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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나 Aug 04. 2022

#1 "섬에서 근무한다고?"

3년차 도서지역 교사의 소회

섬에서 근무하게 된 지는 벌써 3년째다. 바늘구멍 같은 임용고사를 겨우 통과하고 행복에 부풀어 있던 내게 도서지역 발령은 꽤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오랫동안 나의 합격을 기다려온 가족들, 친척들은 날 축하해주었지만 내 마음은 조금 쓰렸다. 기껏 합격해서 섬이라니.. 죽은 듯이 살아가던 임고생으로서의 삶을 이제 겨우 청산한 줄 알았건만 또다시 죽은 듯이 섬에 갇혀 살아야 하는 건가.


다행히 내가 발령 난 섬에는 대학생 시절 친하게 지낸 언니가 다른 과목 교사로 먼저 근무하고 있었다. 언니는 배가 자주 뜨니 괜찮다고 이야기했지만 그 지역에 아무 연고도 없는 나에게는 의미 없는 위로였다. 그렇게 나의 외롭고도 특별한 섬 생활이 시작되었다.


교사가 섬에서 근무한다고 하면 다들 무엇을 제일 먼저 떠올리는지 궁금하다. "불쌍하다.." 또는 "승진 빨리 하겠네." 정도?


도시지역 교사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인가? 일단 학생이 적다. 시내는 한 반에 못해도 스무 명, 많으면 서른 명씩은 된다던데 우리 학교는 5명이 넘는 학급이 없다. 학생이 적다는 건 한 학생에게 쏟을 수 있는 애정과 관심, 에너지 크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좋은 점이다. 소수의 학생을 대상으로 개별화 수업을 진행할 수도 있다. 또 학생과 교사 사이에 라포가 쉽게 형성되면서 나중에는 이 학생 집에 수저가 몇 개나 있을지 유추할 수 있을 만큼 가까워진다.


동료 교사와도 친해지기 쉽다. 우리는 한 학교에서 함께 근무하는 직장 동료이기도 하지만 같은 관사에 살고 있는 이웃 주민이기도 하다. 변변한 마트조차 가기 힘든 우리 섬에서는 서로 생필품이나 음식 재료를 빌리며 친해지곤 한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퇴근을 했는데 라면이 너무 먹고 싶은 상황. 차를 타고 뱃터에 있는 작은 마트에 갔는데 아저씨가 그날따라 문을 닫으셨더라. 하는 수 없이 빈 손으로 관사에 돌아오던 차에 마침 길을 지나가던 동료 선생님이 라면을 들고 회식에 가시는 걸 발견했다. "선생님, 혹시 지금 손에 드신 거 라면인가요?" 하고 말을 붙여 여차저차 라면 3개를 빌려와 맛있게 끓여 먹었다. 자, 생각해보자. 마트가 문을 닫아 라면을 못 사서 지나가던 직장 동료에게 라면을 빌려 먹는다는 건, 시내에서는 도통 상상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이렇게 희귀한 경험 속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다 보면 어느새 가까워진 동료 사이를 발견하게 된다.


섬에서는 돈을 모으기도 쉽다. 위에서 언급했듯, 변변한 마트 하나 없는 우리 섬에 다른 편의 시설이 존재할 리 만무하다. 편의점, 빵집, 세탁소, 미용실 등.. 막말로 있는 게 없다. 그럼 어떻게 음식을 해 먹느냐고? 우리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섬에서 근무하고 금요일 오후에 배를 타고 출도하기 때문에 주말을 이용해 시내 마트에서 장을 본다. 그리고 우유, 라면 등 필요한 음식을 사들고 월요일 새벽에 다시 입도. 러니 섬에서는 돈을 쓸 일이 없을 수밖에 없다. 주말에 시내에서 과소비만 하지 않으면 대부분의 교사들은 섬에서 근무하는 동안 돈을 적잖이 모은다.


또,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듯, 승진 점수를 쌓을 수도 있다. 도서지역에서 근무하는 교사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승진을 위해 자발적으로 들어온 경력교사 부류, 그리고 나처럼 얼레벌레 끌려온 신규교사 부류. 나도 처음 입도했을 때는 승진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이왕 점수 쌓게 된 김에 승진에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하지만 이 섬에서 보고 들은 바에 따르면, 승진은 나의 길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났다. 나처럼 학생들만 바라보고 사는 교사의 눈에는 이런저런 회의에 끌려다니는 관리자가 매우 피곤하고 외로워 보였다.


그렇다면 도서지역 근무의 단점은 무엇이 있을까? 일단 행정 업무가 많아도 너무 많다. 시내라면 80명의 교사가 나눠하는 일을 여기서는 20명이 나눠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쉽다. 한 사람에게 떨어지는 업무의 덩어리가 아주 큰 편이랄까. 일례로, 친한 타 학교 선생님에게 "선생님, 올해 업무는 뭐 받으셨어요?" 하고 물으니 "영어교육이요." 하고 말씀하시더라. 올해 나의 업무는 연수, 장학, 교과서, 전문적학습공동체, 교원능력개발평가, 전국연합학력평가다.


수업 준비도 생각보다 만만찮다. 시내라면 하나의 수업을 구상해서 다섯 반에 들어가니 적어도 5차시는 똑같은 수업을 반복하는 거라지만, 여기는 반이 하나밖에 없어서 수업한 번 하고 나면 모든 수업 자료는 일회용 쓰레기처럼 버려진다. 즉, 매 차시 새로운 수업을 짜야하기 때문에 매일매일이 수업 준비로 바쁜 편이다. 게다가, 우리 학교에는 교사가 없는 과목이 있다. 학생 수가 적어 발령낼 수 있는 교사 수도 적으니 어떤 과목은 교사가 아예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과목을 교육과정에서 뺄 수도 없지 않는가. 그래서 자신의 전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르쳐야 하는 과목, 소위 상치과목이라는 게 발생한다. 나는 이곳에 영어 교사로 발령이 났지만 학생들에게 도덕, 체육, 진로와 직업을 가르쳐본 적 있다.


이곳은 워라밸이 없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행정 업무 많지, 수업 준비 힘들지, 내 과목도 아닌데 가르치고 시험 문제도 내야 하지.. 이러니 퇴근이 늦어지는 날도 부지기수다. 붕괴된 워라밸을 견디다 못해 이 학교를 떠난 선생님도 계신다. 일찍 퇴근해서 관사에 돌아와도 집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하지 않고 내일 아침 근무를 위해 잠시 대기하고 있는 기분이다. 퇴근했다가 다른 선생님의 카톡을 받고 다시 학교에 가서 업무를 처리하는 저녁도 많다.


위에서 언급한 단점 외에 보수적인 조직 문화, 사내 정치질, 섬에서의 특수한 상황으로 제기되는 민원 등.. 자세히 할 순 없지만 1급 정교사도 달기 전에 교사를 그만두고 싶게 하는 상황이 무수히 많았다.


하지만 어쩌다 이곳에서 2년 6개월을 버텼고 이제 떠나기 전까지 한 학기만을 남겨두고 있다.


학교에서 뻗어나가는 오르막길에서 찍은 사진. 고층 건물이 하나도 없다.
학교 뒤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 이따금씩 붉은 하늘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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