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안84의 '극한84'

by Polymath Ryan


'영웅이 없는 영웅 서사' 라고 MBC 예능 '극한84'를 정의 해 본다.


스포츠 예능이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몇 번 다뤘지만, 극단의 개인 운동인 '마라톤'이 주는 의미는 크다. 사실 지금 우리에게 인식되는 '마라톤'은 인간의 체력과 의지를 시험하는 스포츠다. 하지만 기원은 전쟁과 생존, 그리고 공동체를 위한 전달 행위였다.


마라톤의 기원은 기원전 490년, 고대 그리스와 페르시아 제국 사이에서 벌어진 '마라톤 전투'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아테네는 거대한 페르시아 군대의 침공을 받았고, 마라톤 평원에서 수적으로 열세였던 아테네 군은 기적에 가까운 승리를 거두었다. 문제는 전투 이후였다. 승리를 알리지 못한다면, 아테네 시민들은 페르시아의 승리를 두려워해 스스로 항복하거나 도시를 포기할 수 있었다.


이때 한 전령이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약 40km가 넘는 거리를 달렸다고 전해진다. 그의 이름은 페이디피데스(Pheidippides)로 알려져 있다. 그는 “우리가 이겼다”라는 말을 전한 직후 쓰러져 죽었다는 전설을 남겼다. 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 여부를 떠나, 마라톤이 처음부터 완주를 전제로 한 도전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을 위해 달리지 않았다. 기록도, 보상도, 생존조차 목적이 아니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마라톤의 원형이 한계를 넘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한계를 소진하는 행위였다는 사실이다. 페이디피데스의 달리기는 자기 보존의 논리를 넘어선 행동이었다. 그것은 개인의 몸을 희생하여 공동체의 존속을 지키는 행위였고, 인간이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그것을 감수하는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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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마라톤은 경쟁과 기록의 스포츠로 거리도 조정되고, 규칙도 있으며 과학도 함께 달리는 올림픽의 마지막 하이라이트가 되었다. 기안84와 크루들은 매번 질문한다. "왜 달리는가" , "여기까지 와야 했는가" , "무엇을 위해 날 소진하는가"의 질문이다. 달릴 수 없는 한계가 와도 그들은 다리를 부여잡고 다시 일어선다. 순위 경쟁에서 밀려도 그들은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린다. 그렇다. 성과의 성공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이 더 큰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한한 존재이기에 망설이고, 결단하고, 의미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는 순간 한계는 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지켜야 할 질서가 아닐까? 칸트는 한계를 인간 이성이 작동할 수 있는 범위를 뜻한다고 했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이성이 인간을 성숙시킨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니체는 다르게 본다. 한계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 곧 자신에게서 온다고 본다. 자신을 해체해하는 과정은 한계에 다다라야 가능하다며 고통과 실패 속에서 인간은 선택하게 된다고 한다. 이전의 나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존재로 변화할 것인가? 이것이 위버멘쉬(초인)의 시험대가 된다. 위버멘쉬(초인)은 뛰어난 능력과 대단한 성과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해체할 용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홀로 달리며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공간에서 우리는 분명 몸이 말을 듣지 않거나, 의지가 흔들릴 때 속에서 질문하게 된다. 기안84와 크루들은 아프리카와 프랑스 그리고 북극까지 극한을 경험하며 한계에 자신을 던졌다. 그들은 결코 영웅이 아니다. 타 예능처럼 선수 출신도 아니고, 다른 종목을 경험한 프로선수도 아니다. 그들은 평범한 우리다. 그들이 무너지는 모습, 의지가 흔들리는 모습은 바로 나의 모습이다. 그래서 이 예능은 의미가 크다.


편집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서사를 장대하게 보여주기 보다, 그들의 달리는 모습만을 보여준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심심하고 단조롭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10회차 흐름은 계속 달리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지금도 우리의 삶은 극한이며 우리는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이 마지막(죽음)으로 가는 존재이며 그 한계를 인식할 때, 비로소 자신의 삶을 살게된다고 했다. 나를 이루고 있는 이 모든 것이 끝이 있는 이야기지만, 허무해 하거나 포기하는 것은 나를 버리는 일과 같은 것이기에 우리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달려야 한다. 달리겠다는 선택을 해야 달릴 수 있으며, 달려야 목표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오해하지 말기를, 죽음이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성공의 삶은 성과나 돈, 명예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태도에서 판가름이 난다.


'극한84'는 그 태도를 말하려 한다.

인간은 언제, 무엇을 위해, 자기 자신을 소진시키는 선택을 하는가. 그리고 그 선택은 어떤 의미를 남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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