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통해 얻는 것들

by 고지윤


나는 종종 여행에 관하여 혼자서 생각한다.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지.

도전(성취), 인연, 즐거움, 자유 같은 것들을.


몰타에서의 눈물(성취)


2018년 스물다섯,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사회생활에 적응이 되어갈 무렵 무언가 도전을 하고자 난생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마침 몰타에서 어학연수 중이던 지인이 있었고 곧장 그 형에게 연락을 해서 “형 나 몰타에 가고 싶어”라고 말하자 그 귀여운 경찰공무원 형은 “그래 언제든 와!”라고 말하며 환대해 주었다. 대답을 듣고 바로 비행기 표를 샀다.


당시 자주 보던 형도 아니었고 연락을 많이 하지도 않았었지만, 경찰이라는 직업이 주는 막연한 신뢰도 때문이었을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비행기를 탔다.


분명 비행기를 타기 전까진 아무런 걱정도 생각도 들지

않았는데, 막상 비행기에서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하여 몰타까지 가려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때문에 나는 창밖이 깜깜해져 다른 승객들은 모두 평화롭게 숙면을 취할 때에도 평화롭지 못했다. 그렇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멍하니 좌석 앞 화면에 나오는 비행기의 운항경로를 경유지에 도착할 때까지 한숨도 안 자고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지하철 환승 하는 것처럼 비행기도 경유지에 내려서 비행기를 갈아타면 되는 줄 알았다. 예상은 언제나 그렇듯 당연히 틀렸고 프랑크푸르트에 내려 독일 입국심사인지 출국심사인지 모를 복잡한 절차를 밟은 뒤 다시 몰타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나는 몰타행 비행기를 타고 싶다 “며 동분서주했다. 우여곡절 끝에 게이트에 도착했지만 탑승시간이 삼십 분이나 더 지났는데 비행기에 탑승하라는 안내가 나오지 않아 점점 두려워졌다. 불행하게도 나는 흘러나오는 안내방송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고 한참 뒤에 게이트 앞에서 같이 기다리던 사람이 비행기가 연착되었다고 알려줘서 뒤늦게 공항에서 나를 기다리겠다던 형에게 카톡을 했고 예정된 도착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더 늦게 도착했다.


열 시간이 넘는 비행을 하고 몰타에 내려 두리번두리번

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지윤아!”라는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가 들러왔다. 그 순간 온몸에 긴장이 풀리며

“우아 내가 해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부터는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마치 한국에 있는 친구 고향집에

놀러 온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산책 나온 강아지 마냥 형이 가는 길 뒤를 쫄래쫄래 쫓아다녔다. 밖으로 나와 밤바람을 쐬며 좀 걷다가 형은 현지인처럼 자연스럽게

우버를 불렀다. 당시 나에게는 외국인이 운전하는 차를 타는 것도 처음이었고 도로 주행방향과 운전석의 위치

또한 우리나라와는 반대여서 아주 신선한 경험이었다.


공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 형이 하숙하던 집이 있었다.

아직 감정표현이 서툴던 나는 형에게 너무 고마운 나머지 공항에서 집이 가까워 너무 좋다며 괜히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자 형은 “아 우리 집이 가까운 게 아니라 여기는 어디를 가든 다 가까워”라며 제주도 보다 작은 섬나라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세상에 그런 나라가 어디 있느냐며 믿지 않았었지만, 여행이 끝난 뒤 한국에 와서 찾아보니 정말이었다.


형이 하숙하던 집에는 승빈이라는 나와 나이가 같은 귀여운 한국인 친구도 함께 하숙하고 있었다. 나완 달리

엄청 E스럽던 승빈이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나를 반겨주었다. 짐정리를 끝내고 세안을

하기 위해 세면대에서 물을 틀었는데 뭔가 한국에서의 수돗물과 달리 약간 뿌연 물이 나와 조금 당황했지만

여긴 원래 그런가 보다 하고 얼른 씻고 나갔다.


주방으로

나와 보니 기범이 형은 안 보이고 승빈이가 식탁 위에 소주 두 병과 엄청 큰 민트초콜릿 아이스크림 한 통을 올려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범이 형은 어디 갔냐고 물으니 “기범오빤 술 안 마신다고 잔대”라며 투덜거리듯 말하며 얼른 와서 같이 마시자며 손을 휘적휘적거렸다. 그렇게 나는 친숙한 한국어와 소주 그리고 어색한 승빈이와 민트초콜릿 아이스크림같이 친숙하면서도 어색한 몰타에서의 첫날밤을 새벽까지 웃고 떠들며 지새웠다.


이튿날 아침이 되었을 때 나는 숙취 때문인지 비행기에서 한숨도 못 자고 불안에 떨었던 탓인지 모르겠지만 이불속에서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그때 바른생활 청년이던 기범이 형은 아침부터 나에게 집 근처에 정말 맛있는 피자 가게가 있다며, 얼른 일어나서 먹으러 가자고 날 깨웠다. 나는 진심으로 더 자고 싶었지만 멀리서 온 동생에게 맛있는 걸 먹게 해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형을 따라나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느끼할 줄 알았던 피자가 하나도 느끼하지 않았고 너무 담백하고 맛있었다. 아침 겸 점심으로 배부르게 피자를 먹고


기범이 형이 동네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여 다시 한번 형을 쫄래쫄래 쫓아다녔다. 몰타의 골목골목은 한국에서 다니던 골목과는 사뭇 달랐다. 매우 오래된 느낌이 들었지만 건물이 낡았다거나 허름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고 마치 건물들을 지어놨다기 보단 건물을 깎아 놓은 것처럼 보였다. 오래되고 고풍스러운 건물들을 구경하며 돌아다니는 건 너무 재밌었지만, 계속 구경만 하고 다니니까 아까 먹었던 피자가 금방 다 에너지로 치환되어 버린 것 같아 허기졌다. 그래도 난 꼴랑 두 시간 전에 배부르게 피자를 먹고 또 배가 고프다고 하면 너무 돼지같이 보일 것 같아서 많이 걸었더니 당이 떨어지는 것 같다며 형한테 뭐 좀 먹자고 했다. 그러자 형은 근처에 맛있는 젤라토 가게가 있다며 데리고 가줬다. 덕분에

쫀득쫀득한 망고맛 젤라토를 먹었다.


형은 이제 수업을 들으러 간다고 해서 나는 근처 해변에 일광욕을 하기 위해 우버를 타고 형이 추천해 준 조그만 해변으로 갔다. 나는 서양 느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싶어 몸에 최소한의 실오라기만 남긴 채 모래사장 위에 비치타월을 깔고 온몸에 태닝오일을 바른 뒤 노릇노릇 구워지길 바랐다. 형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지루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해변에서 누웠다 엎드렸다를 반복하며 몰타가 왜 유럽인들의 휴양지라 불리는지 깨달았다. 주변에서 여유롭게 태닝 하는 뭇 여성들을 보다 보니 나 또한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평안이 내렸다.


눈요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형에게서 수업이 끝났다는 연락을 받고 형이랑 저녁을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어느 골목길에 있는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그 골목엔 여러 나라의 국기들이 많이 걸려 있었고 당연히 내 눈엔 태극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신기하게도 그날은 한국 시간으로 8.15일 광복절이었다. 당시 나는 운명론을 믿었던 사람이라 기범이 형에게 이렇게 멀리까지 와서 한국에서도 잘 보지 않던 태극기를 우리나라가 해방된 날에 보게 되다니 이건 운명이라며 호들갑을 떨자 기범이 형이 ”나는 매일 이 골목을 지나다녀서 그런지 아무런 감흥이 없어.. “라며 내 운명적인 기분을 와장창 깨뜨려버렸다. 덕분에 흥이 날아가버려 무심하게 사진 한 장 찍어 sns에 업로드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 들어갔더니 이번에는 승빈이가 어학원에서 같이 공부하는 한국인 친구를 한 명 데리고 와서 같이 소주를 마시자며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은 이제 그 친구의 이름도 얼굴도 목소리도 그 존재 외엔 아무것도 기억나는 게 없지만, 우리는 그날 승빈이와 그 친구가 낄낄거리며 만들어준 한식 안주에 소주를 곁들여 맛있고 재밌는 밤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의 나는 엄청나게 수줍은 I의 대명사였는데, 어떻게 타지에서 처음 본 그 친구들과 허울 없이 떠들며 서로의 웃음을 나눌 수 있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여행이기 때문이다. 친숙함과 어색함. 함께 존재해서는 안될 것 같은 그것들은 일상에서는 함께 존재할 수 없고 여행에 한해서는 공존한다.


다음날 기범이 형은 나를 깨워 배를 타고 코미노섬이라는 곳에 가서 수영하자고 했다. 코미노섬에는 기범이 형의 친구인 구레나룻부터 턱까지 수염이 수북하게 있던 마초형님과 함께 가기로 했다. (역시 마초형님의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우리 셋은 몇 시간이고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물놀이를 했다. 결국 팔과 어깨 허벅지 등 이곳저곳 화상을 입어 피부가 다 벗겨졌다.


물놀이를 했던 것 보다도 기억에 남았던 건 배를 타고 코미노 섬에 가던 중 바닷물이 코랄색으로 푸르게 빛나던 게 가장 기억에 남았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그때 그 바다보다 예쁜 바다를 보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계속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그때 보았던 푸른 바다 자체가 여행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보았던 푸른 바다를 정말 사랑한다.


그날 밤 기범이 형과 난 물놀이가 너무 피곤했었는지 둘 다 일찍 곯아떨어졌다.


다음날이었는지 다다음날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승빈이가 자기 오늘 어학원 쉬는 날이라고 다 같이 놀러 가자고 했다 그래서 기범이 형은 고민을 하다가 그럼 뽀빠이 빌리지에 가자고 했다. 뽀빠이 빌리지는 뭔가 절벽 밑에 있는 해변가에 허접한 캐리비안베이를 지어놓은 듯했다. 어쨌든 나는 물놀이를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너무 좋다고 했다. 우린 뽀빠이 빌리지에서 하루 종일 재밌게 놀고 절벽에서 서로를 사진으로 남기며 기억에 새겼다.


그렇게 몰타에서의 친숙해진 하루하루가 지나갔고 어느덧 한국으로 돌아가기 이틀 전쯤 되었을 때 기범이 형이 머물던 하숙집에서 내가 숙박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당시 나에겐 청천벽력 같은 상황이었다. 기범이 형은 오로라를 보겠다고 다른 나라로 떠났고 승빈이도 어학원에서 같이 공부하던 친구네로 떠나버렸다. 나는 하루인가 이틀을 호텔에서 보내게 되었고 낯선 나라에서 홀로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비행기에서 온갖 불안과 걱정을 떠올리며 밤새 잠들지 못했던 것처럼 스스로를 호텔에 가두고 극심한 불안감을 느꼈었다. 식사도 모두 호텔방에서 룸서비스를 시켜 먹고 정말 단 한 발자국도 방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몰타에서의 행복했던 기억들을 뒤로한 채 두려움에 눈물을 흘렸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뭐가 그렇게 두려웠는지 기억조차 안 난다. 단지 침대 속에서 웅크리고 낭비한 그 하루가 아까울 뿐이다. 홀로 걷는 몰타의 밤거리는 어땠을지, 후미진 길거리 카페의 커피맛은 어땠을지 느끼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지만 스스로 무언가 할 수 있겠다는 성취를 갖게 된 내 생에 첫 해외여행이고 새로운 도전이었다.



시내투어(인연)


몰타에서의 첫 해외여행을 다녀온 뒤 국내에서 초등학교 동창 친구들과도 펜션을 잡고 술 마시러 여행을 몇 번 더 다녔었다. 그렇게 매번 똑같은 친구들과 똑같은 하루를 보내며 살아가던 중 일상이 너무 지루하고 무료하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뭔가 색다른 게 없을까 찾아보던 중 당시 sns에서 유명하던 여행작가의 단체여행 패키지 상품이 눈에 들어왔다. “우아 모르는 사람들과 낯선 곳에서의 여행이라니” 너무 신선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회사 일정은 생각도 안 하고 바로 결제했다.(내가 일하는 곳은 사적 국외여행을 가기 위해서는 한 달 전에 미리 승인을 받아야 하는 곳이다)


우선 결제부터 해놓으니 한동안 마음이 엄청 들떴다. 지루하고 무료하던 하루도 여행에 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생각하다 보면 금세 퇴근시간이 됐다. 그렇게 떨리는 마음으로 여행 가는 날만 기다렸다. 이윽고 여행 당일이 되었다.


우린 밤비행기를 타기 위해 인천공항에서 미리 만나 보드게임을 하며 탑승 시간을 기다렸다. 함께 여행을 가는 이들은 대부분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었다.(작가님 빼고) 나는 “내가 또 언제 이렇게 젊은 친구들과 여행을 가보겠어”란 생각을 하면서 떨리는 마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우린 모두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다들 낯을 많이 가리지 않았다. 우린 세부라는 낯선 나라에서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밤마다 호텔 방에 다 같이 모여 술을 마셨고 또 정해진 일정에 따라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스노클링도 했다. 어느 날 밤엔 시내누나가 우리를 흥겨운 음악이 나오는 클럽에도 데려갔었다. 우린 거기서 현지인들과 함께 어울리며 리듬에 맞춰 휴지를 마구 뽑아 날렸고 광란의 밤을 즐겼다. 다들 열심히 에너지를 소모하였음에도 우린 밤거리를 걸어 호텔로 돌아와 또 술을 마셨다.


일정 중에 현지 마사지를 받는 시간도 있었는데 마사지를 다 받고 카페에서 쉬고 있는데 그날이 충현이라는 눈이 아주 크고 동글동글 귀여운 친구의 생일이었다. 우리 모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깜짝 파티를 해주자고 했다. 우린 급하게 카페에서 여러 소품들을 빌려 조촐하고 깜찍한 생일 파티를 열어주었다.


그렇게 세부에서의 즐거웠던 기억들을 가지고 우린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와서도 헤어지는 게 못내 아쉬웠었는지 조만간 다시 만나 같이 놀자고 몇 번이고 약속을 한 뒤에야 서로의 일상으로 돌아갔다.(우린 정말 며칠 뒤 함께 롯데월드로 놀러 갔다) 롯데월드에 다녀온 뒤로는 서로 연락을 자주 하며 지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이 여행을 통해 덕기라는 키가 크고 잘생긴 나의 2호 고객님을 얻게 되었다. 나는 덕기랑만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었는데 몇 달 전 리더십이 강한 친구인 성연이에게 연락이 왔고 역시 성연이 답게 금세 흩어져 있던 친구들을 하나 둘 모아 약속 날짜를 잡았다.


우린 을지로에서 술을 마셨고 몇 년 만에 보는 내 기억 속 이십 대 초반의 어린 친구들은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그때의 그 모습들이 보여 나 혼자 므흣했다. 재치 있는 용현이, 리드하길 좋아하는 성연이, 친화력이 좋은 현수 그리고 항상 위풍당당한 현지 마지막으로 나처럼 소심했던 경희까지 모두 많이들 변했고 나 또한 많이 변했지만 여행을 통해 생긴 잊지 못할

기억 속 인연들이기에 너무 소중하고 감사하다.



도망가고 싶을 땐 언제든 떠나는 나 홀로 여행(자유)


한창 이혼소송으로 다투며 내 마음과 생각이 온전치 못했을 시기 나는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여행을 많이 다녔다. 타인과 함께 하거나 때론 혼자서 이곳저곳 다니며 느낀 것은 내가 괴롭고 마음이 아프고 생각이 복잡할 때 타인과의 여행은 독이 된다는 것이다. 나의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이 그대로 타인에게 전염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친누나와 떠났던 오키나와 여행이 그랬다. 당시 불안한 마음과 복잡한 생각을 견디기 힘들었던 난 어디로든 떠나고 싶어 경비를 모두 내가 부담할 테니 여행을 가자고 누나에게 먼저 제안했다.


그렇게 우린 따뜻한 오키나와로 떠났다. 도착하자마자 한 일은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백화점에 들러 쇼핑을 한 것이다. 누나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정말 생각 없이 돈을 썼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소비를 그렇게 하고 숙소로 돌아가다가 주택가 사이에 있던 야끼니꾸 가게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 자리에서 난 누나에게 내 마음속 불편한 감정들을 배설했다. 분명 아까 쇼핑을 할 땐 즐겁게 해 놓고 식사를 하며 생각해 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평소에 나라면 절대 사지 않았을 것 같은 것들이었다. 그래서 식사하는 내내 누나에게 오늘 산 것들을 잘 입지도 쓰지도 않을 것 같다며 돈이 아깝다고 투덜거렸다. 누나는 듣다 못해 아깐 좋다고 사더니 왜 이제 와서 난리냐고 욕을 했다.


욕을 듣고 나도 기분이 나빠져서 싸웠지만 싸우면서도 난 지금 내 행동이 굉장히 비이성적이고 타인의 기분을 망쳐놓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맥주와 주전부리를 사다가 누나랑 맥주 한잔 하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누나도 내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욕해서 미안하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다 잘 될 거라고 다독여 줘서 무탈하게 우린 화해를 했다.


다음날 아침 누난 늦게까지 잤고 난 일찍 눈이 떠져 로비로 내려와서 간단하게 샌드위치에 커피를 마셨다. 창가에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혼자 깊게 생각해 보았다. “이대로 나의 더러운 감정들을 다 배설하면서 여행을 하다가는 누나와의 관계가 완전히 틀어져버릴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뒤로는 최대한 감정을 숨기려고 노력했다. 물론 완벽하게 감추진 못 했지만 그래도 그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남은 여행에서 스노클링도 즐겁게 하고 지금 누나와 큰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믿는다.


누나와의 여행 이후 나에겐 한 가지 원칙이 생겼다. 내 마음이나 정신 상태가 온전치 못 할 때에는 타인과의 여행은 가지 않는 것이다. 이후에도 난 이혼소송에 시달리며 힘들 때마다 혼자서 어딘가로 훌쩍 떠나곤 했다. 숲으로, 바다로 그렇게 내가 원하면 언제 어디서든 혼자서 훌쩍 떠났다. 그럴 때마다 내 안에서 온전한 자유를 느꼈다.


한 번은 소송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는데 도저히 사무실에서 그걸 기다리고 있을 자신이 없어 갑자기 이틀 정도 휴가를 쓰고 속초로 떠났다. 해변가에 있는 의자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기도 하고 저녁엔 해변가에 있는 술집에서 오징어숙회와 소주를 마시며 사장님한테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보시기에 딱했는지 사장님이 귀여운 팔찌를 주며 힘내라고도 하셨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자유로움 그 자체이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먹고 싶은 걸 먹는다. 타인의 의견이나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 따윈 없다.



가파도에서 생긴 즐거움의 연속(즐거움)


먼저 말하자면 난 이들과 이렇게 여러 번 여행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작년 8월 햇볕이 무척 뜨겁던 여름 어느 날 시내누나의 스토리를 보다가 태그 되어 있는 사람을 타고 들어가 보니 박현서라는 낯선 사람이 있었다. 그녀의 피드를 보다가 ”가파도 여행 모집“이라는 게시물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해 보니 딱히 할 것도 없고 지루하던 참이어서 냉큼 신청해 버렸다.


그렇게 우린 제주도 선착장에서 모였다. 모두 처음 보는 사이였고 선착장에서 현서누나를 기다렸다. 현서누나와 삼인방(무겸, 원호, 서현)도 잇따라 도착했고 우린 배를 타고 들어본 적도 없는 가파도라는 섬으로 들어갔다.


섬에 내리자 새하얀 트럭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덜컹덜컹 트럭을 탔다. 곧 숙소에 도착해 대충 짐정리를 하고 보말 줍기 대회를 위해 현서누나의 뒤를 따랐다. 가도 가도 끝이 없어서 사람들은 현서누나에게 도대체 어디냐고 아우성이었다. 그럼에도 현서누나는 끄떡하지 않고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따라들 오라고 했다. 우린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도 모른 채 그저 깔깔거리며 현서누나를 좇아갔다. 결국 보말을 엄청 많이 주웠지만 저녁에 삶아 먹으려고 보니 현서누나가 잘못 알려줘서 먹을 수 없는 무언가를 보말인 줄 알고 잔뜩 주워왔던 것이었다.


그리고 첫날엔 원래 물놀이 일정이 없었는데 다들 보말 주우러 가는 길이 많이 더웠는지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바다로 이끌려 첫날부터 첨벙첨벙 물놀이를 했다. 돌아와 우린 숙소에서 맛있게 고기를 구워 먹고 술을 마시며 왁자지껄 놀았다.


이튿날 아침 숙소 어머님이 만들어주신 보말죽(우리가 잡아온 거 말고 진짜 보말)을 맛있게 먹었다. 좀 더 쉬다가 점심은 맏형인 태형이 형님께서 사주셔서 돈가스를 먹었다. 커피까지 수혈한 뒤 우린 자전거를 빌려 타고 섬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 사이 제주 해녀다은누나가 도착했다. 다은누나가 오고 우린 또 물놀이를 하러 갔다. 다들 물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둘째 날 저녁엔 다은누나의 강한 기운이 더해져 첫날밤 보다 더 크게 더 재밌게 왁자지껄 놀았다.


마지막 삼일에는 다시 제주도 선착장으로 와서 다은누나를 배웅해 주고 우린 다시 배를 타고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로 들어갔다 마라도에서 짜장면을 먹고 또 커피를 마시고 섬을 한 바퀴 걸었다. 여행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공항으로 갔고 비행기 탑승시간을 기다리며 앉아서 마지막으로 서로 얘기를 나눴다. 팔찌도 바꾸며 한껏 친해진 우린 그대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의 여행은 여기서 끝인 줄 알았다. 하지만 가파도 여행이 끝난 뒤에도 울산•부산, 청주, 원주, 안동까지 우린 함께 여행했다.


난 이들과 같이 시간을 보낼 때면 아무 생각 없이 마냥 어린아이처럼 즐겁다. 이런 즐거움은 여행+좋은 사람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p.s 25년 새 해 또한 이들(동빈, 서현, 창돈)과 함께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