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빌리 엘리어트'

빌리가 묻는 '자유의 조건'

by Polymath Ryan


춤추는 몸 - 빌리가 묻는 자유의 조건


2000년에 개봉한 영국의 성장 드라마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영국 로열 발레단의 남성 무용수 '필립 모슬리'의 실화를 참조하여 제작된다. 발레리노를 꿈꾸는 가난한 소년의 성장 이야기로 제73회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 각본상, 여우조연상 후보작으로 선정되기도 한다.

〈빌리 엘리어트〉는 한 소년이 발레를 선택하는 이야기이지만,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히 “꿈을 좇아라”는 메시지에 머물지 않는다. 이 작품은 오히려 묻는다.


우리는 왜 어떤 꿈에는 박수를 치고, 어떤 꿈에는 조롱을 보내는가. 그리고 그 기준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


영화의 배경인 1980년대 영국 북부 탄광촌은 전형적인 노동계급 공동체다. 이곳에서 남성성은 곧 노동과 투쟁, 인내와 침묵의 언어로 정의된다. 아버지와 형이 광산 파업에 참여하는 동안, 빌리가 발레를 배우겠다고 말하는 순간은 단순한 진로 선택이 아니라 계급과 성별 질서에 대한 일종의 이탈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빌리에게 “미쳤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 속에는 실제로는 이런 뜻이 숨어 있다. “너는 우리가 정한 세계의 규칙을 어기고 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자연스럽게 미셸 푸코의 사유와 맞닿는다. 푸코는 사회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규범은 언제나 권력의 언어이며, 누가 허용되고 누가 배제될지를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장치다. 빌리가 겪는 조롱과 폭력은 그가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재능의 방향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춤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남자아이의 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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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빌리 엘리어트〉가 특별한 이유는, 이 갈등을 단순히 감동 서사로 봉합하지 않는 데 있다. 빌리는 영웅처럼 모든 편견을 단번에 무너뜨리지 않는다. 그는 흔들리고, 도망치고, 때로는 포기하려 한다. 이 과정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자유는 과연 의지만으로 가능한가. 우리는 흔히 꿈을 이루는 이야기를 개인의 용기로 설명하지만, 이 영화는 자유는 개인의 결단 이전에, 사회적 조건과 관계의 변화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사람은 늘 조건 속에서 선택한다는 것이다. 칸트는 '내 자유는 타인의 자유와 공존할 수 있을 때만 도덕적이다'라고 말한다. 타인의 자유를 파괴하거나 불편하게하는 것은 자유보다는 지배에 가깝다고 말한다. 자유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힘이 아니라, 서로를 망치지 않고도 각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타인을 이해할 때 비로소 자유는 시작된다.


바로 그 이해의 결정적인 전환점은 아버지가 아들의 춤을 처음으로 목격하는 장면이다. 그 순간 아버지는 더 이상 ‘발레를 하는 아들’을 보지 않는다. 그는 처음으로 자기 세계의 규칙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이 장면은 감동적이기 이전에 철학적이다. 한 인간이 타인의 삶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자기 가치 체계의 수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이해하는게 어려운 이유는 너무 하나의 세계만 정상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나의 기준에 판단을 하기 시작하면 방어가 되기 쉽다. 이해보다 판단이 빠른 이유도 있겠다. 조금 더 말을 줄이고, 생각하며 정리한다면 타인을 존중하는 용기가 생길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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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존엄을 “자기 자신으로 공적 세계에 등장하는 용기”라고 정의했다. 빌리는 그 용기를 몸으로 보여준다. 그는 연설하지 않는다. 그는 설득하지도 않는다. 그는 다만 춤춘다. 그러나 그 몸짓은 말보다 더 강력한 언어가 된다. 그가 무대 위에서 점프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의 질문을 마주한다. 과연 누가 더 미친가. 정해진 삶을 의심 없이 반복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 질서 밖에서 자기 리듬을 찾는 사람인가.


〈빌리 엘리어트〉는 그래서 성장 영화가 아니라, 정상성에 대한 철학적 우화에 가깝다. 이 영화는 말한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거대한 혁명이거나 멋진 말이 아니라, 때로는 한 소년의 춤일 수 있다고. 그리고 그 춤은 단지 예술이 아니라, 자기 삶을 자기 언어로 말하려는 인간의 가장 오래된 몸의 철학이다. 그렇다. 몸으로 보여준다는 의미는 '이렇게 생각한다'에서 '이렇게 산다'이다. 세상을 설득하는 가장 강력한 언어는 말이 아니라 '살아냄'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우리는 더 이상 쉽게 이런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그건 네가 할 일이 아니야.”


왜냐하면 그 말이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조용히 죽여왔는지를, 우리는 이미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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