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은 야구 열풍이다. 최강야구와 불꽃야구의 법정 공방과 여자 야구팀 블랙퀸즈 그리고 작년 KBO는 유례없는 관중몰이에 성공한다.
야구가 아니더라도 축구, 배구, 농구 등이 채널을 가득 메우고 있다.
왜 그럴까? 일단 한국 사회는 경쟁 중심의 사회로 스포츠와 유사하다. 규칙이 있고, 목표와 승패가 있으며 노력의 서사가 반드시 존재한다. 특히 시청자들은 '서사'에 집중한다. 주인공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그의 실패 이력과 좌절의 순간 그리고 재도전의 이유 등은 K-드라마 형식이다. 시청자들은 자신과 비교 혹은 대입해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빌런에 대해서는 분노를 하기도 한다. 두번째로는 한국은 '정정당당'을 갈망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는 한번도 평화롭거나 안정된 적이 없다. 늘 불공정하며 결과는 보장되지 않고 규칙도 없어진지 오래다. 하지만 스포츠는 다르다. 규칙이 명확하고, 판정이 공개되며 결과는 바로 나온다. 한국에서는 스포츠 예능에서 일종의 도덕적 위안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있는 현실은 복잡하지만 적어도 스포츠는 정직하게 승부한다는 느낌이 단순히 즐겁게 보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공정성을 잠시나마 만끽하고 있다.
사회가 안정되면 교과서가 나오고, 사회가 불안정하면 동화가 나온다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은 스포츠 예능이라는 동화에 빠져들며 지친 우리가 선택한 마지막 낙관의 순간이 아닐까? 늘 열심히 해도 바뀌지 않고, 나는 계속 작아지는 현실에서 동화같은 서사는 필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하다.
가끔 저녁 식사를 한 후, 아내와 넷플릭스를 켜고 마우스를 올려본다. 지난주 다큐멘터리 '미쳤대고 여자야구'를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또 다른 예능이 제작되었구나 했지만, 실제 대한민국의 여자 야구 국가대표팀의 이야기였다.
제목부터가 하나의 선언이자 도발처럼 다가온다. 이 말 속에는 조롱과 편견, 그리고 그것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용기가 동시에 담겨 있다. 누군가의 꿈이 사회의 기준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흔히 그 사람을 “열정적”이라기보다 “무모하다”고 부른다. 이 다큐에 등장하는 여성 야구 선수들은 바로 그 경계 위에 서 있다. 야구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허락되지 않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야구를 한다는 사실 자체보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그들이 감당해야 했던 시선이다. “여자가 무슨 야구냐”, “언제까지 장난처럼 할 거냐”라는 말들은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통제하려는 사회의 언어다. 이 다큐는 스포츠를 다루지만, 사실은 누가 자신의 꿈을 가질 자격이 있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던진다. 과연 나는 저들처럼 무모한 도전이란 것을 해봤는가. 미쳤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으며 미친 적은 있는가의 질문이다.
'미쳤다'라는 말은 '정상성'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그럼 '정상성'은 무엇인가? 미셸 푸코는, 사회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규범을 통해 사람들을 분류하고, 그 경계 밖에 있는 이들을 비정상으로 만든다고 했다. 그렇다. 다수가 한 방향으로만 쳐다보고 있으니 새어 나가는 소수에게 따가운 시선과 손가락질을 하는 것이다. 사실 세상은 '미친'사람들이 이끈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가족에게 응원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이끌어 나간다. 그리고 지금도 이 '미친'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세계 혹은 이 세상을 끌고 가고 있다. 한 방향으로 쓸려가는 다수에게는 자신의 세계마저 끌고 갈 수 없다. 어쩌면 더 편할 수도 있겠다.
주변부로 밀린 그들은, 자신들을 피해자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 필자의 가슴을 때렸다. 그들은 피해자가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이끌어가는 주체자로 버티고 있다는 점이다. 패배하고 넘어지고 실책하는 순간에도 그들은 그 경기장에 다시 들어간다. 인간의 존엄은 성취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태도라는 것을 깨닫는다. 사회가 인정하지 않아도, 스스로가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이 아닐까?
일본 여자 국가대표팀에게 단 한번도 점수를 낸 적이 없던 우리는, 25년 아시안게임때 2점을 뽑아내며 콜드패를 당한다. 하지만 그들은 가능성을 봤으며 다시 일어날 준비를 했다. 아쉬운 경기에 4위를 마치며 PD는 선수들에게 질문한다. '그래도 계속 하시겠어요?'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웃으며 대답한다. '그만두면 후회할 것 같아서요.' 그들은 다시 경기장에 나가며 자신들을 주인공으로 만든다.
이 짧은 인터뷰는 필자에게 정말 많은 질문을 하게 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안전한 포기'를 선택할까. 얼마나 많은 자기 합리를 내세우며 포기를 선택할까.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에 신경쓰며 타인을 얼마나 판단했을까. 나의 편견으로 지나친 귀한 사람과 시간이 얼마나 많았을까.
이 다큐의 주인공 3명은 세계 최초 여자프로리그 트라이 아웃에 참가하여 모두 프로팀 입성을 성공하며 마무리된다. 이 다큐는 '여자 야구'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나에게, 우리에게 '자기 삶의 주인이 되야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동시에 뼈저린 반성과 동기부여를 주는 기록이다.
우리가 미쳐 보일 만큼 간절해야 하며, 그래야 세상을 조금씩 바꾼다. 거대하지 않아도 된다. 사실 나 자신을 이기고 이끄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니까.
타인은 다 이해하자는 말이 아니다. 타인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해도 적어도 존중할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지금 당신은 어떤 것에 미쳐있는가? 미칠 자신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