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속 괴물 연구소
100세 시대를 넘어 120세 시대로 향하고 있는 지금, 오래도록 살아야 하는 현대인의 고민은 뱀파이어와 맞닿아있다. 필멸자인 인간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기피하지만,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전부 죽어 사라진다고 해도 그 생각은 여전할까? 홀로 수백 년의 세월을 견디며 그들을 추억하다 보면 끝내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영생을 살며 느낄 고독을 떠올려 본 적 있는가. 뮤지컬 <마마돈크라이>는 심지어 죽고자 해도 스스로 죽을 수 없는 뱀파이어가 겪는 고독을 다루고 있다.
뱀파이어, 혹은 드라큘라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연상되는 것은 연미복을 입고 박쥐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으리으리한 성에 살며 연미복을 입은 채 와인잔에 든 피를 홀짝이는 매력적인 남성이다. 요즘의 현대인들은 햇빛을 보지 못하는 것만 제외하면 뱀파이어의 삶을 동경한다. 특히 으리으리한 성과, 매일 즐길 수 있는 화려한 파티는 오랜 시간 동안 축적해 온 부의 상징이다. 부를 축적한 비결을 나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시간'으로 보았다.
<마마돈크라이>는 한 인물이 인터뷰를 진행하며 드라큘라 백작을 만난 이후 달라진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뱀파이어 장르 영화의 대표 격인 뱀파이어와의 인터뷰(1994)의 오마주로 보인다.
주인공이자 인터뷰이인 천재 물리학자 프로페서 V는 인물명에서 알 수 있듯 뱀파이어가 되어 영원을 얻는 대신 이름을 잃는다. 오랜 세월을 살며 남은 것은 교수라는 직책과 Vampire를 상징하는 스펠링 V뿐. 좋아하는 사람에게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그는 타임머신을 개발하고 마침내 중세 루마니아로 시간 여행을 떠나 드라큘라 백작을 만난다. 그러나 아무리 천재라도, 매력과 함께 덤으로 얻게 된 영생의 대가는 예상하지 못했다.
영생에 대한 판타지는 인류사에서 새롭지 않다. 중국의 진시황은 불로장생을 위해 위해 동남동녀 수천 명을 배에 태워 불로초를 구하라 보냈다. 그러나 그는 영원을 얻지 못했고, 무덤에서 황제가 꿈꾼 불사의 상징은 진시황릉에 테라코타 군사로 남아 관광객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반면 <마마돈크라이>의 뱀파이어 서사는 영생이 축복이 아님을 반복해서 말한다. 프로페서 V를 뱀파이어로 만들기 전 대화에서는 "너에게 영원한 생명이라는 고통을 줄 거야. 그걸 받아들일 수 있나?"라고 질문한다. 극 중 드라큘라 백작이 부르는 넘버 '달콤한 꿈'은 현실을 지옥에, 꿈을 천국에 빗댄다. 영생은 그에게 고통이고, 현실은 망각하고자 하는 허무한 공간이며 바라는 영원한 안식은 오직 꿈속에만 존재한다.
극 중에서 프로페서 V가 드라큘라 백작을 끔찍한 존재로 정의했을 때, 그는 드라큘라 백작이 평범한 인간과 섞여 오랜 시간을 살아가기 위해 수많은 이름과 새로운 신분으로 살아왔음을 알고 경악한다. 영원성을 가진 자들은 대개 인간성을 버리지 못한 채 방황하며 인간들과 섞여 살기를 바라나 대개 그러지 못한 채 끝을 마주한다. 그들이 지닌 '다름'은 평범한 인간들에게 두렵고 끔찍하게 느껴진다.
이처럼 영생은 낭만적으로 포장되지만 실체는 공동체의 단절과 직결된다. 불멸자는 끊임없이 필멸자의 흐르는 시간을 쫓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유대는 개체의 생존뿐 아니라 정체성과 안정감을 보장한다. 신체는 늙지 않더라도, 인간이 만든 공동체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뱀파이어는 바로 그 시간의 바깥에 홀로 남겨진다.
그래서 최근 대중문화 속 뱀파이어는 유독 소외의 은유로, 문명 밖으로 쫓겨난 자에 빗대어진다. 영생은 인간적이길 포기한 대가로 얻지만, 그들 안에 남은 인간성은 결국 공동체 바깥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모색하게 만든다.
죽음이 있어야만 공동체가 세대를 잇는다. 개인이 영생한다면 공동체의 세대교체는 불가능해진다. 이처럼 영원은 개인에겐 축복이지만 공동체에는 위협이 된다. 죽음이야말로 새로운 세대가 공동체에 진입할 수 있는 통로라는 것이다. <마마돈크라이>는 이러한 개념을 뒤집어,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죽음으로 가는 길을 열어줄 수 있다고 해석했다.
드라큘라 백작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같은 불멸의 피를 가진 존재가 목의 정맥을 물고 심장이 새 피를 공급하지 못하도록 가슴에 칼을 밀어 넣는 것이다. 드라큘라 백작은 죽기 위해 프로페서 V를 자신과 같은 뱀파이어로 만들고, 자신을 증오하게 만든 후, 친절히 살해 방법까지 알려준다. 프로페서 V와 드라큘라 백작의 만남은 끝없이 이어질 지독한 고독에서 자신을 해방시켜 줄 존재를 찾는 과정이다. 자살을 선택할 수조차 없는 뱀파이어는 공동체 상실의 극단적 고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은 고립 상태를 견디지 못하며, 관계와 유대가 없다면 삶의 의미가 극도로 약화된다. 마찬가지로 뱀파이어는 영원을 살지만, 반복되는 무한한 삶 속에서 의미가 되어줄 무언가를 찾아야만 살아갈 수 있다. 이제야 드라큘라 백작이 같은 고통을 나눌 상대가 생겼다고 한들, 그에게는 오래도록 이어져온 고독을 끝내고자 하는 욕구가 더 컸다. 따라서 새로운 동류를 만든다는 것은 단순한 피의 종속 구조가 아니라, 무의식적인 자기 파괴 욕망과 공동체 복원의 욕망이 교차하는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
드라큘라 백작이 프로페서 V를 물어 동류로 만든 행위는, 영원한 삶을 혼자 견딜 수 없다는 고백과도 같다. 매체 속 뱀파이어들이 항상 파티를 여는 이유는 새로운 존재를 불러들여 영원한 삶이 주는 지독한 반복과 고독을 견디기 위함이다.
현대 뱀파이어 서사는 불멸의 고독을 사회적 관계 욕망으로 전치한다. 프로페서 V는 단순히 불멸의 몸만 얻은 것이 아니라, 인간과 달리 피를 갈망하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내면의 균열을 맞이하게 된다. 타임머신을 통해 시간의 굴레를 넘은 끝에 그가 얻은 것은 드라큘라 백작이 죽은 후 겪게 된 영원한 시간 속 홀로임을 확인하는 현실이었다. 이처럼 <마마돈크라이>는 영생이 시간의 감옥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프로페서 V는 타임머신을 타고 원하는 어떤 순간으로든 돌아갈 수 있지만, 이미 뱀파이어가 된 몸으로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 그는 "나는 어느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걸까?" 하고 자조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드라큘라 백작을 재회하고 악수하며 웃음 짓는다.
두 존재는 서로의 고독을 치유하고 결국 영원한 시간 속 삶의 의미를 찾았을까? 그 뒷 이야기에 대한 해석은 관객에게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