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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민 Jun 13. 2024

느리지만 뚜벅뚜벅.  천천히 자연과 함께 치유됩니다.

- 달팽이 텃밭


늦은 저녁 집에 와서 아이들을 불러모아 가방 속에서 곱게 꺼낸 제철딸기(5월 중순에 딴)와 옥수수를 꺼냈다. “무슨 딸기가 이렇게 작아?”라고 말하던 아이들은 작고 향기가 강한 딸기를 먹어보더니 손이 점점 바빠진다. 저녁 집안에는 ‘오도독 오도독’하는 딸기 소리와 웃음소리가 번진다. 식감마저 재미있는 딸기와 옥수수를 정신없게 먹고 나서 보니... 오늘 하루가 정말 즐거웠다는 것이 느껴졌다. 도대체 오늘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나는 오늘 단양군 보말리에 있는 우프농장인 달팽이텃밭을 방문했고, 말 그대로 제대로 힐링을 하고 왔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생활 속에 뭔가 상실감까지 느꼈던 나는 달팽이텃밭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득 받고 왔다. 달팽이텃밭을 소개한다.



다르지만, 닮았다

곽명옥, 조고희, 김성신. 60년이 넘은 세월을 서로 각자 살아왔지만, 이들은 서로 닮았다.

1993년도 한국 히말라야 여성 등반대로, 암벽 산악인으로 이름을 알린 곽명옥 농부는 이곳에서 ‘블루비’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농작업을 리드하며, 자유자재로 농기계를 사용하는 그녀는 달팽이 텃밭에서 농사일을 진두지휘하고, 양봉을 담당하고 있다.


어렵사리 심은 옥수수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 고라니 덕택에 예정에 없던 팬스 작업을 하게 된 노에미(폴란드에서 찾아온 우퍼)와 빈센트(스코틀랜드)에게 “양봉 작업을 하다 코에 벌에 한방 쏘였어”라며 웃으며 말을 건다. 눈이 휘둥그레진 노에미와 빈센트에게 “하루에 10방까지 쏘인 적이 있어”라며 너스레를 떠는 곽 농부.      

달팽이텃밭의 농부대장님 곽명옥 농부

“이렇게 일꾼들이 왔으니깐 힘든 일을 시켜야겠네”하고 웃으며 말은 건네는 조고희 농부. 산을 좋아하고, 식물을 사랑하는 조 농부는 이곳에서 산소리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산소리란 이름처럼 그는 달팽이텃밭에 작은 정원을 가꾸고, 양봉에 필요한 밀원식물을 심고 있다.     


막내인 김성신 농부. 마치 마을 해설사처럼 달팽이텃밭을 소개해준 그녀는 농작업 중간중간에 탱자를 발효시켜 만든 시원한 차, 민트차 등을 내준다. 별칭은 소나무이고, 블루베리 재배, 텃밭 담당, 그리고 얼마전까지는 마을의 사무장까지 역임을 한 일꾼이다. 이 세명의 농부들은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왔지만, 이 곳 달팽이텃밭에서는 하나의 가족이 되어 자연을 가꾸고, 소박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우연히 겹치면 필연

“원래 멤버는 10명이나 됐어요. 산을 좋아하던 친구들끼리 모여서 나중에 멋지게 농사를 지어보자는 생각이었죠. 모두 친환경이나 먹거리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귀농에 대해 막연히 생각을 하다 봉화 지역을 추진했지만, 인연이 닿지 않았습니다. 매년 부처님오신 날이 되면 저희는 영월에 있는 비구니 스님들의 암자를 방문하곤 했습니다. 부처님오신 날이 되면 이곳 암자에 천주교 신자분들과 수녀님들이 찾아와서 같이 교류하는 행사를 하곤 했는데, 이곳에 만난 분의 친구분이 저희가 농사를 짓고 있는 이곳의 전(前) 주인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짓다가 처분하고 싶으셨는데, 우연히 저희가 귀농할 땅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저희와 연결이 된 것입니다.”

볕이 잘 드는 정남향 양지, 아름다운 산책로, 그리고 한 방울의 농약과 화학비료도 사용하지 않았던 건강한 농토. 이 세 가지는 이곳을 찾은 3명 농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달팽이텃밭의 순환시스템. 농사를 짓고 남은 부산물을 활용해 퇴비를 만든다

그러면 과연 이들의 농사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큰 언니가 우연히 전쟁 이후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은 미국 군인들이 농업을 통해 치유하는 다큐멘터리를 본적이 있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 때 키우던 작목이 바로 블루베리였고, 이 농장 전주인께서도 블루베리를 심고 있어서, 우리가 블루베리를 키워보자 하고 시작을 했습니다.”      


3명의 농부는 자연스럽게 블루베리 농사를 시작했다. 블루베리 재배에 대한 기술이 부족했지만, 친환경·유기농업을 넘어 자연재배를 지향하는 세 농부의 노력으로 자연재배 블루베리의 맛은 기가 막혔다. 야생의 블루베리 맛이 나는 이 곳의 블루베리는 단골 고객들이 생겨 1년 전부터 주문을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단양 마늘이 유명해서 저희도 마늘을 조금 심었고, 우선은 자급자족을 해야 했기 때문에 다양한 쌈채류와 양념채소를 키웠습니다. 처음 농사를 짓다 보니 참깨 농사를 하다 망하기도 하고... 이제는 들깨, 마늘, 고추를 키우고 약간의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아! 또 인기가 있는 것이 바로 산고사리입니다. 이곳 산고사리가 너무 맛있다고 계속 주문하시는 단골고객도 계십니다.”     


지난해 우퍼들과 함께 땅을 만들고, 어렵게 심은 곰취밭


우리는 이땅을 사랑하게 됐다

2012년에 귀농을 했으니 어느 정도 농사 전문가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도 했지만, 3명의 농부는 농사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2012년 10월에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에 왔는데, 이듬해 1월부터 마을이 난리가 났습니다. 이 지역에 납석을 캐기 위해 개발을 한다는 것이었죠. 마을 주민들 중 일부는 개발에 찬성을 했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이 송두리째 없어진다는 것에 대해 반대를 했습니다.”     

달팽이텃밭의 세 명의 농부들은 마을주민들과 개발 반대 운동을 펼쳤고, 마을주민들이 흩어지지 않게 공동체 활동을 시작했다. 마을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직접 마을사무장이 된 김성신 농부를 비롯해 3명의 농부들은 마을 책자를 만들고, 마을 동아리를 만들고, 마을 주민들이 생일이 수록된 마을 달력을 만들었다. 주민들과 소통하기 위해 만든 풍물동아리는 어느새 전국대회에서 상을 받을 정도로 수준급이 됐다. 광산개발이  무산된 보말리에는 이제 평화가 오겠다고 생각했지만, 다음에 찾아온 것은 태양광개발이었다.      

“어떻게 지켜낸 마을인데, 태양광에 무너질 수는 없지요. 이렇게 마을을 지키는 활동을 하다 보니, 어느새 정말 이 마을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땅이 사람을 부른 것일까요?”     


우프를 통해 세상과 연결되다

달팽이텃밭은 전국의 60여 개 호스트 농장 중에서도 많은 우퍼들이 손꼽아 방문하는 농장이다. 방문을 했을 때도 스코틀랜드에서 온 빈센트와 폴란드에서 온 노에미, 우프코리아 자원활동가로 활동하는 최린다 우퍼가 달팽이텃밭의 일을 돕고 있었다. 올해에만 18명의 우퍼가 찾은 달팽이농장의 매력은 ‘편안함’이다.

하루 하루 정신없이 바쁘게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뭔가 공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곳 달팽이텃밭은 마치 ‘시골 외갓집’에 온 것 같은 푸근한 마음이 든다.       


2012년 남미 여행을 통해 우프를 알게 된 김성신 농부는 4년 전 우프코리아에 호스트 신청을 했다. 꼼꼼한 심사를 거쳐 호스트 농장이 됐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많은 우퍼들이 찾아오지 못했다.

“코로나 시기에는 한국 우퍼들이 주로 찾아왔고, 지난해부터 다시 외국 우퍼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다양한 우퍼들을 만나고 오히려 우리가 더 힐링이 되고,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건에 대해 관심이 있는 우퍼들이 찾아와 그들과 소통하면서 친환경적인 삶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전 세계 우퍼들에게 받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이곳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더 전달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ps// 방전된 베터리 같은 당신!!! 완충이 필요하면, 자연을 사랑하고, 농업에 관심이 있다면 달팽이텃밭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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