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 고등학교 친구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렀다. 친구는 청첩장을 건네며 나에게 축가를 부탁했다. 내가 축가를 부른 경험이 있다는 걸 알고 부탁한 것도 있지만 친한 친구가 불러주는 축가는 의미가 있을 거라며 부탁한다고 했다. 나를 본인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를 만큼 가까운 친구라고 생각해 준 마음이 고마웠다. 나도 그 친구의 결혼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축하할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렜고, 그래서 더 열심히 준비했다.
결혼식 날, 웨딩드레스를 곱게 입은 친구 앞에서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을 부르며 행복하게 잘 살라는 눈빛을 보냈고, 친구도 내 마음을 느꼈는지 따뜻한 미소로 화답했다. 그 순간은 정말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고, 결혼식 이후에 우리 둘은 더욱 돈독한 사이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결혼식 이후 그 친구와의 만남을 미루고 있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게 되었고, 가까이 지내다 사이가 나빠지면결혼식 날의 감동마저 깨질까 봐 두려웠다.
회사에서 동료들과의 관계도 조심스럽다. 동료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 못 할 이직 이야기를 나에게만 한다거나,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슬픔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때면 나에게 마음을 많이 열어준 것 같아 고맙고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멈칫한다. 너무 사이가 가까우면 서로에게 실망할 일도 많지 않을까. 회사에서 불편한 관계가 생기면 서로 힘들 테니 차라리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다는 마음이 커지면 어느새 내 안에 스스로를 절제하고 방어하게 만드는 힘이 생기는 것 같았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는 걸까.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완벽한 인간관계를 맺으려 애를 썼던 과거의 내가 떠오른다.
모든 일에 의욕이 넘치던 시기가 있었다. 취업에 성공해 처음 독립했을 때, 앞으로는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특히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맺으며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서로 바쁘게 살다 보니 연락이 뜸해진 사람들에게 먼저 연락해서 안부를 묻고, 직접 만나 깊은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멀어질 수 있었던 사람들과 다시 인연을 이어갔고, 몇몇 친구들과는 예전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기도 했다.
관계 속에서 행복을 느끼며 상대방도 나와의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해 주길 기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으면 전혀 연락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고, 약속 날짜를 당일에 바꾸는 사람도 있었다. 관계에 애를 쓰며 기대가 커진 나는 상대방의 그런 태도에 쉽게 실망하기도 했다. 내가 그렇게 애를 써가며 맺은 관계의 결과가 결국 이거라니.
나는 관계에서 소극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다. 내가 또 이 관계를 기대하다 언젠간 실망할 날이 올 거야. 난 그걸 견뎌낼 자신이 없어. 애초에 깊어지지 말자. 실망할 일 없게 가까워지지 말자. 실망하는 게 두려워서 아예 피하는 방법을 택했다. 심지어 나와 가까워지고 싶어 다가오는 사람들의 진심도 의심했다. 사람들에게 늘 벽을 세우며 좋은 인연들을 놓치고 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찾지 못했다.
과거에 관계를 위해 애를 쓰며 느낀 것은 관계에서 경험하는 감정이 정말 다양하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실망도 하지만 사람을 통해 아픔이 회복되기도 하고, 슬픔을 느끼다가 엄청난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사람과의 관계만큼 내 인생을 다채롭게 만들어주는 게 또 있을까 싶을 만큼 나는 사람을 통해 많은 감정을 배웠던 것 같다. 오지도 않은 미래의 실망과 아픔이 두렵다고 놓치기엔 참 아까운 감정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