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동네에는 늘 ‘시절’이라는 아저씨가 있었다. 늘 헐렁한 바지에 어딘가 어수룩한 표정. 아이들이 놀려도 화 한 번 내지 않고, 묵묵히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내던 분이었다. 바보처럼 보였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사람. 충남에서는 그런 사람을 ‘시절’이라고 부른다. 헐렁하지만 따뜻하고, 자기 것을 잘 챙기지 못한다. 자기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조금 물러서고 덜어내며 사는 사람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과의 갈등이 줄어든다. 사람들은 그대로인데, 내 마음빛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사소한 말에도 상처받고, 화를 내며 관계를 끊었다. 후회와 응어리가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 그때는 그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알게 되었다. 과도한 감정 소모였고, 관계는 단순히 정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하루하루가 지나며, 나는 조금씩 마음을 내려놓는 법을 배웠다. 갈등보다는 머무름, 승패보다는 진심이 소중함을 깨달았다.
함께한 사람들이 하나둘 떠난다. 이별은 나이와 상관없다. 풀지 못한 이야기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남긴 채 떠나는 모습을 보면, 마음 한쪽이 덜컥 내려앉는다. 그럴 때마다 내가 왜 그렇게까지 마음을 담았는지, 후회와 미안함이 몰려온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마음은 반복해서 괴로워한다.
이런 경험을 거듭하면서 나는 ‘시절’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조금 어수룩하고, 헐렁해 보일지라도 내 마음을 지키며 사람을 품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이제는 내가 먼저 손을 내민다. 어색한 사람에게 말을 걸고, 의미 없는 농담도 던진다. 지금 함께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관계의 승패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다. 단지 그 순간에 진심으로 머무는 것이 중요하다.
누군가 보기엔 어수룩하고 바보 같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나를 위한 선택이다. 내 감정을 소모하지 않고, 언젠가 다시 볼 수 없을 순간을 후회 없이 보내기 위한 작은 다짐이기도 하다. 어수룩함 속에서도 나는 단단해진다. 화내지 않고, 억지로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대신 따뜻하게 다가가는 용기를 배운다. 관계에서 힘을 쓰기보다, 마음을 다해 머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함께 있는 시간 안에서 진심을 다하기, 그것이 내가 선택한 방식이다. 예전 같으면 사소한 오해에도 마음이 상하고, 언성을 높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잠시 물러서서 상대를 품는 여유를 갖는다. 관계에서 승패를 따지지 않으면서도, 내가 지키고 싶은 것들을 지킨다. 화를 내지 않는 용기, 먼저 손을 내미는 따뜻함, 자존심을 내려놓는 여유. 그것이 바로 시절이 된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나에게 시절이 된다는 것은, 조금 헐렁하고 어수룩해 보이는 대신 단단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관계의 갈등에 마음을 다 빼앗기지 않고, 중요한 순간에 마음을 담을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결심한다. 누군가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함께 웃을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언젠가 다시 볼 수 없게 될 순간을 후회 없이 보내기 위해, 나는 지금 이 선택을 한다.
시절이 된다는 것은 자기 마음을 지키면서도 타인을 배려하는 삶이다. 억지로 강해지려 하지 않고, 어수룩해 보일지라도 따뜻함과 여유를 잃지 않는 삶이다. 그런 삶이 내 주변 사람들에게 조용한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오늘도 나는 작은 시절로 살아간다. 화내지 않고, 먼저 웃으며, 마음을 소모하지 않고도 관계를 품는다. 누군가의 쉼이 되기 위해, 누군가의 위로가 되기 위해, 나는 헐렁하지만 단단하게 살아간다.
시절이 된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과의 화해이자, 관계 속에서의 지혜이다. 조금 어수룩하고, 조금 느긋하게, 그러나 누구보다 진심으로 살아가는 법. 그렇게 오늘도 나는 시절이 되기를 마음먹으며 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