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바로크 음악가

장 필리프 라모

by Polymath Ryan


질서 — 세계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가

18세기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이론가인 '장 필리프 라모-Jean-Philippe Rameau'는 음악을 감정의 분출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이 소리로 구현된 체계로 이해했다. 그의 책 "화성론"은 서유럽 음악의 화성학적 기반을 마련한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작곡 지침서가 아니라, 음악의 근거를 자연과 수학에서 찾으려는 철학적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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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화성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었다. 하나의 화음이 다른 화음으로 이동하는 과정에는 필연성이 존재하며, 그 필연성은 자연 배음 구조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음악은 인간이 만든 관습이 아니라 세계에 이미 내재한 질서를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시도는 고전과 낭만주의 작곡의 표준이 되었고, 19세기까지 음악 이론의 기초로 남았다.


또한 이 사유는 계몽주의적 세계관과 닿아 있다. 세계는 혼란이 아니라 구조를 가진다는 믿음, 그리고 인간은 이성을 통해 그 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는 확신이다. 음악은 감정의 즉흥적 폭발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질서가 청각적으로 드러나는 사건이 된다.


질서란 억압이 아니라 조건이다. 구조가 없다면 반복도, 기억도, 인식도 불가능하다.

음악이 음악으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관계의 법칙이 필요하다.


감정 — 인간은 구조를 넘어설 수 있는가

그러나 음악은 동시에 인간의 내면을 건드린다. 우리는 화성 진행의 논리를 계산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어떤 선율이 가슴을 파고들 때, 우리는 질서를 인식하기보다 감정을 경험한다.


이 지점에서 질문이 발생한다. 감정은 질서의 부산물인가, 아니면 질서를 초월하는 힘인가.


19세기 낭만주의는 감정을 진리의 중심에 두었다. 음악은 더 이상 자연의 법칙을 증명하는 장치가 아니라, 개인의 내면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었다. 격정적인 선율, 급격한 전조, 불안정한 화성은 인간의 심연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는 여기 있다. 아무리 격렬한 감정도 구조를 떠나서는 지속될 수 없다. 가장 파괴적인 전조조차도 이전의 조성을 전제로 하며, 불협화는 해결을 암시하기 때문에 긴장을 만든다. 감정은 질서를 부정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질서를 통해서만 인식된다.


감정은 무질서가 아니라, 질서 위에서 진동하는 에너지다.


긴장과 화해 — 질서는 감정을 억압하는가, 지탱하는가

질서와 감정은 오랫동안 대립항처럼 이해되어 왔다. 질서는 차갑고, 감정은 뜨겁다. 질서는 이성이고, 감정은 본능이다. 그러나 음악은 이 이분법을 해체한다.


라모의 오페라는 이론적으로는 치밀한 화성 구조 위에 세워져 있지만, 무대 위에서는 사랑과 질투, 상실과 희망이 강렬하게 펼쳐진다. 구조는 감정을 억누르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이 안정적으로 울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만약 질서가 없다면 감정은 소음으로 흩어진다. 반대로 감정이 없다면 질서는 생명 없는 계산으로 남는다. 음악은 이 둘이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예술이다.


이 긴장은 단지 예술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삶 역시 구조와 감정 사이에서 흔들린다. 사회는 규칙을 요구하고, 개인은 진정성을 요구한다. 우리는 질서를 벗어나 자유를 꿈꾸지만, 동시에 구조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음악은 이 모순을 화해시키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질서는 감정을 가능하게 하고, 감정은 질서에 의미를 부여한다. 둘은 대립이 아니라 상호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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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질서, 들리는 감정

음악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를 들리는 감정으로 번역한다. 우리는 선율을 통해 감정을 경험하지만, 그 배후에는 관계의 법칙이 흐르고 있다. 라모가 추구했던 것은 감정을 제거한 세계가 아니라, 감정이 설 수 있는 구조의 발견이었다.


결국 질문은 이렇게 남는다.

우리의 삶에서 질서는 어디까지 필요한가.

그리고 감정은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


음악은 대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하나의 모델을 보여준다. 질서와 감정이 서로를 파괴하지 않고, 서로를 완성하는 상태. 어쩌면 우리가 예술에서 배우는 것은 바로 그 균형의 가능성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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