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11월 9일 단풍이 떨어지고 겨울바람이 불기 시작한 어느 날 태어난 작은 아이는 먼저 태어난 뱃속에서부터 말썽이던 누이와는 달리 산모에게 그 어떠한 고통도 주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 아이는 겨울이 오고 새하얀 눈이 오면 손발이 꽁꽁 얼어 동상에 걸릴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눈밭에서 놀기를 좋아했다. 그렇게 겨울을 사랑하던 아이는 사춘기가 제대로 온 누이 때문에 힘들어하던 엄마의 모습을 보며 자라서인지 첫째에 비하면 평범하고 말썽 없이 자랐다.
우리 가족은 모두 내가 아무런 말썽 없이 그대로 쭉 클 것이라고 방심했다. 그래서였을까 여름 볕이 뜨겁던 여느 날과 달리 2008년 9월 8일 그날은 새까만 먹구름에 비가 오던 날이었다. 난 무지개 색깔 우산을 챙겨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며 당차게 집을 나섰지만 그날 우리 가족은 말썽 없던 나로 인해 무너졌다.
나는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턱걸이를 하다가 뇌출혈이 발생해 의식을 잃었고 골든타임이 한참이나 지난 후에야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당직 교수님께서는 응급실에서 이미 한 차례 심정지가 왔었던 아이가 깨어날 수 없을 거라고 아이 엄마에게 말씀하셨다. 당연히 제 자식이 깨어날 수 없다는 말을 엄마는 인정할 수 없었다. 자신의 것보다 일찍 꺼져가는 자식의 생명을 인정할 수 있는 부모가 있을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몇 개월 만에 불행의 씨앗이 되어 다시 태어났다. 말 그대로 정말 다시 “태어났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갓난아이처럼 누워있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갓난아이가 부모의 보살핌 없이 살 수 없듯 그때의 나 또한 그랬다. 불행의 씨앗은 순식간에 경제적, 심리적 압박감이 되어 우리 가족 위에 피어났다. 부모님은 나에게 발생한 상황에 대하여 서로를 탓하며 갈라섰고 엄마의 노후자금도 내 위에 흩뿌려졌다.
잔혹한 현실이 내 피부에 와닿을 때쯤 이 모든 결과에 대한 죄책감은 오롯이 나의 것이었다. 그쯤이었던 것 같다. 살갗을 콕콕 찌르는 겨울바람이 싫어진 것도, 새하얀 눈을 봐도 더 이상 설레지 않게 된 것도.
이제 겨울이 싫어진 아이는 스스로 살 길을 찾아야 했다. 교과서 외에 읽어본 책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책을 읽지 않던 나는 이때부터 책을 마구 읽으며 책 속에서 내가 살아갈 세상을 찾고 있었다. 여러 가지 책을 읽다가 주식이라는 자본시장의 꽃을 알게 되었지만 아직 미성년자이던 나는 성인이 될 때까지 책과 인터넷을 통해 예습을 하며 때를 기다려야만 했다.
어느덧 나는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생이 되었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증권계좌를 만들고 투자동아리에 가입했다. 강릉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주식도 하고 내 삶을 내가 온전히 책임지는 기분을 맛보며 살았다.
여름이 오면 반짝이는 바다를 보러 다니며 여름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 아이는 날이 갈수록 계절 중 여름을 편애하게 되었다. 나의 삶은 운명인지 우연인지 유독 한여름의 방정식을 풀어나갔다. 풀리지 않던 복잡한 방정식도 머리를 싸매고 풀어가다 보면 마치 꽁꽁 얽힌 실타래가 어느 순간부터 술술 풀리듯 풀리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나에게는 그 순간들이 항상 여름이었다.
나는 대학에 입학하고 처음부터 남들과 많이 달랐는데, 동기들보다 어린 나이(그것은 즉 아직 미성년자 딱지도 떼지 않은 상태)로 수능도 보지 않고 검정고시 점수를 가지고 입학해 버린 것이다. 게다가 몸도 불편했었던지라 몸이 불편하고 앳된 소년이 막 성인이 된 그들 사이에 섞여 자연스레 스며들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첫 학기가 시작되고 한동안 동기들에게 형, 누나라고 부르며 어색한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새 날이 따뜻해지더니 여름이 왔고 학교는 축제 시즌이 됐다. 당연히 우리 과에서도 부스를 하나 열어야 했다. 우리 학교는 산으로 둘러싸여 시내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던 곳이라 해가 지고 밤이 오면 꽤 음산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곳이었는데 우린 그런 점을 고려해서 가장 구석진 곳에 무서운 분위기의 주점을 열기로 했다.
하얀 소복에 얼굴에 분칠을 한 예쁜 처녀귀신, 모형 칼을 들고 다니는 처키, 여기저기 물어뜯긴 피범벅좀비까지 준비했다. 처녀귀신은 서울에서 온 깍쟁이 도연이가 처키는 시흥에서 온 키 작은 종훈이가 맡아줬는데 좀비 역할은 누가 맡을지에 대해 열띤 토론중일 때 나는 옆에서 형누나들이 얘기하는 걸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전에 읽었던 책 중에서 닉부이치치의 “허그”라는 책이 떠올랐다.(닉부이치치는 선천 전으로 팔다리가 없이 태어났는데 타고난 낙천적 성격 덕분에 사람들에게 많은 용기와 희망을 전파하는 일을 했다. 작중에서 닉부이치치가 서핑을 하는 일화가 나오는데 닉부이치치는 자신의 몸통 밑에 붙어있는 발처럼 생긴 작은 돌기 덕분에 자신이 좋아하는 서핑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사람들에게 그 돌기를 닭발이라며 자랑하는 장면이 있다) 그 상황에서 왜 갑자기 닉부이치치가 떠올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형누나들에게 좀비 역할은 내가 할 수 있다고 아니 누구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다고 말해버렸다.
형누나들은 서로를 둘러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고 나는 이어서 “나는 평소에도 좀비처럼 걷기 때문에 분장만 잘 시켜주면 누구보다 자연스러울 거다”라며 설득시켰다. 순간 그들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들도 인지하지 못한 죄책감 같은 것 때문인지 머뭇거렸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며 “대학생활 중 기억에 남는 추억 하나 정도는 갖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교수님부터 다른 동기들까지 모두 그렇게 한번 해보자고 했다. 대신 걱정이 되니 좀비짝꿍을 하나 더 붙이자고 했다.
그렇게 내 룸메였던 쿠마(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는 영문도 모른 채 얼떨결에 나와 같이 좀비분장을 하고 서빙을 하게 되었다. 엄청난 I였던 나는 막상 당일이 되니 너무 떨려서 소주를 벌컥벌컥 마시고 오늘만 살자고 굳은 각오를 다졌다.
이후 쿠마는 서빙을 하고 나는 우리 주점 주변을 배회하며 호객행위를 했다. 이 날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취기가 올라와 반쯤 정신줄을 놓은 상태로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볼일을 다 보고 다시 부스로 비틀비틀 절뚝절뚝 거리며 가던 중에 저쪽에 있던 몇몇 무리들이 날 보며 “우와 진짜 좀비 같아”라며 캄캄한 어둠을 헤쳐 우리 부스까지 날 쫓아왔던 것이다. 내가 몰고 온 그 무리를 보고 선배들과 동기들은 깔깔거리면서 “지윤이가 손님 모셔왔다”며 좋아했고 나는 그날 동기들과 허울 없이 술을 마시며 친구가 됐다. 이후 나는 동기들에게 형누나라는 호칭 따윈 내 다 버리고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나보다 먼저 세상에 나온 친구들을 왕창 만들어버렸다.
남들과 다른 내가 세상 속에 스며들기가 너무 힘들다며 항상 힘들어했는데 그 해 여름 난 느꼈다. 세상은 나뿐만이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자신에게 스며들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단지 우리는 그 첫 발을 내딛을 용기만 가지면 된다고
그 해 여름 풀었던 방정식은 내 삶에서 아주 중요한 공식이 되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공무원시험 준비를 할 때에도 공무원이 되어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에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영원할 것 같았던 약속을 할 때에도 항상 내 마음속 깊이 새겨진 공식을 풀어 답을 구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겨울아이는 여름을 사랑하게 되며 점차 혼자서도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는 여름어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