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밖은 어떤 곳인가요?

코로나19와 함께 찾아온 기회

by 수수


나는 26살,

그러니까 2016년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래서 2016년부터 2023년까지는

회사 밖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다.


대학 졸업보다도 먼저 취업한 탓에 더더욱 그랬다.

사회를 모르고 사회에 뛰어든 것이다.


근무 중 커피 사 먹으러 찾은 커피집 아르바이트생들은 그냥 내가 플레이하는 시뮬레이션 게임 속 NPC 같았다.


늘, 그곳에 존재하는 줄 알았다.


그러던 2019년 연말,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마비시켰다.

재산부터 시작해서 인생의 마지막 숨소리까지

모조리 집어삼킨 코로나19는 아직까지도 진행 중이다.


그 이후로 '늘, 존재'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이 커피집이 없어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곱창집 사장님 조금 더 버티셨으면 좋겠다 등

내가 즐겨 찾는 장소에 들를 때마다 기도를 드리고는 했다.


고백하자면 나도 코로나19로 인해 아주 큰 후유증을 얻었다. 뇌신경이 손상되어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


속상해하는 부모님과 남편 앞에서

'그래도 약 먹으면 안 죽는 게 어디냐.'며 뼈 시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하지만 후유증은 내가 더 이상 사회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로 내 인생에 깊게 침투했고,

2023년 11월을 마지막으로 사회생활을 '일시중단' 했다.


아까웠다.

난 지금 시대에 굉장히 걸맞고 꼭 필요한 직무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AI 현주소인 멀티모달에 도달하기 훨씬 전부터,

LLM PM이었고, 그 이전엔 게임 개발 PM이었다.


그러나 건강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서

내 커리어가 더 이상 아무 소용이 없었다.


더 이상 일을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는데 1년이 걸렸다.

너무 우울해서, 무기력해서, 내 커리어를 전부 부정당했다는 마음에 '왜 하필 나였을까.'만 고민하며 반년을 보냈다.


그러던 2024년 여름,

'나였어야 하는 이유'를 찾아냈다.


무언가 기록하고 싶어졌다.

난 취미가 식물 키우기다. 심지어 희귀 식물을 무척 좋아한다. 이런 나의 취향 그리고 취미를 인스타그램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나는 '글자'도 원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인지라

내가 남기는 글자가 많아질수록 이 세상 곳곳에

내가 남긴 원자들이 돌아다니고 분명히 그 원자는 다시 내게 돌아와 또 다른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다 믿었다.


그리고 내 예상이 맞았다.

잡지사 인터뷰 및 집초대 커뮤니티, 이벤트 기획 등

회사 다닐 때보다 훨씬 다양한 기회들이 찾아왔다.


그 후, 나는 '기록하는 행위'도 취미로 두기로 했다.


왜 하필,

코로나19로 뇌가 손상이 된 사람이 나였을까.


나의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문체로 쓰는 투병일기와,

투병 중 잡을 수 있는 기회들,

그리고 그 기회들을 만나게 해주는 역할을

글자라는 원자로 널리 퍼뜨리라는 뜻인걸 알았다.


투병 중이지 않은 사람에게도,

앞으로 연재할 나의 이 에세이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