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기 9편
파리 3일차. 1월 30일.
목차
1. 피카소 미술관
2. 사랑해 벽
3. 몽마르뜨 언덕
4. 개선문
피카소 미술관 → 사크레쾨르 대성당 → 에투알 개선문(샹젤리제 거리)
간밤에 눈이 쌓였다.
1) 피카소 미술관
피카소에 관심이 많다거나 예술에 관심이 많아서 찾은 건 아니다. 뮤지엄 패스를 갖고 있었기에 무료로 갈 수 있으니까 간 것.
Musee PICASSO
피카소는 스페인 사람이다. 스페인에서 태어나서 프랑스에서 예술활동을 펼쳤다. 유럽 아티스트 중에는 출생지와 활동지가 다른 경우가 꽤 있는 듯 하다. 미술가도 있고 문학가도 있다. (밀란 쿤데라, 헤르만 헤세 등)
우리나라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나라 문학가들은 조선을 피해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 독립 운동을 위해 추운 만주 지역으로 떠났고(이육사, 백석) 잘 사는 집안이었다면 일본으로 유학(윤동주, 정지용 등)을 갔다.
고뇌가 깊었을 테다.
초등학교에서 학부모님과 같이 소풍을 왔나보다.
큐레이터가 프랑스어로 설명을 하기에 작품 설명을 열심히 귀동냥했으나.
난해했다. 프랑스 말도, 피카소도. 어린 아이들이 이런 그림을 본다면 뭐라고 생각할까. 오히려 '예술'과 거리를 두게 되지 않을까.
낯이 익은 분이다.
문제집 표지 모델이었나. 어디서 봤더라. 50대 정도로 보인다. 양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정면을 바라본다. 단발머리. 목이 길다. 원근법이나 명암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화가가 전하고자 하는 느낌은 전해진다. 무언가 내려놓은 듯한 표정. 왠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에 '초상화 하나 그려주세요..'하고 작가를 찾아온 사람 같다. 울적해보인다.
영화 <마더> 마지막 장면에서 석양 사이로 관광버스 춤을 추는 김혜자처럼, 갈대밭에서 흐느적거리는 김혜자처럼.
이 소는.. 광우병 걸린 소 같다. 살짝 맛이 간 것 같다. 피카 '소'. 혀를 내밀고 있고 몸이 뒤틀려 있다. 병들었나.
오른쪽은 이중섭의 소다. 이중섭의 소는 저돌적이다. 선이 굵고 색이 강렬하다. 피카소가 그린 것과 대조된다.
구글맵스에 '몽마르뜨'를 검색하면 공동묘지(몽마르뜨 묘지)로 안내한다.
공동묘지 갔다가 다시 사크레쾨르 성당까지 걸어가는 데 30분 넘게 걸었다. 사크레쾨르 성당 근처에 지하철 역(아베쓰 역)이 있다. '사랑해 벽' 바로 앞에 있다.
근린 공원 같은 분위기다. 집 앞 작은 공원 같다. 무릎 높이까지 오는 울타리 문을 밀고 들어가면 이 새파란 벽이 나온다. '이게 명소라고?' 새파란 벽에 글씨를 써두었다. 가로수길 카페 화장실 벽처럼 생겼다. '사랑해'라는 단어. 수 백 개 언어로 써 있다.
한글로 쓰인 '사랑해'라는 단어를 찾아보는 묘미는 있었다. 2~3개 정도 찾았던 것 같다. 다들 본인들 모국어를 찾아 셀카 찍기에 여념이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랑해' 단어를 찾을 것이고 일본인은 '아이씨떼루'를, 중국인은 '워아이니'를. 화장실 벽에 글씨를 써두어도 명소가 된다니. 우리 집 화장실에다가도 하루에 한 개씩만 써봐야겠다.
비장한 각오로 새 필름을 꺼내 들었다. 몽마르뜨 언덕은 사진 명소다. '사크레쾨르 대성당'까지 가려면 '사랑해 벽'부터 20분 정도는 걸었던 것 같다.
골목을 올랐다.
좁은 계단을 여러 번 올라야 한다.
인적이 점점 드물어졌다. '내가 길을 잘못들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다른 두려움이 엄습했다.
아, 맞다, 여기 '팔찌 강매 맛집이었지..' 몽마르뜨 언덕 근방에는 팔찌를 강매하는 흑인들이 많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학교 앞에서 500원이면 팔 것 같은 싸구려 팔찌를 들고 애매하게 서성이다가 먹잇감이 포착되면 작전을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한번 채워보고는, 무조건 사라는 식으로 우기고 보는 수법이다.
하지만, 내가 본 강매단은 너무도 무기력했다. <포켓몬스터>에서 로켓단은 항상 음모를 꾸미지만 결국 지우와 피카츄에게 혼쭐나서 하늘로 날아가게 되고, '반짝'하고 별이 되어 사라진다.
강매단들은 자기들이 유명한지 모르나보다. 너희들은 이미 네이버 블로그에 소문이 자자해.
얘들도 작전을 한번 꾸며보려고 관광객들에게 스윽 다가서지만 우리 관광객들은 저 멀리서부터 이미 강매단을 포착했고 그에 따른 행동 매트릭스가 완비돼있다. 키는 멀대같이 커서 위협감이 들기도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말을 걸려 해도, 그들을 '쌩'하고 지나치는 관광객들을 보면 약간의 연민이 들기도 한다.
내가 본 강매단은 기껏해야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사크레쾨르 대성당을 등지고 바라본 Paris.
우리나라는 도시 안에도 작은 야산들이 이곳저곳 있다. 초등학교 소풍 때 가볍게 올라가보기도 하고, 중간고사가 끝나고 체험활동으로 단체사진을 찍으러 가기도 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해발 200M 정도되는 산들이 여러 개 있다. 파리는 지대가 고르다. 그래서 정돈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몽마르뜨 언덕. 해발고도 129M. 파리에서 가장 높은 언덕이다.
덕분에 파리 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 카메라를 눕혀서 가로 모드로 바꿔봐도, 절대 한 장면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크레쾨르 대성당.
한국인 많다. 단체 관광객이 많은 명소 중 하나.
아쉬워서 파노라마로 한번 찍어봤다.
거리의 악사를 만났다.
몽마르뜨에서 처음 알게 된 Ed Sheeran.
이 가수 이름은 Nicky다. 노래 한 곡이 끝나고 나니 'It's Fucking Cold,,' 이러는데 욕을 저렇게 멋지게 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매우 추운 날이었다. Nicky는 한 곡을 끝내고는 관중들을 향해 물었다.
"누구 라이터 있어요?"
뒤쪽에 앉았던 어느 아저씨가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어
"야 이거 써!"
툭 하고 던져줬다. 라이터는 계단을 따라 또로록똑 굴러내려가서 니키 앞에 톡 멈춰섰다.
수십 명이 보는 앞에서 담뱃불을 붙였고 세 네 모금 빨고는 담배를 기탓줄 사이에 끼워둔 채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기타 가방 안에 1유로를 놓고 오면 니키는 "멜씨"라고 속삭여줬다.
Nicky를 만나고 나서, 한국에 돌아온 뒤로 수개월간 Ad Sheeran(광고 시런) 노래를 컬러링으로 해두었다. 눈 감고 가만히 듣고 있으면, 동영상을 틀지 않아도 그날 내 눈으로 담았던 장면들이 까만 스크린 앞에 상영되니까.
도로 한복판에서 개선문을 향해 사진을 찍었다. 커다란 열쇠 구멍처럼 생기기도 했다.
샹젤리제 거리는, 뭐랄까 예전에 "Oh! 샹젤리제~ 호! 샹젤리제~" 라고 노래를 만들어서 흥얼거릴 만한 거리는 이제는, 아닌 것 같다.
이 노래는 1960년대쯤 지어진 노래라고 한다. 60년 전이다.
당시 Paris는 지금보다 훨씬 빛나는 거리였겠지. 내가 느낀 샹젤리제 거리는 '시내? 데이트 코스?' 인스타 맛집 찾아다닐 만한 거리. 딱 그정도였다.
우리나라 시내에서 볼 수 있는 광경과 크게 다를 바 없었으니까.
아, 다른 점 하나를 찾자면
명품 매장 사이사이로 일정 간격을 두고 중동 계열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바닥에 대고 있다. 집시다. 맥도날드나 버거킹 종이컵을 자기 정수리에 대고 바짝 엎드려 있다. 그들은 관광객을 꼬드기려 들지 않는다.
며칠이나 재활용 한듯, 그 종이컵마저 검게 물들고 찢어져 있다.
샹젤리제 거리의 진광경이다. 나름 조직이 있는 것 같다. '갱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끼리 근무지를 나눠두었고 교대 시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이, 하루종일 여기서 그렇게 엎드려 있느니 차라리 일자리를 구하는 게 좋지 않겠어? 하고 권해보고 싶었다.
오지랖이다.
하나 더 있다. 가게 1층에 가드가 매장을 지키고 있다는 것. 루이비통 매장은 입장 시에 가방 검사를 실시한다는 것. 그 외에는 너무도 낯 익은 매장들이라 새로움은 없었다. 시내 나들이하는 정도.
개선문 주변 교통은 개판이다. 12개 도로가 개선문을 중심으로 연결된다. 길이 12개 나 있는 '로터리'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개선문에 올라가려면 지하를 통해 계단을 올라야 한다.
겉보기에는 딱딱한 기둥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나름 복잡하고 내실있는 녀석이다.
개선문 테라스(전망대)에 올라가면 사람들이 다들 취한 것처럼 비틀거린다.
달팽이관 같다.
이런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야 하니까..
저~ 멀리 에펠탑이 보인다. 철창 틈 사이로 사진 찍기 어렵다. 줌을 최대한 당겨서 찍느라 초점이 많이 흐리다. 개선문에 올라서면 12개 도로가 보인다.
자살을 방지하려는 목적에서인가, 철사로 그물이 하도 촘촘하게 쳐져있어서 사진을 찍으려면 렌즈를 그 철창 틈에 바짝 대고 찍어야 한다. 대단한 감흥? 그런 건 없다.
뻔한 풍경에 뻔한 야경. 이 장면은 Paris답지 못하다.
대낮에 본 니키가 더더욱 PARIS에 어울리지.
1층에는 전쟁의 승리를 기리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기대했던 만큼 집시를 만나지는 못했다. 소매치기를 시도하는 아이들도 없었다. 한 번 만나보고 싶다.
그 아이들. 어제 퐁뇌프 다리 근처에서 슬쩍 보기는 했지만 나에게 직접 들러붙지는 않았다. 이왕 파리에 온 것, 10유로 정도는 소매치기 당해도 좋으니 그런 친구들이 우르르 나에게 들러붙어 주기를 기대한다.
내일이 남아있다.
<이 날 쓴 일기 중>
9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