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마드리드
선택된 수도, 조용한 권력의 철학
스페인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인 마드리드는 EU 기준으로 독일 베를린에 이어 2번째로 단일 규모 기준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9세기 후반 톨레도를 방어하기 위해 무슬림 후우마이야 왕조의 아미르 무함마드 1세가 세운 마즈리트 성에서 시작된다. 작았던 이 성은 북방의 기독교 왕국들을 공격하는 거점으로 활용되면서 도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후우마이야 왕조가 붕괴된 후에는 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6세가 점령하며 기독교도들이 이주해 도심에 점점 대도시로 성장하게 된다.
당시 마드리드는 주변도시였지만 물과 제분소가 많아 왕들이 매력을 느꼈고, 결국 펠리페 2세의 정치적 이유로 인해 수도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 이유는 바다와도, 특정 귀족 세력과도 거리를 둔 이 내륙 도시는 의도적으로 선택된 공간이었다. 이 결정은 명확한 정치적 선언이었다. 특정 지역의 전통이나 종교 권위가 아니라, 왕권 그 자체를 중심에 두겠다는 선택이었다. 이 선택 이후 마드리드는 급속히 ‘국가의 얼굴’로 재편된다. 도시 구조는 감정의 자연스러운 흐름보다는 질서와 통제를 우선한다. 왕궁과 광장, 직선적인 도로망은 시민의 자율적 삶보다 국가의 중심성을 드러낸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권력이 과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마드리드의 권력은 외치지 않고, 설명하지도 않는다. 대신 너무도 당연한 풍경처럼 배치된다.
그래서 흔히 연상되는 열정, 격정, 종교적 황홀과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그러나 바로 그 절제된 태도 속에서 마드리드는 스페인이라는 국가가 선택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드러낸다. 이 도시는 묻는다. 권력은 어떻게 공간이 되고, 일상이 되는가.
마드리드의 성격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한 곳이 있다. 그곳은 '프라도 미술관'이다. 1785년 카를로스 3세에 의해 건설되기 시작했는데 원래는 자연과학 박물관이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나폴레옹과의 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되고, 전쟁 후 페르난도 7세에 의해 스페인 왕가의 미술품을 소장하는 미술관으로 계획 변경이 된다. 소장하는 작품들은 대부분 회화로 엘 그레코, 고야, 벨라스케스와 르네상스 시대의 라파엘로, 보티첼리 등 걸작들을 볼 수 있다. 이곳의 회화들은 감정을 선동하기보다, 시선과 위치, 중심과 주변을 끊임없이 질문한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은 그 대표적인 예다. 누가 바라보고 있는가, 누가 중심에 서 있는가, 그리고 누가 보이지 않는가. 이 질문은 회화에 머물지 않고, 도시 전체로 확장된다. 마드리드는 끊임없이 묻는다. 권력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왜 자신을 숨기려 하는가.
이 철학은 시민에게 열광을 요구하지 않는다. 신념을 증명하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대신 개인을 조용한 관찰자로 남겨둔다. 광장에서 격렬한 외침이 터져 나오기보다는, 제도와 관습 속에서 일상이 유지된다. 그래서 마드리드는 변화의 도시라기보다 유지의 도시, 사건의 도시라기보다 구조의 도시다.
그래서인지 유럽의 다른 국가의 수도에 비하면 역사도 짧고, 명승 고적이라 할 만한 곳이 생각보다 적다.
제2차 세계 대전은 피해갔지만 스페인 내전 때는 폭탄을 피하지 못했다. 물리적으로도 관계적으로도 상처가 남은 공간이다. 내전 이후, 도시는 의도적으로 전쟁을 도시에 담지 않으려 한다. 외곽에는 벙커와 건물의 탄흔을 볼 수 있지만, 시내 내부에는 비교적 상처를 지우려는 느낌의 깨끗함이 대조를 이룬다. 파괴 속에서 무너지지 않았지만, 그 기억을 다루지 않는 도시다. 독일 베를린과는 사뭇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이다.
도시 마드리드는 제도, 행정, 공간, 관습 속에 스며들어 자연스러운 질서로 인식된다. 마드리드는 이 과정을 가장 이른 시기에, 가장 명확한 형태로 구현한 도시 중 하나다. 조용하지만 견고한 권력, 감정을 자극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지속되는 질서. 이것이 마드리드의 철학이다.
그래서 마드리드는 쉽게 사랑받는 도시가 아니다. 그러나 오래 머무를수록, 이 도시가 얼마나 정교한 사유의 장치인지 드러난다. 마드리드는 여행자를 소비자가 아니라 해석자로 남겨둔다. 이 도시를 걷는다는 것은 풍경을 소비하는 일이 아니라, 국가와 권력, 그리고 인간의 관계를 읽어내는 일에 가깝다.
마드리드는 아름답다고 말하기에는 망설여지는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