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럴링크

생각의 전달과 생각의 읽힘

by Polymath Ryan


인간은 오래전부터 생각을 전달하는 꿈을 꾸었다. 말이 필요 없는 소통, 몸이 없어도 닿는 연결.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들이 인간의 마음을 직접 읽는다고 믿었고, 플라톤은 이데아의 세계에서 순수한 인식이 매개 없이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중세의 신비주의자들은 기도가 언어를 넘어 신에게 직접 닿는다고 믿었으며, 낭만주의 시대의 시인들은 영혼과 영혼이 말 없이 공명하는 순간을 시로 남겼다. 19세기 말에는 텔레파시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했다. 1882년 영국 심리연구회가 만든 이 말은 '멀리서(tele) 느낀다(pathos)'는 뜻이었다. 과학이 아직 닿지 못한 영역을 인간은 이미 언어로 만들어두고 있었다. 늘 그랬듯이 꿈은 항상 기술보다 먼저 온다.


그런데 이 꿈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역설이 있다. 인간이 텔레파시를 꿈꾼 것은 연결에 대한 갈망이었지만, 동시에 인류 문명의 상당 부분은 생각을 감추는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바쳐졌다. 언어는 전달의 도구인 동시에 은폐의 도구였고, 글쓰기는 기억의 수단인 동시에 선택적 공개의 기술이었다. 인간은 생각을 전하고 싶어하면서도, 전하고 싶지 않은 생각을 지킬 수 있기를 원했다. 두개골은 단순한 뼈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유의 마지막 경계였다.


그 경계에 균열이 생긴 것은 2024년 1월이었다.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업 뉴럴링크는 사지마비 환자의 뇌에 칩을 이식했고, 그 환자는 생각만으로 마우스 커서를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뇌에 삽입된 64개의 초박형 전극 실이 운동 피질의 신경 신호를 포착해 무선으로 외부 장치에 전송한 것이다. 머스크는 첫 번째 제품의 이름을 텔레파시(Telepathy)라고 붙였다. 작명은 우연이 아니다.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신화와 철학 속에서만 상상했던 것이 이제 두개골 안쪽에 이식된 장치로 구현되기 시작했다. 2025년에 이르러 임상시험은 캐나다, 영국, 아랍에미리트로 확대되었다. ALS(근위축성 측삭경화증) 환자가 목소리를 잃어도 생각으로 문장을 쓸 수 있고, 척수 손상으로 손을 쓸 수 없는 사람이 스스로 화면을 조작할 수 있다. 처음으로 커서를 움직이는 데 성공한 순간 그 환자가 느꼈을 감각을 상상하면, 이 기술을 단순히 위험의 언어로만 읽는 것은 지나치게 협소하다. 이것은 분명 인간 존엄의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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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치유와 통제는 같은 기술 위에 나란히 놓여 있다. 뇌의 신호를 읽는 것과 쓰는 것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깝다. 읽을 수 있다면, 언젠가는 쓸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인간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항상 몸을 통해 이루어졌다. 가두고, 굶기고, 고통을 가했다. 그러나 뇌-컴퓨터 인터페이스가 보편화된 세계에서 통제는 몸을 우회할 수 있다. 생각의 패턴을 분류하고, 특정 신호를 차단하거나 증폭시키는 것이 가능해질 때 자유는 어디에 있는가. 지금의 뉴럴링크가 그런 목적으로 설계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술은 설계자의 의도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인쇄술은 지식의 해방을 위해 발명되었지만 프로파간다(특정 사상이나 이념을 위한 조직적인 선전 활동)의 도구가 되었고, 인터넷은 자유로운 소통을 위해 설계되었지만 감시의 인프라가 되었다.


인류가 다음 세기를 맞이할 때, 인간의 뇌는 아마도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생각이 데이터가 되고, 기억이 저장되며, 감정이 분석되는 세계일 것이다. 그 세계에서 '나'는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나는가. 자유의지에 관한 철학적 논쟁은 오래되었다. 우리의 선택이 실제로 자유로운지, 아니면 뇌의 신경 회로가 이미 결정해 놓은 것을 의식이 뒤늦게 경험하는 것인지의 이 논쟁에 뉴럴링크는 전혀 새로운 층위를 얹는다. 뇌에 외부 장치가 연결될 때 '의지'는 누구의 것인가. 신호를 전송하는 칩이 나의 일부라면, 그 칩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기업도 나의 일부인가. 정체성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의 질문이 남게 된다.


인간의 두개골 안쪽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외부 권력이 직접 침투하지 못했던 마지막 성역이었다. 말하지 않으면 그만이었고, 쓰지 않으면 남지 않았다. 어떤 심문도, 어떤 고문도 결국 생각 자체에는 닿지 못했다. 생각은 그 자체로 자유의 마지막 피난처였지만 뉴럴링크는 바로 그 피난처에 전극을 꽂는다.


인간은 오랫동안 텔레파시를 꿈꾸었다. 그 꿈이 마침내 현실이 되려는 지금, 우리는 비로소 묻게 된다. 우리가 원했던 것이 정말 이것이었는가. 생각을 전하고 싶었던 것인가, 아니면 생각을 읽히지 않을 자유를 지키고 싶었던 것인가.


텔레파시라는 이름은 꿈처럼 들린다. 그러나 꿈과 악몽은 같은 잠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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