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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in Aug 23. 2018

공공화장실 문을 노크하지 않는 나라

없던 인내심도 길러주는 독일 생활


독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공공화장실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사람이 없는 빈칸이 있는 것 같아 ‘똑똑’ 노크를 해보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문을 열었는데 문 안 쪽에서 잠겨있었다. 왜 내 노크에 응답을 안 하지?라는 생각도 잠시.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왜냐하면 독일에서는 일반적으로 화장실 문을 노크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크를 하면 재촉의 의미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출처: commercialwashroomltd.co.uk>

그렇다면 사람이 안에 있는지 어떻게 알까? 그건 손잡이를 보면 알 수 있다. 화장실 문은 대부분 비슷한 형태인데, 안에서 문을 잠그면 빨간색으로 표시가 되고 하얀색이면 열려있다는 뜻이다. 실수로 안쪽에서 문을 잠그지 않고 볼일을 보다가는 민망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하지만 그냥 문을 열어도 밖에 있는 사람의 실수가 아니다. (그리고 독일 대부분의 화장실은 공간이 넓어서 안쪽에서 노크를 할 수 없는 구조이다. 키 2미터인 사람이 변기에 앉아도 안될 것이다)



이것이 독일에서 숨겨진 소소한 하나의 규칙이었고 사람들이 질서를 지키며 기다리는 문화였다.





1. 인내심과 예약은 필수. 병원에 갈 때 예약은 꼭 해야 하며 하루 8시간 운영하지 않는다.


독일에서 의사를 만나러 갈 때는 무조건 약속을 잡고 가야 하고, 예약이 불가능할 경우 병원이 문을 열자마자 도착해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어떤 병원들은 점심시간 동안 진료를 중단하기도 하고 대다수의 병원들은 일찍 문을 닫는다. 오후 6시나 7시까지 문을 열면 정말 운영시간이 긴 병원이고 대부분은 은행들이 문을 닫는 시간과 유사하게 운영한다.


석사 시절 스트레스인지 면역력 저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장미색 비강진'이라는 정말 듣도 보도 못한 피부질환이 생겼다. 보이지 않는 허리 부근이었지만 행여 흉터라도 남을까 무서웠다. 병원을 방문했지만 아직 원인을 모르고 자연 치유될 수 있으니 며칠 후에도 호전이 없다면 피부과 의사를 만날 수 있는 소견서를 써주겠다고 하는 것이 전부였다. 한국이었으면 피부과 연고로 해결될 것 같았는데. 사실 특별한 약 없이 자연 치유되는 질환이었지만 당시에는 그 말이 너무 야속하고 답답했었다.

 

독일에서 피부과, 정형외과 등 특수진료를 받으려면 일단 먼저 Hausaerzt (General Practice)에서 처방을 받아야 한다. 한국에서 음식 알레르기나 갑작스러운 피부 포진이 발생하면 수많은 피부과들 중 한 곳에서 주사한 방이나 약 처방으로 해결이 된다. 하지만 독일에서 당일 피부과 의사를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아주 응급한 화상이나 질환의 경우 대학병원급의 큰 병원을 방문해야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최소 며칠은 기다려야 피부과 의사를 만날 수 있다.


우리동네 병원 운영시간의 안내문. 평일에는 17시에 진료마감이며, 금요일은 12시까지만 진료를 본다.



2. 은행 계좌를 개설한 후 카드와 비밀번호가 담긴 우편은 일주일 정도 후에 집으로 배송된다.


병원만 이렇게 느린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은행 계좌를 계설하면 최종적으로 체크카드를 받기까지 일주일에서 이주일 정도가 소요된다. 그것도 체크카드와 비밀번호, 온라인 뱅킹 비밀번호, 온라인 뱅킹 TAN(보안카드 개념) 이 네 가지가 각각 다른 우편으로 도착한다. 이를 기다릴 수 없으면 은행을 직접 방문해 신분증으로 창구에서 현금을 인출할 수 있다. 보안상의 이유 때문에 각기 다른 우편물로 배달해 준다고 하는데 한국에서 20분이면 창구업무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을 이 곳에서는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3. 지하철은 일주일에 한 번꼴로 연착되는 것 같다


한국으로 치면 경인선과 비슷한 기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데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리고 퇴근하기 전에 꼭 어플을 통해 기차 시간표를 확인한다. 10분 정도 늦는 것은 애교이며 '기술적 문제' '기차 트랙에 위험한 것이 감지됨' '앞선 기차가 연착되었음' 등등의 이유로 30분에서 한 시간까지 연착되기도 한다. 그래서 오전에 정말 중요한 회의가 있을 때는 평소보다 훨씬 여유있게 집을 나선다. 7월 말과 8월 초의 휴가철이나 부활절 연휴기간 등에는 그간에 미뤄둔 기차선로나 운행경로 점검을 이유로 노선을 단축해서 운영하기도 한다.



4. 그 외에도 수많은 예시들이 있다. 이사하는 집의 인터넷은 한 달 정도 전에 신청을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인터넷 없이 한 달을 살아야 한다), 심지어 이사할 때 버리는 쓰레기 분리수거 신청도 3주 전에 해야 한다. 수많은 것들을 미리미리 계획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느린 서비스와 기다림이 허용될 수 있는 이유


독일인들도 불평을 한다. 사실 불평불만이 많은 민족이다. 기차가 연착되면 여기저기서 Shade, Scheisse (젠장) 소리가 들려온다. 무작정 기다리는 일이 즐거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천천히 흘러가는 서비스에 사람들이 많이 익숙해져 있는 것 같다. 모든 것이 서류와 예약을 기반으로 흘러가고 어느 정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을 충분히 연습해왔기 때문이다. 기차를 타거나 내 순번을 기다려야 할 때는 항상 책이나 읽을거리를 지참하고, 혹은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기도 한다.


더 중요한 사실은 느림과 지체, 그리고 기다림을 이해해주고 받아들이는 사회적 허용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기차가 연착되어 회의에 늦게 되면 그 누구도 그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 물론 인터뷰에 늦는다거나 고객과의 약속일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하지만 좀 더 일찍 서둘러 나왔지만 기차가 그리 된 것은 어쩔 도리가 없기 때문이고 그 사이에 미리 연락을 해서 알려준다면 기다리는 사람들도 이해해준다. 예약을 해도 병원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하지만 나보다 더 먼저 온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 기다림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학교나 회사에서도 병원 예약 때문에 일정에 차질이 생겨도 양해를 구할 수 있다.


독일에서는 조금 천천히 흘러가도 괜찮다고 이야기해준다. 당장 급한 일이 아니면 야근을 해서 밀린 이메일을 답장하거나 파워포인트 한 장을 아주 완벽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지킨 이후라면 중요하지 않은 일을 빨리빨리 완벽하게 처리하라고 하지 않는다. (물론 여기서도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하려고 스스로 업무량을 늘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가끔은 궁금해진다. 이 느린 사회가 어떻게 잘 굴러갈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떨 때는 답답하기도 하다. 빠르게 흘러가고 지루해질틈 없는 나라와 도시에서 살았었는데 독일은 정말 조용하고 천천히 흘러가고 때로는 고인 물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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