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괴물을 만들었는가

인트로

by 여린

왜 공포영화 속 주인공들은 불길함을 감지하고도 빛 한 점 들지 않는 지하실로 발을 옮길까?

왜 그들을 보고 비난하는 우리 역시, 침대 밑 괴물을 두려워하면서도 확인한다는 명목 아래 기어코 그 아래를 들여다 보고야 마는 걸까?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요소 중 단연코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호기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는 것이야말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인간 본연의 욕망이다. 사람들은 괴물, 악마, 유령과 같은 존재를 보고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그들에게서 결코 눈을 떼지 못한다.


제목 없음.png Monsters, Inc. (2001)


이처럼 두려움을 야기하면서도 탐구심을 자극하는 공포 영화와 신화 속 괴물들은 언제나 나의 관심사였다. 인간과 닮은 만큼 인간과 다른 면을 지닌 그들의 기원과 이야기에 파고들기 시작한 것은 2017년 만난 뱀파이어 뮤지컬 <마마돈크라이>였지만,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나는 미스터리 현상과 괴물이라 불리는 존재들의 흔적을 쫓아왔다.




호러 장르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대개는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특이한 취향쯤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상상만으로 오싹해지는 그 이야기들을 왜 깊이 탐구하냐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말해야 그 존재들의 매력을 설명할 수 있을지 오래 고민해 왔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 이를 연구하고 즐기는 이유는 그 기원이 인간의 욕망과 결핍에 있기 때문이다. 진시황은 죽음을 두려워해 불로초를 구했고, 현대인은 피를 빨아 불멸을 사는 뱀파이어에 매혹된다. 신적 존재가 주는 권능과 피의 영속성은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는 절대성을 보여준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정서가 공포스러운 장르 안에 존재한다.


한때 사람들은 바다에서 길을 잃을까 두려워했지만, 동시에 바다 저편의 미지와 교감하고 싶어 했다. 인어는 그 호기심과 두려움의 중간지점에 존재한다. 망망대해에서 죽음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한편으로는 새로운 세계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 이것이 상반신은 인간이며 하반신은 어류인, 아름다운 목소리로 유혹해 배를 암초에 부딪치게 하는 매혹적인 존재인 세이렌Siren의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GfPmsiij-oL8WJsrVr2ooO8xTaQKcJ5xBs4H7sRVaUkGAnLNQOh7F_R-mizOKZeZ8xK5qWBam2Yn_H1ZtMfnxA.webp 《Ulysses and the Sirens》Herbert James Draper, 1909


요즘 공포 장르에는 사연 있는 괴물들이 여럿 등장한다. 무작정 무섭기만 한 괴물은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을 사로잡는 것은 시각적인 공포보다 그 안에 담긴 결핍과 갈망이다. 평범한 인간이 그들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인간을 초월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삶에 대한 갈망 등 인간 마음의 은유가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이 신화적 존재들은 한 번도 같은 얼굴로 재현되지 않았다. 창작자는 프랑켄슈타인처럼 이를 조금씩 왜곡하고 덧붙여 자신이 원하는 모습의 새로운 괴물을 창조해 낸다.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네스 호의 괴물 네시도 모든 사진에서 다른 형태를 띠고 있지 않은가?


pantaji43.jpg Frankenstein (1931)


대중매체는 공포의 기록을 끝없이 재생하며, 괴물을 창조해 내는 인간의 상상을 증폭한다. 뱀파이어가 수백 년 동안 변주되어 온 것처럼, 괴물들은 시대와 공간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 영화는 이를 시각화하고, 공연예술은 무대 위에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며, 문학은 언어로 형상을 조각한다. 나는 그들이 등장하는 수많은 창작물을 따라가며, 공포스러운 존재들이 인간의 어떤 심연을 비추는지 살피고자 한다.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에 의도 없이 촬영되는 장면은 없다고 배웠다. 설령 의도가 담기지 않았다 주장하더라도, 그 행위 자체가 창작자의 의도를 담은 것이다. 눈 깜빡할 사이 무심히 넘어가는 한 장면에도 인간의 무의식이 받아들이는 정보가 숨어 있다. 미디어를 전공하고 공부하는 동안 쌓아온 비평 방법론, 커뮤니케이션 이론, 신화와 서사 구조에 대한 지식은 내가 괴물과 공포를 가르고 뜯어볼 수 있는 메스와 같다.


브런치 글 작성을 준비하기 몇 년 전, 오컬트 장르 영화에 등장하는 존재들을 중심으로 영화를 분석하는 책을 읽은 적 있다. 책 정보에는 작가님이 운영하시는 사이트의 주소가 있었다. 내가 기대감을 안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소창에 키보드를 눌러 영어 문자를 하나씩 적어 넣고, 마침내 엔터를 눌렀을 때 해당 사이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보고 얼마나 절망했는지 모른다.


따라서 나의 브런치 스토리는 스스로 탐구할 뿐 아니라 나와 같은 공포 꿈나무 독자들이 인사이트를 얻고, 여러 관점에서 작품을 읽으며, 소통하며 서로 배워갈 수 있는 교류의 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개설된 연구소인 셈이다. 내 몸은 이곳에 있지만, 내 정신은 뱀파이어의 기원이 된 루마니아의 포에나리 성에 위치한다.


같은 이야기도 매번 다르게 창조된다. 괴물은 늘 새롭게 만들어지고 의미를 갖추어 세상에 태어난다. 이후 글에서는 인간들에게 통칭 '괴물'이라 불리며 공포의 대상이 되어온 존재들이 어디서 왔는지, 수많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그 창조의 기록을 따라갈 것이다. 그리고 발견한 그들의 흔적을 글을 보는 이들에게 다시 건네려 한다. 공포스러운 존재들이 왜 그렇게 오싹하면서도 매력적일 수 있는지, 왜 인간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괴물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연구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