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탈피의 여정9

by 코치 나결

보다 적극적인 수행이란 대중생활이 어려울 거라는 걸 빤히 알면서도 선택한 것과 그 속에서 기꺼이 자기 업(카르마)을 발견해서 닦겠다는 의미다. 스승께서 법문 중에 ‘옥불탁 불성기’(玉不琢不成器, 옥은 다듬지 않으면 그릇이 될 수 없다)를 자주 말씀하셨고 나는 그 말씀에 충분히 공감했기에 도전했다. 그래서 우리는 청정비구 도량에 재가 수행자로서 당당히 합류했다. 물론 이제 막 돌이 지난 영롱한 딸도 함께였다.



우리는 도대체 무슨 배포로 이런 선택을 했던 걸까? 딸아이와 함께 오붓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마음에 쏙 들었던 서울 집을 뒤로하고 여러 사람이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라니 웬 말인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지금 바라보면 한창 청춘이었던 서른 다섯의 봄날이었는데 말이다. 여기저기 피어 있던 꽃들도 우리의 자발적 선택과 도전을 축하하고 응원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수행과정이 마냥 꽃 길이 아니었던 것만은 분명했다.






힘들었다. 정말 힘들었다. 처음 한 달은 천식 환자처럼 밤마다 목이 찢어지는 듯한 기침을 해대느라 잠을 설쳤고 또 한 달은 눈이 몹시 가려워 토끼처럼 붉은 눈으로 다녔다. 공동체 생활에 아직 적응하지 못해 긴장된 마음이 몸으로 표출되었던 거 같다. 조석 예불과 참선, 공양시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시간은 모두 각자 맡은 일을 하면서 공부하는 수행 도량이었기에 몸이 힘들어서 조금만 틈이 나면 쓰러져 있기 일수였다. 초심자가 단박에 적응하기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낯선 환경인 건 분명했다. 그 와중에도 아이와 산책을 다니며 자라는 순간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사진도 찍으면서 나름 참 애썼다. 서너 달이 지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는지 어느덧 잔병치레는 잦아들었다.



몸은 그렇다 치고 마음은 어떠했는가? 한 가지 소임을 여러 명이 함께 하는데 저마다 생각이 달라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때도 많았다. 게다가 나는 팀의 막내였으니 은근히 위계질서 같은 게 느껴질 때면 마음이 부대끼기도 했다. 모양도 없고, 색깔도 없는 마음에 스스로 생각을 일으켜 걸리면 온종일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래도 남편이 함께 여서 힘이 되었고 아이를 돌봐야 했기에 내 안의 걸림에 마냥 떨어져 있을 수도 없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나는 수행하는 데 있어서 최적의 조건을 갖춘 자였다. 그렇지만 그땐 정말 힘들었다.



힘들고 어렵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질 때 그 터널을 벗어나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 있었다. 큰 소리로 석가모니불 혹은 관세음보살 명호를 부르거나 아니면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를 괴롭히던 생각들이 훌~훌~ 털어져 걸림 없는 마음으로 해방을 맛보곤 했다. 수행과정 중 노래는 내게 시원한 해방구였다. 그때 일하면서 신나게 불렀던 노래가 ‘사노라면’이다. 전인권의 곡에 내 마음과 경험을 담아 개사했었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누~릴 날이 오겠지

흐린 날도 구름 걷히면 청~정한 하늘이라

분명하게 사무친 게 한~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본래 없다!

지금이 내일이다!


초심자의 순수와 용기가 느껴지는 나만의 불후의 명곡이다. 지금도 여전히 삶의 굽이 마다 애창하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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