경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실시간으로 바깥 경치를 확인하며 바닷속에 들어가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웬걸, 바보같은 착각이었다. 해저에 진입했는데도 차창에는 새까만 벽밖에 보이지 않았다. 지상에서 '터널'을 이용하듯 여기도 까만 터널 내부로 기찻길이 놓였던 것이다. 혼자 기대했다가 혼자 실망했다.
과일 주스와 커피, 베이글과 과일. 기차에서 먹는 아침 식사.
대각선 자리쯤에 영국 커리어맨들 4명 정도가 앉았다. 하얀 셔츠에, 넥타이는 없었다. 가레스 베일, 헤리 케인을 떠올리게 하는 흔한 영국 남자.
이곳저곳 근육들이 하얀 셔츠 가득 팽팽하게 솟아 올라있었다. 기차 테이블에 맥북을 펼쳐놓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누가봐도 업무 중이었다.
저 모습을 필름 카메라로 담아보고 싶지만, 불가능할 것 같았다. 0.5M도 떨어져 있지 않은 동양 남자가 카메라 렌즈를 들이댄다면, 불쾌할 테니까. 토익 문제 P1 정도에 그림 지문으로 쓰기 딱 좋은 사람들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다르게 이곳 사람들은 교통수단 내에서 뭔가 생산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인상을 받았다.
[런던을 뒤로 하며]
Camden Town 역 앞. 내가 보고 느낀 대로 런던 후기를 요약해본다.
1. 보행문화
도로가 좁아서 무단횡단을 하는 데에도 5초면 된다. 일본처럼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다. 차도가 많이 좁다.
2. 흡연
히드로 공항에서는 흡연부스를 봤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성 구별 전혀 없다. 길을 걷다보면 담배 연기를 맡기 부지기수다. 담배를 간식 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 커피처럼.
한 살도 안 돼 보이는 유모차를 끈 채 두 대를 연달아 피우는 여자가 기억난다.
3. 인종
세인즈버리 마트의 종업원들은 대게 중동 사람인 것 같았다. 계산원, 진열 노동자. 인종도 다양했다. 흑인, 아랍, 아시안 등등. 인종이 다양한 만큼 스타일도 다양하다.
인종차별은 1도 못 느꼈다.
세븐시스터즈로 가던 길에 들른 교회.
4. 패션
제 각각이다. 칼하트 비니가 유행인 듯, 남녀노소 쓰고 다닌다. 닥터드레 헤드셋을 끼는 사람도 많았고 에어팟(그땐 1세대)을 끼고 다니는 사람도 쉽게 눈에 띄었다. 남자들은 대개 젠틀한 패션. 할아버지도 정장을 쭉 빼입고 다닌다. 노인의 쇠약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일단 겉보기로는 그렇다. 외투는 대부분 무채색을 입는다. 네이비나 검정 계열.
5. 가는 말 고와야 오는 말 곱다.
옷깃만 스쳐도 ‘Upp, sorry’를 연발한다. 길 가다 뭔가를 양보하면 지체없이 ‘Thank you’와 엷은 미소를 보낸다.
동틀녘 Underground.
6. 언어
영어라 큰 어려움은 없었다. 유로스타를 탄 순간부터 프랑스 발음에 절은 영어가 들려왔다. 앞으로 남은 6개국 중에는 영어가 없다. 잘 헤쳐나가기를.
7. 물가
외식은 비싸다. 마트는 싸다. 우리나라보다 비싼 품목을 거의 보지 못했다. 외식 메뉴는 우리나라 외식보다 최소 2~3배는 비싸다. 만 원은 기본.
8. 음식
딱히 내세울 음식은 없어 보인다. 피쉬 앤 칩스가 전통 음식이라고는 하지만 식욕을 돋구지는 않는다. 먹지도 않았다.
외식을 3번 했는데 Nando’s, Patty&Bun, Shakeshak Burger 등 전부 다 프랜차이즈 음식이었다. 구운 치킨에 소스를 발라서 먹는 음식점. Costa라는 카페도 있는데 이건 이디야 수준.
어딜 가나 눈에 띈다.
유로스타에서 이렇게 영국 후기를 적고 나니 프랑스에 도착했다.
파리 북역에 도착했다.
프랑스에 왔으니 왼쪽 손목에 찬 시계도 다시 맞춰야한다. 이제부터 한국과 8시간 차이. 영국은 9시간 차이였다. 기차에서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는데, '아 이제 실전이다', 싶었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 중 50% 이상이 흑인이었다. 지난 4일간 런던 생활과는 너무도 달라진 환경이었다.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군대에 입대하던 날, 부모님과 헤어지고 연병장에 집합하던 그 타이밍. '이제부터 실전이다, 정신 단디 차리자..' 내내 긴장했다.
그런 느낌이었다. 기차를 타는 2시간 사이에 모든 전경이 달라져버렸다.
간판에 써있는 글자가 달라졌고 사람들 피부색이 달라졌으며 입고 있는 옷들도 자유로워졌다.
런던에서는 흑인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TV 드라마에서 나오던 멋진 거리가 어딜가나 펼쳐졌다. 번화가는 번화가대로 세련됐고 근교 주택가는 나름대로 고전적인 멋을 풍겼다.
우리나라는 인종이 하나다.
생긴 것도 비슷하고 옷 입는 스타일부터 화장법까지 다수가 공유하는 공통분모가 꽤 거대하다. 드라마에 어느 헤어스타일이 유행하면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에 검색을 하고, 그 스타일을 추종한다. '한소희 가방', '전지현 코트' 이런 단어로 설명은 충분할 것 같다.
여기에 그런 건 없어 보인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네 멋대로 너는 살고 나는 내 식대로 산다. 나는 너를 간섭하지 않는다. 원초적 공통 분모가 적기에, 서로를 이질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이런 텃밭에서 개인주의는 싹을 틔웠나보다. 미디어로도 그렇고, 살면서도 그렇고, 흑인보다 백인에 노출된 빈도가 높아서 흑인을 보면 자연스레 움츠러들고 경계하게 됐었다(편견)
왠지 내 주머니를 털어갈 것 같았고 혹시라도 강도가 발생하는 건 아닌지. 유럽에는 소매치기가 많다던데 흑인들이 소매치기를 주로 일으키는 거 아닌지. 그런 편견.
유럽을 조금 돌아다니다 보니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소매치기의 주범들은 10대 중후반 녀석들. 나는 흑인들을 보고 신기해하지만 이 프랑스 땅에서 더 신기한 존재는 저들이 아니라 '낯선 동양인'이다.
유독 흑인들과 눈마주치는 일이 많은 것처럼 느껴졌다. 흑인들이 나를 쳐다보는 이유는 나에게 어떤 나쁜 꿍꿍이가 있어서가 아니다. '동양인'이어서 호기심에 쳐다본 것일 뿐. 또는 내가 먼저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기에 나를 쳐다봤을지도.
그때는 방어 모드였어서 그런 생각에까지는 미치지 못했었다. 구글맵스를 보다가 헤메어 길을 물어볼 때도 흑인보다는 백인에게 길을 묻게 됐었다. 프랑스에서 2~3일 정도 머무른 뒤에는 오히려 흑인들을 먼저 찾기도 했다.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사람이 많았다.
첫인상과 마지막 인상이 크게 달랐던 나라, 프랑스.
이 사진을 찍으려고 까치발을 들고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던 그때 3초가, Live Photo처럼 기억 속에서 살아난다.
여기는 위생상태도 더러웠다. 런던을 여행 출발지로 택한 나같은 여행객들은, 다들 프랑스에 와서 적잖이 놀라게 될 것이다.
프랑스에 와보기 전까지 내 머릿속에 파리=에펠탑이었다. 낭만과 예술의 도시. <Paris In the Rain>은 파리의 낭만만을 조명했다. 비가 내리고, 에펠탑 근처 카페에서, 창문을 따라 흘러내리는 빗물을 보며 감상에 젖는, 그런 풍경.
이제부터 나에게 파리는 벌레 파리다. 그 이름을 가질 자격이 충분하다.
어떻게 프랑스의 중심 도시 파리의 지하철 역에서 오줌 지린내가 진동할 수 있단 말인가. 청룡열차를 타는 승차감이었다. 덤프트럭을 타고 자갈밭 위를 달려도 이보다는 안락하리라.
이건 덜컹이는 정도가 아니다. 온 몸이 후득거리는 떨림이며 귀를 꽉꽉 채우는 소음. 지하철은 연식이 꽤 됐다. 지하철 문에도 락카로 낙서가 돼 있다. 여기는 동남아다. 동남아.. 유럽의 동남아.
누가 여기를 선진국이라 하는가. 지하철 음성 안내에 영어도 없는 이 나라. (7호선) 오직 프랑스어뿐인 이 나라.
테라스. 파리 식당들에는 대부분 테라스가 있다.
옷차림도 영국과 꽤 다르다. 영국서는 거리 사람들 옷차림이 젠틀했다. 노인들 중에서도 '차려 입은' 사람이 많았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선진국"이고, 런던 공중전화에서 느껴지는 그런 고풍스러움이 있었다.
이 땅에 오기 전까지 프랑스나 영국이나 독일이나, 내 머릿속에서는 모두 선진국일 뿐이었는데. 이런 서유럽 국가들은 모두 선진국일 줄만 알았다. 길거리가 깨끗하고 복지 수준이 높으며 복장도 단정한, 그런 도시.
프랑스는 달랐다.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런던과 너무 달라서 신기했었다) 아니 '츄리닝'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 영국이 Classic Music이라면 프랑스는 Hip-Hop이다.
파리의 색감.
냄새는, 가히 오진다고 말하고 싶다. 지하철 차창 밖으로 하수구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게 보이는데, 그 물의 근원지는 어디일지.. 음... 어딘지 알 것 같다.
객실내에서 무궁화호 화장실에서만 맡을 수 있는 냄새가 난다.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승객들은 각자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다.
메이플스토리의 커닝시티가 떠올랐다.
아무도 없는 지하철. 가끔 클럽 분위기를 낼 수 있다. 흔들흔들 거릴 때마다 불이 꺼졌다 켜졌다 한다. 프랑스 지하철만의 매력. 일석이조.
파리에서 처음으로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가는 길이었다.
역 티켓 발권 기기에서 티켓을 뽑으려니까 3M 정도 거리에서 어떤 10대 프랑스 남자애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괜한 경계심이 들어서 내 짐들을 꼭 부여잡고 지하철 게이트를 통과하려 했다.
까르네(티켓 이름) 개찰구에 넣으려니까, 아까 그 남자가 내 바로 등뒤까지 접근했다. 개찰구 문이 열렸고, 그녀석은 내 뒤에 딱 붙어서 나와 함께 개찰구를 통과했다.
그땐 상황파악이 안 됐다. 10초 정도 지나니까, 아 저 놈이 지금 무임승차를 한 거구나. 이게 프랑스구나,, 했었다.
자유의 나라였다. 자유의 여신상을 파리로 옮겨 심어야할 것 같았다. 참고로, 까르네 1장에 1.5유로 엄지 손가락만한 종이 티켓이라서 잘 관리해야 한다. 다 쓴 까르네는 오른쪽 주머니에, 안 쓴 까르네는 왼쪽 주머니에 넣어 뒀었다.
프랑스어로 쓰여 있는 안내판. 출구는 Sortie. 이것만 알면 된다.
또 다른 에피소드.
지하철을 탔다. 나는 7정거장 정도 가야 숙소가 나오는데 5정거장 정도 간 뒤에 뭐라뭐라 방송이 나왔다. 프랑스 말로만 나와서 알아듣지 못했다. 다음 역에 잠시 정차했고 푸쉬쉬 하는 소리를 내며 힘을 뺐다.
사람들은 뭐라뭐라 투덜대며 하차했다. 불평 가득한 혼잣말들이었다.
나는 가만히 객실 안에 남았다. 두 정거장 정도를 더 가야했으니까. 구글맵스에 그렇게 나오니까..
사람들이 내리고 난 뒤 다시 문이 닫혔다. 지하철은 그 상태로 3분 정도 더 나아갔다. 어느 어두컴컴한 주차장에 멈췄다.
그러고는 갑자기 객실 불이 꺼졌다. 앞이 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 불안감이 엄습했다. '폐쇄공포증?' '공황장애?' 뭐 그런 사람들이 겪는 공포였다. 갑자기 숨이 벅차면서 두려움이 머리 끝까지 차올랐다.
깜짝 놀라서 창밖을 봤더니 운전사 아줌마가 차를 멈춰두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옆에 초록색 비상 버튼이 있길래 다급히 눌렀다. 급한 마음에 창문을 쾅쾅쾅 두드리며 소리를 질렀다. 너무도 순식간에, 10초 안에, 멍-하니 벌어진 일이라 당황스러웠다.
"헤이!! 헤이!! Help Me!!"
그 여자는 뒤를 돌더니 나를 발견했고 언성을 높이며 이런저런 제스처를 써가면서 소리를 지르며 나를 욕했다. 프랑스어는 모르지만, 얼굴 표정으로 보나 손짓으로 보나 백퍼센트 욕이었다.
그렇게 지하철에서 하차했다.
터키 사람이 운영하는 케밥 점포에 가서 점심을 빠르게 때웠다. 간단한 메뉴들로 저렴하게 해결했다. 파리에는 다양한 인종이 머무른다.
또, 파리 사람들은 영어를 잘 하지 못한다. 처음에는 왜?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니 당연했다. 나도 일본어나 중국어 잘 못하니까.
그럼에도 그들이 영어를 잘 할 줄 알았다. 유럽 사람들은 다들 적당히 영어를 할 줄 알았다. 잘 하길 기대했다.
루브르!
2일만에 박물관 3개째..(미술관 포함)
이 건물 한 채를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력을 투입했을지, 또 이 건물 안에 살던 사람은 얼마나 높은 사람이었을지.
루브르는 원래 궁전이었다고 한다. 1800년쯤부터 해서 궁전의 일부를 미술관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그러다가 지금 루브르가 된 것이다.
세계 3대 박물관은 대영 박물관(영국), 루브르 박물관(프랑스), 바티칸 박물관(바티칸-이탈리아) 이렇게 3개인데 벌써 2개까지 탐방했다.
루브르로 입성하는 길.
파리패스(뮤지엄패스)를 끊었다. 파리패스는 2일권/3일권/5일권 이런 식으로 나뉘었던 것 같은데, 나는 2일권을 끊었고 7만원 정도에 구입했다. 그래서 2일 동안 빡세게 뮤지엄을 찾아 돌아다녔다.
이 유리 피라미드 안에 들어서기 전에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처음으로 만나본 호객꾼들이라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다.
울그락불그락한 흑인 무리가 유리 피라미드 앞에 자리를 잡고 호객질을 하고 있었다. 몸집 큰 10대-20대 흑인 친구가 거리를 좁혀왔다.
"(뭐라뭐라 중국어)". 나를 중국인으로 인식했나보다.
그러면서 루브르 티켓을 팔꿈치 같은 데에 밀어넣으려고 했다. 강매 수법이다. 얼떨결에 그 티켓을 손으로 쥐게 되면 Game Over. 절대 쥐면 안 된다.
이 녀석들은 매표소 티켓 가격보다 5~10유로 정도 비싸게 판다. 매표소 가기 전에, 입장료를 모르는 관광객을 기습해서 비싼 값에 표를 팔아넘기려는 수작이다. 양아치 중에 이런 양아치가 없다.
프랑스 정부는 도대체 무얼 할까. 관광객을 대놓고 등쳐먹는 이런 사람들을 규제할 생각이 없나? 공생 차원에서 방생해두는 것일까.
피라미드 내부로 들어오면 지하 계단이 이어진다. 박물관은 지하부터 시작한다.
루브르를 돌면서 느낀 건, 프랑스는 금수저(Gold Spoon)라는 점이다. 부모를 잘 타고 난 국가다. 과거 화려한 역사를 품고, 명작 그림들이 널려있다. 적당히 관리해서 걸어두기만 하면 관광객이 알아서 몰려든다.
그래서 자기계발은 하지 않나 보다. 부모가 물려준 유산을 대충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근근히 살아가는 녀석처럼 보인다. 우리나라 재벌 3세처럼.
우리나라는 흑수저(Shit Spoon)다. 일제에 몸을 빼앗겼던 수모가 있다. 그래서 흑수저를 탈출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 했다. 흑수저는 금수저가 되고 싶어한다. 본인은 힘들게 살았어도 자식만은 부유하게 살기를 원한다. 어디 내놓아도 뒤쳐지지 않기를 바란다.
근 100년 간 우리나라는 누구보다 열심히 자기 계발을 해온 국가라고 믿는다. 석유도, 문화도, 식민지도, 뭣도 없었던 우리나라. 여기까지 온 것도 뿌듯한 성과다.
복도를 찍으려는 중에, 뷰파인더 안으로 커플이 들어왔다.
둘 다 오디오 가이드 헤드폰을 꽂고 있다. 남자는 작품 설명을 듣고 있는 것 같다. 여자는 지도를 보면서 다음에 어디로 갈지를 고민하고 있어 보인다.
나이키 로고가 이 니케 여신상 모양을 본떴다고 알고 있다.
<메이플스토리> 크림슨 발록 나오는 그 배같다. 동화 속에서 보던 여신. 구름을 누비며 하늘을 날 것 같은 배.
사회적 거리두기 0단계(마스크X). 이제 먼 옛날 이야기 같다.
철통 보안 모나리자. 이 앞에 최소 50명은 운집해 있다.
실제로 보니 굉장히 작았다. 너무 아담해서 멀리서 보면 안 보일 정도다. 그래서 이리저리 어깨 부딪히며 맨 앞까지 왔다. 저 유리는 안 깨진다고 한다. 이거 방탄유리야 이 관람객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 여성 혁명가가 프랑스 국기를 들고 있다. 들라크루아, 기억난다. 이름이 멋있어서 외웠다. 프랑스 7월 혁명을 그린 작품. 다양한 계층들이 참여했다는 점이 특색있다고, 그때 오디오 가이드에서 들었다.
오른쪽은 진~짜 많이 뵌 분인데,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본 분인가.
박물관을 하도 많이 돌아다니다보니, 감흥이 점점 떨어졌다. 호기심이 사라져간다. 2일 3박물관은 강행군이었나보다.
콩코르드 광장. 파리 한복판에서 삼성 광고가 대문짝하게! 그것도 한글로!!
뿌듯하다. 여기서 벌어졌던 일이 하나 있다.
이 구간이다. 루브르 박물관 → 콩코르드 광장.
이 도보길은 상당히 좁다. 길 오른편으로는 고급 호텔들이 즐비해있고, 그 건물 1층에는 환전소들이 들어서 있다. 마침, 영국에서 파운드가 꽤 많이 남은 상황이었다. 지나치는 길에 환전소(길거리에서 복권 파는 작은 상점처럼 생김)에서 파운드를 유로로 바꾸기로 했다.
환율을 잘 몰라서, 영어로 물어봤더니 자기는 영어 못한다면서 프랑스 말로 뭐라뭐라 대답했다.
그냥 파운드를 전부 다 내밀었고(교도소 면회 장소처럼 투명 벽이 있었다) 유로로 바꿔줬다.
엄청나게 손해봤다. (정상가보다 20-30%는 깎인듯 했다) 다시 바꿀 수도 없었다. 다시 파운드로 바꾸면 또 환전 수수료 나가니까.
절!대!로 여기에서 환전하지 말자. 환전은 정식 은행에서 해야 한다.
7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