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in Nov 29. 2018

떠나온 이유. 돌아갈 이유

독일 영주권을 포기하고 다시 한국으로

들어올 때는 어렵지만 나갈 때는 정말 쉽다. 사직서를 쓰고 회사를 나올 때의 이야기다. 한국에서도 한 번 사표를 쓴 적은 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제 떠나면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를 독일 생활의 종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지난 약 2 천일 간의 독일 생활을 정리하는 중이다. 2천 일 전의 나는


독일어를 한 마디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정년 퇴임하는 사람처럼 근 한 달간 수많은 사람들과 송별회를 하고 독일로 왔다.

약간의 저축액과 영어실력 그리고 3년 정도의 회사생활 경험. 딱 세가지만 갖고 있었다

독일 땅에서 아는 사람이라고는 다른 도시에 한 명밖에 없었다.


2천 일 동안 나는


인턴, 석사학위, 독일회사 생활을 경험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독일어를 구사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일부는 나에게 아주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업무적으로도 많이 배웠고 개인적으로도 많이 성숙해졌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정말 어디에 내던져놔도 일하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떠나올 때의 목표는 아주 단순했다.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해외생활을 체험해보고 특히 현지 회사에서 일해보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하지만 돌아갈 이유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내가 목표로 했던 것들을 다 이뤘다고 생각했을 때는 정작 허무했다. 해외에서의 삶을 너무 만만하게 봤을지도 모른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아주 오랜 고민끝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



여기까지 글을 쓰고 저장을 했는데 그 사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여러번 그리고 최후의 순간까지 여행을 하고 송별회도 했다. 떠나는 실감이 끝까지 나지 않다가, 출장으로 오면 종종 들렀던 공항 스타벅스에 앉아 마지막 메세지를 입력하는 순간 눈물이 났다. 


독일에 살면서도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씩은 한국에 들렀지만, 이번에 돌아올 때는 느낌이 달랐다. 그동안 단 한 번도 한국을 방문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인다.


겨울인데도 해가 이렇게 쨍쨍하다.

평지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많다.

편의점이 정말 많다. 그 사이 물가도 많이 올랐다.

길에는 사람들이 많고 독일에서처럼 차들이 나를 피해 가겠지 하다가는 사고당할 것 같다.

휴대전화 개통, 체크카드 발급이 빨리 이루어졌다.

길에 간판들이 반짝반짝 많다.

독일에서는 한 통도 받지 않았던 광고 문자가 쏟아진다.

현금을 뽑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카드만 받는 가게들도 있다.


아직까지는 한국에 잠깐 휴가 온 기분이지만 이제는 바뀐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야겠지. 그러다가 문득 내가 떠나온 자리가 아깝고 후회될 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결정을 내렸으니 뒤돌아 보지않고 이 자리에서 다시 시작해보려한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신선한 시각을 갖고 있는 시기이니까. 돌아온 한국에서 다시 독일을 생각하면서 글을 써볼 생각이다. 독일에서 독일 생활을 써내려 가던 시선과는 좀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공화장실 문을 노크하지 않는 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