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by 고지윤

내가 처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꼈던 순간은 당장에 닥쳐올 나의 고통 보다도 내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마음 아파할 누군가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다만 안타깝게도 그러한 순간을 맞이한 공간이 병원이었다는 게 마음 한쪽이 아려온다.


때는 결혼을 하고 신혼생활을 한창 즐기던 중 찾아왔다. 나에게는 반려균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긴 세월을 함께 살아온 균이 있는데 그놈이 문제를 일으켰던 것이다.


어릴 적 머리수술을 하고 난 뒤로 내 머릿속에는 농양이 생겨 반 평생 동안 나의 뇌를 야금야금 먹고 있는 균이 살고 있다.


그놈은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건강하게 잘 지낼 때는 조용하다가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오랫동안 열병을 앓아 균이 증식하기 좋은 환경이 되면 어김없이 날 삼키려 한다.


그때도 그랬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어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을 때 놈은 나를 삼키려 했다. 갑자기 열이 나고 두통이 심해졌다.


어릴 적 긴 시간을 병원에서 보냈기에 난 병원에 가는 걸 싫어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아내의 걱정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기에 결국 병원에 갔다. 교수님께서는 내 상태를 보시고 바로 수술을 하자고 하셔서 농양을 제거하는 수술까지 받게 되었다.(하지만 반려균은 여전히 나와 함께 살고 있다ㅎㅎ)


당시에 받게 될 수술은 두개골을 열었다 닫는 수술이라 큰 수술이었지만 전신마취를 하기도 했고 어릴 적 수차례 같은 경험이 있었기에 수술 자체에는 큰 두려움이 없었다. 문제는 회복을 한 뒤에 생겼다.


개두술(開頭術)을 받게 되면 머릿속에서 나오는 피를 빼내기 위해 긴 고무관을 넣어놓고 수술 부위를 덮는다. 며칠 뒤 피가 멈추면 의사는 마취도 하지 않은 채 생 살을 찢고 이 핏줄을 쭉 잡아당겨 뽑아낸다.


이것은 수술보다 더 기괴한 고통을 나에게 선사했다. 마치 엄청 큰 지네가 머릿속에 똬리를 틀고 있다가 두피를 뚫고 나오는 느낌이다. 그래서 어릴 땐 이 과정에서 소리도 지르고 숨이 넘어가듯 울기도 하며 난리를 피웠었다.


하지만 이젠 아내가 걱정하는 얼굴로 내 앞에 서있지 않은가. 그런 그녀 앞에서 어떻게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일 수 있단 말인가.


의사 선생님께서 수술부위 소독을 마치고 피가 멈춰서 이제 피를 배출하는 관을 뽑아도 될 것 같다며 간호사선생님에게 시술 준비를 해달라고 하셨다.


그때부터 나는 예전의 악몽 같던 고통의 감각들이

다시 살아나며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아내의 얼굴을 보자 수많은 걱정이 떠올랐다. 평소에도 원래 걱정이 많은 아내인데, 분명 내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릴 것이기에 나는 어떻게 해서든 나의 고통을 숨겨야만 했다.


나는 긴장되는 마음을 숨긴 채 아내에게 금방 끝나니까 편의점에 가서 과자 좀 사 와 줄 수 있냐고 물어본다 그런데 웬 걸.. 아내가 옆에 있겠다고 한다. 나는 무심히 알겠다고 한 뒤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그 어떤 소리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겠다고.


지네 한 마리가 머릿속을 헤집고 나오는 순간 난 다음날까지 턱이 아플 정도로 이를 꽉 깨문 채로 씩 웃어 보였다. 두려움 속에서도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준 그녀에게 깊이 감사한다.



이러한 순간을 경험하기 전까지 난 “사랑”하기 때문에 연애를 한다던가 동거를 한다던가 결혼을 했던 게 아니었다. 그냥 이성적으로 끌리는 느낌을 사랑이라고 착각했을 뿐이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사랑했던 사람이 한 명뿐이었다는 사실에 지난날이 조금은 아깝게 느껴짐과 동시에 나 자신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조금 더 젊었을 때 많은 것을 경험하고 더 많은 존재를 사랑했었더라면 지금의 내가 나를 더욱 사랑할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