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30번째 여름이다. 30번의 여름을 가장 많이 보낸 곳이 있다면 바로 우리 할머니 집이다. 할머니 집은 작은 시골 바닷가 마을. 지금은 이름을 대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곳이지만 예전 이곳 사람들은 오징어를 잡아 팔거나 작은 횟집을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해안 도로를 지날 때면 오징어와 이름 모를 생선들이 집 앞 덕장이나 방파제 쇠기둥 사이로 연결된 빨랫줄에 널려져 있었다.
우리 할머니는 이곳에서 태어나 초가집이 양옥이 되고, 흙길이 아스팔트 도로가 될 때까지 80년이 넘는 시간을 이곳에서 살고 계신다. 할아버지는 좀 더 윗동네 출신이다. 아는 사람을 따라 집에 방문한 할아버지를 보고 할머니는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두 분이 처음 만났을 때의 이야기는 어느 여름밤 집 앞 방파제를 걸으며 할머니가 들려주셨다.
두 분은 결혼 후 이곳에 정착하시고 장정 3명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작은 방(할아버지 피셜!)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셨다. 이 작은 방에서 아들 하나 딸 둘을 낳고, 작은 방이 작은 양옥집이 되고, 양옥집이 2층 벽돌집이 될 때까지의 우여곡절은 나도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나의 기억은 2층 벽돌집이 지어지던 그 무렵부터 희미하게 시작되기 때문이다.
2층 벽돌집에 대한 나의 애정은 꽤 각별한 편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나의 여름 방학 시작과 끝은 늘 이곳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공용 주차장을 짓는다고 메워버린 집 앞 모래사장에서 한바탕 수영을 하고 돌아오면 마당에 있는 수돗가에서 옷을 홀딱 벗고는 긴 고무 호스로 모래를 씻어내고 집 안으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가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긴 여름 방학 동안 수돗가 담벼락에는 어차피 내일 또 쓸거라 대충 씻어 놓아둔 소금기 묻은 수영복, 튜브, 수경들이 널어져 있었다.
몸에 묻은 모래를 헹궈내고 대충 비누칠을 하고 나오면 어느새 해는 떨어져 있었다. 온 가족이 모이면 열댓 명이 넘었기 때문에 식사 시간은 늘 북적였고, 커다란 접이식 밥상을 3개 정도는 붙였어야 했다. 수영을 하고 나면 항상 배가 고팠기 때문에 저녁은 양껏 먹었는데 저녁을 먹고서도 수박, 복숭아, 옥수수 같은 간식들을 푸짐하게 차려놓고 먹었었다.
다들 배가 부르고 밤이 무르익으면 어른들은 화투를 치거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했고 아이들은 2층에서 만화 영화를 보거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놀이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그렇게 넓던 2층 거실이 지금은 끝에서 끝까지 몇 걸음 밖에 되지 않는다.
간혹 밤이 너무 길거나 더울 땐 온 가족이 방파제로 나가 돗자리를 펴놓고, 모기향을 피운 뒤 벌러덩 누워 별을 보곤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모두가 말이 없어지면 우리를 훑고 지나가는 바람이 느껴지고, 고요 속에서 파도 소리가 더욱 선명히 들리곤 했다. 까무룩 잠에 빠져드는 순간에 엄마가 잠든 사람들을 깨우며 일어나 집에 가서 자자고 하시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매년 다를 바 없던 여름 방학은 입시생이 되면서부터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고,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어서 여름휴가를 친구들과 보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조금씩 잊혀져 갔다.
그리고 우리 여름의 역사는 그렇게 잊혀 가는 듯했다. 2층 벽돌집도 벌써 20년이 넘게 흘러 벽지는 점점 색이 바래고 방충망은 구불구불 휘었으며 창문 문고리는 고장이 나 잘 돌아가지 않는다. 마루에 깔린 나무 타일이 오랜 세월 늘어나고 줄어들길 반복해 더 이상은 아귀가 맞지 않는 만큼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는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생각하던 찰나 마주한 어떤 순간이 있었다.
오랜만에 명절에 할머니를 뵙던 때였을까, 생신 때 함께한 식사자리였을까. 모든 것이 예전 같지 않은 건 비단 나뿐이 아니라는 사실이 홀쭉해진 할머니의 얼굴과 어딘지 모르게 조금 흐릿해진 눈동자와 함께 성큼 다가왔다.
내 기억 속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언제나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이었지만 목소리도 더 컸고 더 자주 웃으셨으며 좀 더 꼿꼿했고 더 짱짱했다. 내가 열 살이고 할머니가 60세였을 때, 지금에 와서야 그때 사진을 보면 그 연세의 모습도 더없이 푸르렀다는 생각이 든다. 계절은 매번 다가오고 또 흘러가는데 그분들은 어떤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실까.
어렸을 적 생신 때마다 손뼉을 치고 초를 불며 건강하시라 말씀드릴 때는 이런 순간이 다가올 줄 몰랐었다. 무언가가 사라지는 순간은 반드시 온다.
그런 생각을 하니 문득 이번 여름은 할머니 집에서 보내고 싶어졌다. 예전과 같지 않겠지만 그리고 예전과 같을 수 없겠지만 우리 여름의 역사가 이대로 사라지게 두고 싶지는 않았다.2층 벽돌 집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그리고 나도 20년의 세월 동안 많이 오래되어졌지만 그 나름의 새로운 역사를 또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짐 가방을 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