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누구나 고통을 마주하며 살아간다. 어느 고통은 너무 작아 쉽게 잊히기도 하고, 다른 고통은 뇌리에 박혀 아무리 도망가도 결국엔 원점으로 되돌리기도 한다. 올해 겨울 집에 불이 났다. 당연하던 것들이 없어졌고, 모든 것은 중심을 잃은 채 지속되었다. 나는 그 속에서 열심히 발버둥 쳤지만 일정 기간마다 찾아오는 기억의 시간들에 시달린다. 이 글은 나에게 찾아오는 고통을 제대로 마주하며 조금이라도 제대로 벗어날 방법을 찾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7년간 함께 했던 당근이를 위해, 평생 기억을 안고 갈 가족들을 위해 쓸 것이다. 아마 긴 연재가 될 것 같다. 글이 끝나는 시점엔 부디 나의 번 마크가 번져 희미해지길 바란다.
#1
추운 겨울이었다. 곧 다가올 생일을 기대하고 부산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아침부터 신경 쓴 메일링 때문인지, 버스 좌석에 앉자마자 곧장 잠에 들었다. 한참을 가다 노포역에 도착할 때쯤 안내 방송을 듣고 눈을 떴다. 그렇게 다시 지하철로 자리를 옮겨 평소 부산으로 향할 때와 같이 휴대폰을 켰다. 지하철은 연산역을 지나고 나는 지루할 틈 없이 유튜브를 시청하며 올라오는 웃음을 입 밖으로 피식피식 내뱉고 있었다. 사건은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양정역에 도착했을 때쯤,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아주 다급한 목소리였다. "집에 불이 났다" 잘못들은 줄 알았다. "어?"라고 말했다. "불났다. 다 탔다" 짧고 바빠 보이는 듯한 엄마의 한마디에 온 신경이 '불'이라는 단어에 쏠리면서 오히려 침착해졌다. 전화기 너머로 "아니, 제대로 말을 해봐. 불이 어디 났는데. 집이 어느 정도 탔는데"라고 말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냥 다 탔다니까. 2층 다"였다. 그러고 전화는 끊겼다.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나는 다시 엄마에게 전화했지만 돌아오는 건 통화 중이라는 대답뿐이었다.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등부터 시작된 땀이 서서히 내 손까지 퍼져 휴대폰을 잡아 든 손을 덜덜 떨게 만들었다. 이어 아빠에게 전화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집에 불이 났다는 말을 듣고 나서 달리는 지하철 안에 앉아 있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세상에 모든 사람이 인터넷 망으로 연결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 망을 따라 순간이동을 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불안감이었다. 수차례의 전화에도 연결 중만 돌아오는 엄마, 아빠를 넘어 언니에게 전화했다. 언니는 올해 초부터 나가 살았던지라 아무래도 이 사고와 연결성이 없었지만 내가 이 불안감을 의지할 수 있는 곳은 거기뿐이었다. 언니와 몇 차례 통화 후 조금 정신을 차렸다. 학원을 마치고 부산에서 돌아가는 중이었던 언니는 곧바로 집에 가보겠다고 말했고 그렇게 짧은 정적이 흘렀다. 불안하면 습관적으로 나오는 행동은 모두 발현되었다. 다리를 떨고, 떨리는 손을 잡고, 눈앞이 캄캄해지고, 생각을 해도 결론이 나오지 않는 그런 것들.
지하철에서 내렸다. 아직 부산에 집이 없던 나는 역에서 나와 친구 집으로 향했다. 사실 내가 걷고 있는 건지,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언니한테 전화가 왔다. "당근이 죽었대" 그 한 마디에 나는 받아들일 수 없는 모든 상황이 결국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란 걸 깨달았다. 소식을 들은 자리에서 단 한 발도 움직일 수 없었다. 지나고 있는 이 시간들이 정말 일어난 게 맞는가 혼란스러워서, 너무 당연하게 당근이가 살아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눈앞에 떨어진 죽음이란 단어가 순간적으로 너무 무서워서 목소리가 떨렸다. 도저히 침착하고 말을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어디에 있었다는데.."라고 희미한 목소리로 물었다. "안방 화장실.. 문이 닫혀 있었데" 세상이 무너졌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였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과, 올라오는 눈물과, 반대로 무너져가는 마음. 세 가지가 빠르게 요동치니 정말이지 쓰러질 것만 같았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친구 집에 도착했을 때, 혼자에서 벗어나 기댈 수 있는 누군가를 마주했다는 안심 때문인지 엉엉 울었다. 울음을 넘어 악이었다. '정말이구나, 나에게 일어난 일이구나'를 계속 되뇌었다. 두 뺨 위로 흐르는 눈물과 입 밖으로 나오는 소리는 절망에 가까웠다. 일어난 일을 받아들여야 하는 두려움과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 뒤섞인 채 한참을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