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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in Mar 15. 2018

내가 바라본 독일인들: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내 장점은 성실한 것이고 단점은 불필요하게 성실한 때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들이 독일인들과 비슷하고 그래서인지 여기서 몇 년째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금은 고지식하다 할 만큼 독일인들은 규칙을 잘 따른다. 처음 친해지기는 어렵지만 일단 일정 선을 넘으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만큼 가까워진다. 노잼이라는 오명이 있지만 조금은 무뚝뚝하되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는 진심을 다해 도와준다. 물론 이기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도 봤지만, 지금까지는 운 좋게도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났다.



첫인상은 차갑고 친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맨 처음 인턴사원 신분으로 독일 생활을 시작했을 때가 기억난다. 영어권 친구들처럼 첫눈에 쉽게 친해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독일인들은 달랐다. 미국인과 다르게 독일인들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말수가 적고 조용한 편이었다. 

물론 모든 아시아인들이 소극적인 것이 아니듯, 모든 독일인들이 이렇지는 않다. 해외생활 경험이 많거나 선천적으로 외향적인 독일인과는 첫 만남부터 많은 대화를 주고받고 쉽게 친해진다. 하지만 지금 나와 친한 독일인들과도 서로가 서로에게 조심스럽고 어려운 시간들이 있었다.


한국어처럼 독일어에도 ‘지인’과 ‘친구’의 구분이 있다. 이름과 얼굴을 알고 약간 데면데면하게 알고 지내는 사람을 독일어로 Bekannte라고 한다. 또 보통의 독일인들은 공과 사를 구분하려고 하기 때문에 직장동료는 Arbeitskollegen으로 따로 구분해둔다. 주변인들을 여러 가지 호칭으로 분류시켜두지만 일단 친구의 범위 안에 들어가면 한국의 죽마고우처럼 아주 오래되고 깊은 관계가 된다.



질서와 규칙을 철저히 지키고 문서화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서류를 빼놓고 독일을 이야기할 수 없다. 독일에는 종이통장이 존재하지 않지만 은행의 거래내역이 매 달 우편으로 배달된다. 모바일과 인터넷으로 발급되는 것과 실제 '서류'로 증명되는 것의 효력이 다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독일로 석사과정 지원을 했을 때 독일어로 졸업증명서를 공증받아 제출했다. 하지만 졸업증명서가 실제 원본이 아닌 증명서 발급 기계로 인쇄된 원본이라고 한 번 퇴짜를 맡기도 했다. 


또한 독일인들은 질서를 아주 잘 지킨다. 내가 아침 출근길에 타는 광역기차는 한 출구에서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내릴 정도로 혼잡하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한 줄로 서서 기다린 후 모든 사람이 하차한 후 질서 있게 기차에 탑승한다. 간혹 새치기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규칙을 잘 지킨다.



군더더기가 없고 솔직하다.

화려한 미사여구로 상대방을 홀리려고 하기보다 조금은 투박하지만 솔직하고 맺고 끊음이 확실하다. 그렇기에 의사전달을 확실히 해야 이 곳 사람들은 내 의도를 알아차린다. 수줍어서 혹은 소극적 성격이라 속으로는 아니어도 겉으로 괜찮다고 하면 정말 괜찮은 줄 안다. 상대방이 우물쭈물하는 것 같으면 독일인들은 답답해하며 예 아니오로 대답해 달라고 한다.


이 솔직함이 가끔은 놀랍기도 한데 상대방을 지적할 때도 아주 솔직하다. 비난이 아닌 비판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 솔직함이 처음에는 충격이었다. 학교에서 같이 과제를 하다가 솔직한 피드백 때문에 스페인권 친구는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 도를 넘어서 딱딱하게 몰아붙이는 것이 좋은 태도는 아니지만, 최소한 뒷말이 없고 앞에서 못 하는 말은 뒤에서도 잘하지 않기 때문에 솔직함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 것 네 것 구분이 확실하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면 칼같이 더치페이를 한다. 한국에서도 가끔 이렇게 계산했지만, 이 곳에서는 더치페이가 보편적이다. (물론 가까운 친구나 연인 사이는 전 세계 어딜가든 예외다)

자라온 환경과 개인 성향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대다수의 독일인들은 음식을 공유하지 않는다. 본인의 호불호가 확실하고 특정 재료에 반응하는 알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음식을 잘 나눠먹지 않아서 내가 시킨 요리와 음료를 따로 계산하기 쉽다.

그리고 신세 지는 것을 싫어해서 다른 사람에게 대접을 받으면 꼭 갚아야 한다 생각한다. 그래서 애초에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커피 한 잔을 사주면 그것을 기억해두었다가 다음번에 나에게 꼭 커피를 대접하려는 사람도 있었다.


문화충격 중 하나는 작은 매트리스 두 개를 붙인 커플 침대였다. 분명 더블 혹은 킹 사이즈 침대인데 그 안에는 매트리스가 두 개가 있다. 커플이라도 수면 패턴이 달라 다른 한쪽이 불편해할 수도 있기에 본인에게 맞는 매트리스를 쓴다.  처음에는 그럴 거면 왜 한 침대에서 자냐 생각했는데, 나도 여기서 오래 살았는지 그 침대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대가 없이 약자에게 도움을 베푼다.

냉철함, 솔직함과는 관계없이 약자를 본다면 아무런 대가 없이 도움을 베푼다. 유모차를 끌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 무거운 짐을 혼자 들고 가는 사람들,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들, 노인 혹은 어린아이, 사고를 당한 사람 등 약자 혹은 곤란한 환경에 처해있는 사람들을 보면 망설임이 없이 돕는다. 정말 한 치의 고민이 없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친구에게 '내가 길에서 쓰러지거나 사고를 당하더라도 어느 한 명은 나를 돕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하곤 했다.



미묘한 인종차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체로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하려고 한다.

민감한 이야기이지만 독일에서 인종차별이 없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대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시선들을 느낄 수 있고, 터키인 이민자들에 대해서 갖는 선입견들도 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나도 한국에서 외국인들을 마주치면 신기한 마음에 한 번씩 더 쳐다봤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여기고 모두의 목소리를 공평하게 반영하려 노력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사회 속에서 최대한 융화될 수 있고, 몸이 조금 불편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폭력에 가까운 시선을 받지 않는다. 베를린에 있는 한 클럽에 놀러 갔을 때는 휠체어를 탄 사람과 내 어머니 뻘이 되는 사람, 그리고 20대 초반의 어린 학생들이 한 곳에서 어우러질 수 있었다. 한국처럼 나이로 입장 제한을 하는 곳도 있지만, 젊은 세대와 중장년 세대가 한 장소에서 술을 마시는 곳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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