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칼로 전시를 다녀와서
늦은 오후, 당진문예의 전당 전시실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마주한 건 차갑고도 뜨거운 프리다 칼로의 눈빛이었다. 그 눈빛은 마치 나를 꿰뚫고, 숨겨진 내면 깊숙이 닿으려는 듯 강렬했다. 그 시선에 숨이 멈췄고, 그 자화상 앞에 서서 묵묵히 나 자신과의 대면했다.
프리다는 자신의 얼굴을 수없이 그렸다. 같은 얼굴이지만, 매번 다른 고통과 희망이 그날의 숨결 따라 붓끝에서 살아났다. 그녀에게 자화상은 단순한 초상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상처를 꺼내 보여주는 고통의 언어였다. 하루하루 생존의 기록이었다. 그녀는 말없이 묻고 있었다.
“너는 너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니?”
프리다의 삶은 짧았지만 깊었다. 몸은 사고로 부서졌지만, 그녀는 침대 위에서 붓을 들었다. 움직일 수 없는 육신 안에 갇혔지만, 마음은 어느 누구보다 자유롭게 멀리 날아갔다. 그녀가 그려낸 고통의 언어들은 내 안에 묘한 울림을 남겼다. 누구에게나 고통은 있다. 중요한 건 그 고통을 어떤 방식으로 살아내는가이다.
나는 프리다의 그림 앞에서, 나 자신이 외면해 왔던 고통을 직면했다. 말하지 못한 아픔, 숨겨둔 상처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고통은 한 가지 모습이 아니다. 때로는 불타는 붉은 드레스처럼, 때로는 차가운 검은 바람처럼 각기 다른 얼굴로 삶에 찾아든다.
그녀가 입은 붉은 드레스와 그 뒤의 검은 배경, 차갑고 거센 바람이 일렁이는 듯한 화면 앞에 오래 머물렀다. 삶의 색은 그렇게 대조적으로 존재한다. 그녀는 눈을 감지 않았고,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녀는 아픔을 응시하고, 기꺼이 받아들이며,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것이 내가 프리다에게서 배운 첫 번째 수업이었다.
전시의 마지막에 놓인 작품, 유작인 <삶이여 만세(Viva La Vida)>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잘 익은 수박들이 먹음직스럽게 그려져 있었고, 그 속에 새겨진 'Viva La Vida'는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을 해방시킨 선언이었다. 삶을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삶을 찬양했다. 고통 끝에서 발견한, 조용한 평온과 기쁨이 그림 위에 놓여 있었다.
나는 프리다 칼로를 동정하지 않았다. 강인한 사람이라고 추켜세우지도 않았다. 단지 아픔을 품고 그 속에서 삶의 빛을 찾아낸 한 인간으로 존경했다. 나 또한 그녀 앞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내 삶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감춰둔 고통, 상처들, 아직 꺼내지 못한 말들을 떠올렸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고통이 있다. 그 고통은 결코 크기나 무게로 비교될 수 없다. 다만 그 고통 앞에 무너지는 사람과, 그 고통을 품고 걸어가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녀는 후자의 사람이었다. 그녀는 고통을 언어로 만들었고, 색으로 표현했다. 나 또한 나만의 언어로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전시장을 나서며 다시 한번 그녀의 눈빛을 떠올렸다. 그 강렬한 시선은 지금도 나를, 이 글을 읽는 당신을 향해 묻는다. “너는 진정 너 자신을 알고 있니?” 그 질문을 오래 품고 나는 오늘도 나만의 언어로 내 삶을 써 내려간다. 삶이여 만세, 고통을 넘어 빛나는 모든 순간에.
고통은 삶에 새겨진 깊은 언어. 삶은 그 언어를 나만의 빛으로 풀어가는 여정이다. 나는 그 여정의 한 페이지를 프리다의 붓끝에서 읽는다. 프리다 칼로의 눈빛 앞에서 새롭게 나 자신을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