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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기숙 Aug 14. 2023

담양 관방제림   

숲에 이는 바람 소리

   

“저 큰 나무 밑에 가고 싶다.”

6월 월간지 ‘전원생활’에 실린 담양 관방제림을 보다가 툭 튀어나온 외마디였다. 족히 수백 년은 되어 보이는 커다란 나무 그늘에 유유히 자리를 잡고 하늘 향해 누워있는 사진 속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보내본다.


담양 관방제림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숲이다. 관방천에 있는 제방을 따라 2킬로미터에 걸쳐 거대한 풍치림을 이루고 있다. 푸조나무, 팽나무 등 족히 3~400년에 달하는 나무들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저 제방을 따라 걷기도 하고 맛난 도시락을 먹고,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 아래 달콤한 낮잠까지…. 상상만으로 미소를 지어본다.  

   

휴일을 맞아 자칭 나의 호위무사라고 늘 말하는 서방님과 호위무사직을 잘하는지 보겠다는 딸과 셋이 가보기로 했다. 돗자리, 과일, 음료 등을 챙기면서 소풍날처럼 설렜다. 근데 한번 나서려니 왜 그리 준비할 것이 많은지. 차에서 마실 따뜻한 커피까지 챙겼다. 딸은 패션쇼 중이다. “엄마 이 옷 어때?” “괜찮네.” “엄마, 이건?” “응, 그것도.” 영혼 없는 대답이 오고 간다. 마당에선 돌쇠 서방님이 “아직 멀었소?”하며 기다리는 눈치다. 겨우 차에 올라 드디어 출발이다. 딸은 가쁜 숨을 고른다. 숲이 뭐라고 이리 부산할까 싶지만 화창한 날씨만큼 기분 좋은 시간이다.

 

담양까지는 집에서 1시간 30여 분 소요되는 거리다. 고속도로에 진입하고 미리 차 안에서 점심 메뉴를 고르느라 짙어지고 있는 초록들을 놓치고 있다. 잠시 스마트폰을 접고 고개 들어본다. 오월의 연초록이 유월의 진초록으로 힘차게 물질하는 산들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중동지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오면 제일 부러워하는 것이 가는 곳마다 펼쳐진 푸른 산과 숲이라고 한다. 우리는 어딜 가든 산과 숲이 있으니 그 소중함을 잊고 산다. 가끔 산불이 나면 저 많은 나무와 그 숲에 있는 소중한 생명체들의 죽음에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산불도 산불이지만 멀쩡한 나무를 벤 자리에 태양광 패널을 얹어 마치 산이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고 있는 것 같다. 씁쓸한 맘으로 담양으로 향했다.

    

미리 주문한 비빔밥 도시락을 찾아 목적지에 도착했다. 휴일이라 제법 많은 사람이 숲을 즐기고 있다. 두 손 가득 짐을 나누어 들고 제방천 둑길을 올라갔다. 끝도 없이 이어진 길 따라 느릿느릿 발걸음들이 여유로운 쉼을 누리고 있었다. 사방이 온통 숲길이 어서 딱히 장소를 고를 것도 없다. 푸조나무 아래 잔디밭에 자리를 잡고 도시락을 펼친다. 비빔밥과 알록달록 먹음직한 샐러드, 과일 도시락이 꿀맛이다. 약간의 불편함은 숲이라는 이유로 감수한다. 

우리 집 돌쇠 서방님은 바로 식곤증이 오는지 누워도 될까? 하는 눈치다. 어느 순간 코 고는 소리가 나뭇잎 부딪는 상쾌한 바람 소리와 함께 정겹게 다가온다. 거친 세상 힘겹게 살아내느라고 그랬을까. 얼마 만인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처음 같은 소풍이다. 


나뭇잎 사이로 이는 바람에 ‘싱그럽다’라는 말이 절로 묻어 나온다. 험난한 세월을 견뎌낸 나무들이 이룬 위대한 작품에 꾸벅 인사라도 하고 싶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숲을 거쳐 갔을까. 그들의 숨결 같은 고마운 바람이 분다.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푸른 산들이 굽이굽이 물결을 그리며 따라온다. 산이 있으므로 하늘도 구름도 어우러져 비로소 한 폭 그림이 완성된다. 새삼 자연의 소중함이 절절해진다.

누구보다 자연을 사랑했던 박경리 작가가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원금은 건드리지 말고 이자만 갖고 살라.’ 우리는 미래세대로부터 자연환경을 빌려 쓰는 것이니 우리가 누리는 만큼 그들도 누릴 수 있게 자연을 보존해야 한다는 의미다.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으로 자연을 훼손하는 인간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숲에서 누린 짧은 하루가 스마트폰 배경 화면 속에 편안한 미소로 저장되어 있다. 

 숲에 이는 고마운 바람 소리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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