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

탈피의 여정 8

by 코치 나결



‘나’란 생각을 꼿꼿하게 세우고 있는 자신을 알아차리는 순간이 바로 '꼿꼿함'을 '유연함'으로 바꿔 쓸 수 있는 찰나다. 그래서 내게 절折이란 일종의 ‘자발적 꺾기’ 의식이라 말할 수 있다. 심신일체로 정성을 다하는 의식 말이다. 내 생각을 관철시키려는 꼿꼿함은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오랜 세월을 지나며 길들여진 습관이다. 시작도 알 수 없는 아주 오래된 습관. '나'라는 관념은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무수한 가정과 판단을 창조한다. 의식과 무의식이 동시다발로 작용한다. 객관적 사실에 자기 생각이 덧붙여지면서 왜곡되고 '사실'은 더 이상 진실이 되지 못한다. 그러다 보면 시야는 좁아지고 자기만의 세계 속에서 살게 된다.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다. 우물 크기만큼 보이는 하늘이 자기 세계관이 된다. 끔찍하다.



그래서 나는 일상에서 순간순간 절하는 마음으로 '자발적 꺾기 의식'을 행한다. 꼭 몸으로 절을 하지 않아도 알아차림, 마음 챙김, 놓아 버림, 내려놓음… 이것들 모두가 내게는 자발적 꺾기 의식이며 마음을 유연하게 쓸 수 있는 지름길이다. 채우려 하기보다 비우려는 마음을 내면 오히려 텅 빈 데서 그득함을 느낀다. 아이러니하다. 비우는데 충만하다니 말이다. 그런데 누구나 해 본 경험이라 생각한다. 악착같이 붙잡고 놓지 못했던 것을 내려놓으면 아쉬움도 있지만 시원함이 공존한다. 상대의 잘못이 분명하다 해도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으면 스스로 편안하다. 습관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려다가도 그 생각을 이어가지 않으면 자체로 편안해서 미소가 머금어진다. 과거의 습관으로 흐르지 않으면 새로운 습관을 창조할 수 있다. 스스로를 평안케해서 주변을 두루 밝혀주는 마음을 쓸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유연함이 만들어내는 창조다.



마음에 은근히 품고 있었던 바람, ‘내게도 스승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 바람이 이루어지고 일 년이 흘렀다. 보다 적극적으로 수행 프로세스를 밟고 싶은 마음에 나와 남편은 스승이 머무는 선원으로 들어갔다. 출가는 아니지만 마음만은 스님들과 다르지 않은 비장함으로 오붓한 둥지를 버리고 떠났다. 비로소 입산했다. 큰 산들을 누비며 자유를 만끽했던 두 자연인이 제 발로 수행공동체라는 틀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자발적 꺾기의 확장 버전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