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인상주의 화가 베르트 모리조

by Polymath Ryan


허락된 세계 안에서 그린 그림


나는 거리로 나갈 수 없었다. 카페에 앉아 낯선 사람들을 관찰할 수도, 밤의 도시를 배회할 수도 없었다. 내가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던 곳은 집 안, 정원, 창가, 그리고 가족이 있는 방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제한이라 불렀다. 그러나 나는 그 안에서, 나만이 볼 수 있는 세계를 보았다.


19세기 프랑스에서 여성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예술가가 되기 이전에 이미 많은 선택지가 지워진 상태로 삶을 시작한다는 뜻이었다. 정식 미술학교의 문은 닫혀 있었고, 역사화나 신화화는 남성의 영역이었다. 대신 여성에게 허락된 것은 ‘사적인 장면’이었다. 아이를 돌보는 모습, 실내의 침묵, 창가에 비치는 빛. 그 사소해 보이는 장면들 속에서 또 하나의 세계를 보았다. - 베르트 모리조 -

%EB%B2%A0%EB%A5%B4%ED%8A%B8%EB%AA%A8%EB%A6%AC%EC%A1%B0.jpg?type=w1 마네 '베르트 모리조'

베르트 모리조는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이자 판화가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고위 행정관 출신인 아버지와 장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증조카인 어머니 사이에서 그림 수업을 받았다. 그림에 관심이 많았지만 박물관에서 그림을 보며 그리는 것과 정식 교육도 금지였던 당시엔 제약이 너무 많았다. 즉 공적 영역에서의 여성의 활동은 예술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모리조는 이 제약을 단순히 감내하지 않았다. 그녀는 허락된 공간을 소극적으로 재현하는 대신, 그 안에 존재하던 감정과 시간을 적극적으로 포착했다. 창가를 스치는 빛, 인물들 사이에 흐르는 침묵, 말해지지 않은 감정들은 당시 공적 담론에서 배제되던 세계였다. 그녀의 회화는 이러한 사적인 경험을 예술의 중심으로 끌어올림으로써, 무엇이 그려질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모리조의 붓질은 흔히 ‘섬세하다’는 말로 설명되지만, 이는 여성 예술가에게 익숙하게 붙여진 수사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녀의 화면에 남은 빠르고 느슨한 붓질은 연약함이 아니라, 고정된 형식에 대한 저항에 가깝다. 윤곽을 분명히 하지 않는 인물들은 삶이 본래 불완전하고 유동적임을 드러낸다. 이는 안정과 질서를 요구하던 당시의 미술 규범에 대한 조용한 이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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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마네와의 관계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다시 읽힐 필요가 있다. 모리조는 종종 ‘마네의 제수’(마네의 동생과 결혼)로 불리며 주변화되어 왔지만, 두 사람은 동등한 예술적 대화를 나누었다. 다만 그 평가의 무게는 성별에 따라 달랐다. 이는 개인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 여성 예술가가 인정받을 수 있는 범위가 구조적으로 제한되어 있었던 시대의 문제였다.


모리조는 여성의 권리를 직접적으로 주장하는 선언문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회화는 그 자체로 질문을 던진다. 왜 여성의 삶은 사적인 것으로만 남아야 하는가, 왜 그 세계는 예술의 중심이 될 수 없는가. 그녀는 투쟁 대신 지속을 택했고, 주장 대신 반복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반복 속에서, 여성의 경험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가시화되었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 주제는 일상적 경험이 많았기에 19세기 후반 여성의 삶이 어땠는지 자세히 볼 수 있다. 모델은 딸과 여동생이 주로 맡았고, 여성성을 강조하는 작품들이 탄생한다.


베르트 모리조의 예술은 인상주의의 한 갈래가 아니라, 당대 여성의 권리와 한계 속에서 형성된 또 하나의 근대적 시선이다. 그녀는 허락된 세계를 넘어서기보다, 그 세계를 끝까지 밀어붙임으로써 경계 자체를 흐리게 만들었다. 그 조용한 작업은 오늘날 우리가 예술과 권리를 함께 사유하게 만드는 중요한 단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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