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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볼든 Mar 27. 2022

시간을 접시에 담아내는 일, 더 큐어링 박진필 셰프

마음을 쏟아야 완성할 수 있는 것들.

샤퀴테리를 만들기 위해선 섬세하게 순간을 들여다봐야 한다. 고기를 다듬는 것부터 습도, 바람 등의 요건을 맞춰 공을 들여야만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허사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매시간 정성을 쏟는 일에 온통 마음을 쓰고 있는 더 큐어링 박진필 셰프를 만났다. 그는 먹는 일 뿐만 아니라 이 공간에 오는 모든 이들에게 추억을 건네는 일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가 꾸린 공간 속에 머무르는 이들의 순간도 돌볼 줄 아는 탓일 거다.      

간단하게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박진필 입니다. 요리를 시작한 지는 17년 정도 되었고요. 1세대 이탈리안 레스토랑 안나비니에서 이탈리아 요리를 기본으로 시작해서 스페인 요리, 프랑스 요리를 배웠습니다. 지금은 흑석동에 더 큐어링이라는 레스토랑을 운영 중입니다.


요리를 시작하신 지 17년 정도가 되셨다고 들었어요. 짧지 않은 시간인데 그 시작과 어떤 과정을 지나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요리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이 직업에 뛰어든 건 아니었어요. 게임회사에서 일했는데 회사가 문을 닫게 됐고, 그렇게 한참을 방황했어요.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요리사라는 직업이 뭔가 먹고 살기 쉬워 보였어요. 이 잘못된 생각이 군대보다 험한 주방 생활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어요. 실수하고 욕을 먹는 게 그냥 일상이었어요. 별명이 ‘식용’이었어요. 장식용. 하등 쓸모없는 깍두기 같은 존재로 취급받았어요. 주방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언제 제가 그만두나 내기를 할 정도로 실력도 능력도 형편없었죠.  

어디 가서 인성이 나쁘다거나 게으르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데, 무능력한 사람이라고 낙인찍히는 게 너무 괴롭더라고요. 그래서 오기로 버티기 시작했어요. 주방 벨 소리 듣는 게 너무 싫었고, 정신과를 다닌 적도 있었지만 그러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사수를 만났어요. 나이는 저보다 2살이 어린데 일도 많이 가르쳐주고, 힘들어서 도망가면 잡으러 오고, 일 끝나면 순댓국에 소주 한 병씩 사주면서 이미지 트레이닝 시켜 저를 더 성장하게 만들어 줬어요.


이런 시간을 지나 이 직업을 진정성 있게 들여다보게 된 거 같아요. 그리고 ‘븟 워크웨어 컴퍼니’ 배건웅 대표님을 만난 것도 터닝 포인트가 됐어요. 그분이랑 같이 지속 가능성을 위한 지역 특산물 활용, 외식산업의 방향, 반성이 필요한 삐뚤어진 외식업계의 모습들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그렇게 17년이란 시간을 지나온 것 같네요.


왜 흑석동에 자리를 잡게 되셨나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금전적인 이유가 가장 컸습니다. 사실 이쪽 계열 요리는 힙한 곳을 찾아다니는 분들이 모이는 곳으로 가는 게 중요한데, 있던 자본금으로는 그런 동네의 임대료를 감당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강남이랑 가깝지만 임대료가 저렴한 곳을 알아보게 되었고, 흑석동은 올드타운과 뉴타운이 공존하고 있어 그런 점들이 재밌게 와 닿았어요. 그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편한 위치기도 하고요.  

외관이 강렬해요. 내부는 바 테이블 형태로 되어 있는데 안과 밖을 이렇게 디자인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튀고 싶었어요. 다들 하지 않는 색상을 사용해서 눈에 띄고 싶었습니다. 내부는 아지트(놀이터)처럼 만들고 싶었어요. 낮을 많이 가리지만 손님들이랑 놀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손님들께 제가 만든 음식을 설명하고 주류들을 서브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매장을 오픈하면 최소 2년은 바빠서 밖에 못 나갈 거 같으니 차라리 손님들이랑 놀자 뭐 그렇게 생각했죠. 단골들에게는 새로 들어온 와인이나 신메뉴들을 같이 나누며, 이 공간에서 요즘 그런 재미를 느끼고 있어요.


가끔 친한 손님들 앞에서 말 가면을 쓰기도 해요. 가면 이름은 ‘라떼 이즈 홀스’를 줄여서 ‘라떼’라고 지었어요. 어렸을 때는 재밌다는 말을 많이 들을 정도로 쾌활했는데, 30대 넘어가면서 제 모습이 좀 변하더라고요. 이 가면을 쓰면 사람들 앞에서 쾌활했던 예전의 저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어 가끔 최면을 걸듯 장착을 하곤 해요.


아직 국내에서는 ‘샤퀴테리’라는 용어 자체부터 생소하잖아요. 코로나 19 시국에 오픈을 한다면 안정성에 더 큰 비중을 두고 문을 여실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래서 더 큐어링이 어떤 도전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사업은 한 발자국 앞을 보고 하는 게 아니라 반발 자국 앞을 보고하는 거라고 다들 이야기하시잖아요. 그런 의미였어요. 지금 기반을 다져놓고 버티면 될 거라는 생각이요. 역시나 지금 샤퀴테리 요리를 하는 곳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어요. 아마 생소한 분야라 많은 사람이 눈을 돌리고 있는 건 사실이죠. 앞으로 더욱더 시장이 커질 거로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이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그게 도전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질문을 받고 나서 생각을 다시 하니 제 나름의 도전이었던 것 같네요.  

샤퀴테리를 만드는 건 시간을 견디는 일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과에 도달하기까지 긴 기다림이 필요하니까요.


샤퀴테리뿐만 아니라 요리라는 것 자체가 사실 시간을 견디는 일이에요. 준비하는 과정은 물론 손님들이 오셔서 그 음식을 드실 때 느끼는 맛에 대한 감상을 예측을 할 수 없으니까요. 그 과정이 샤퀴테리랑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하고, 만드는 데 긴 시간이 걸리고, 결과물의 상태를 예측할 순 없지만, 확신으로 만들어야 하는 점이요.


한 치 앞도 모르지만 준비한 것들이 잘 나올 거라는 믿음으로 좋은 결과물이 나오길 바라고 있어요. 가끔 이 제품은 잘 나오겠구나, 혹은 망치겠다고 느껴 지기도 하는데, 사실 정신 없어요. 계속해서 다음 것들을 준비해 나가야 되니까요.


SNS에서 ‘아직 모르는 부분이 많다’라는 언급을 하신 그 문구가 인상적이었어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드러내는 건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저는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학교에 다닌 적도 없고, 요리 유학을 한 적도 없어요. 그냥 먹고 살기 위한 요리로 시작하다 보니 미쉐린 레스토랑의 요리들, 하이엔드, 다이닝의 고급스러운 요리, 안 해본 요리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지금 하는 요리들은 공부로 터득한 거예요. 그러다 보니 실무에 사용되어야 할 방법들 프렙, 노하우 등 모르는 게 많아요. 그래서 모른다고 그냥 솔직하게 표현했습니다. 모르는 건 배우면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부족한 건 언제든지 배울 자세가 되어 있고 아직도 일하며 깨닫는 것들이 많이 있어요.  

메뉴가 조금씩 바뀌는데 메뉴 개발을 하실 때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시나요.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기보다 일단 제가 모르는 요리는 다 궁금해서 기본적으로 만들어 보는 편입니다. 일단 만들어 보고 어울리면 메뉴에 넣고, 어울리지 않으면 수정할 것들을 생각하며 숙제처럼 남겨 둬요. 능력 되는 선에서 이것저것 많이 시도해보고 개발하고 싶습니다.


오시는 손님들께 술을 페이링해 추천해주시는데, 정작 셰프님이 평소 가장 즐겨 마시는 주종과 즐겨 곁들이는 안주는 무엇인가요.


기본적으로는 소주를 가장 좋아하긴 합니다만, 요즘은 싱글 몰트 위스키를 많이 마시고 있습니다. 몰트 특유의 홉 향과 단맛을 좋아하고, 가죽 향과 어울리는 스모크 향이 저희 음식과 궁합이 좋아서 여러 종류를 홀짝이고 있어요. 와일드 터키, 탈리스커 10년 글렌피딕 12년을 주로 마시고 있습니다.

샤퀴테리라는 것이 과정을 꾸준히 그리고 섬세하게 지켜봐야 하는 음식이라 정신을 많이 쏟을 수밖에 없을 거 같아요. 잠시 그 과정과 나를 떨어뜨릴 수 있게 하는 취미 활동이나 소소한 루틴 같은 것들이 있나요.


사실 별다른 취미를 가질 만한 시간이 나지 않아요. 샤퀴테리 작업은 고기 트리밍만 기본적으로 3시간 이상이 걸리고, 염지 작업 등에 이틀 이상 소요되는 품목도 있어요. 그래도 짬을 내서 하는 것이 있다면 간단한 홈트레이닝이나 블루레이 감상,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정도가 되겠네요.


루틴이라면 아침에 일어나서 한 시간 정도 홈트를 하고 노들섬 주변을 30분 정도 조깅하는 걸로 하루를 시작해요. 그 외 시간엔 거의 매장에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클라이밍이나 복싱을 배워 보고 싶은데 시간 내는 게 너무 어렵네요.

더 큐어링의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저희 제품을 일반 소비자들도 알 수 있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샤퀴테리를 상품화해 판매할 예정입니다. 소금집이나, 메종조, 세스크 멘슬 같은 경우엔 이미 상품화 가 아주 잘 되어 있어서 고객분들이 많이 이용하시고 계시는데 저희도 그쪽에 집중해볼 생각이에요. 그뿐만 아니라 현재도 다양한 메뉴들을 테스트하고 있는데, 꾸준한 메뉴 개발을 통해 샤퀴테리를 더욱 친숙하게 접하실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무엇보다 오시는 분들이 더 좋은 기억과 추억을 안고 가실 수 있도록 앞으로 더 나아갈 생각입니다.

저희 마지막 질문인 평소 매일 가지고 다니는 소지품 소개를 부탁드려요.


시계, 가계 열쇠, 지갑, 스마트폰 정도예요. 브라이틀링 내비타이머 오토매틱 41 모델을 착용하고, 안경은 키오야마토(KIO YAMATO)라는 브랜드 제품을 씁니다. 예전엔 가방에 노트북 등 이거저거 들고 다녔는데 현재는 집이랑 매장이랑 너무 가깝다 보니 가지고 다니는 정말 게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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