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신부가 아닌 그냥『브라이드!』

대중문화 속 괴물 연구소

by 여린

메리 셸리의 Frankenstein은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재해석되어 온 이야기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존재 자체보다 괴물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중심에 둔다. 인간이 만들어 낸 존재가 인간 사회에서 배척당하고, 그 과정에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고독과 슬픔을 보여줄 때 프랑켄슈타인은 존재론적인 비극으로 확장된다.


그래서 이 작품은 늘 같은 질문을 던져 왔다. 과연 괴물은 누구인가?


이러한 전통 속에서 등장한 작품이 바로 The Bride!(2026)이다. 이 영화는 The Bride of Frankenstein (1935)의 ‘신부’ 캐릭터를 중심으로 서사를 확장한다. 특히 고딕적인 분위기와 펑크적인 미학을 결합한 스타일, 그리고 여성 중심의 서사를 통해 프랑켄슈타인을 새로운 시선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 전반에서 프랑켄슈타인 서사의 핵심적인 주제를 충분히 구현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뒤따른다.


기존 프랑켄슈타인 서사에서 괴물이 동반자를 요구하는 장면은 사랑을 얻기 위해서라기보다 인간 사회에서 배척당하는 존재가 자신과 같은 존재를 찾기 위해서다. 원작에서도 괴물은 반복적인 거부와 폭력 끝에 창조주에게 자신과 같은 존재를 만들어 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영화 속 프랑켄슈타인은 그러한 고독이 충분히 축적된 인물처럼 보이지 않는다. 접합 부위가 드러나는 얼굴과 목을 가리면 사람들 사이에 비교적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는 존재로 묘사되며, 심지어 얼굴을 본 불량배들도 두려워하기는 커녕 그에게 폭력을 저지를 정도로 사람들은 그의 외양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여성과 손을 잡아본 적이 없다는 대사 역시 등장하지만 그것이 관객에게 절대적인 고립의 경험으로 전달되지는 않는다.그 결과 브라이드의 탄생은 비극적인 필연이라기보다 로맨스 서사를 진행시키기 위한 장치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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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드의 핵심 대사처럼, 주인공이 '프랑켄슈타인의 신부'로 기능하기를 벗어나 그저 '브라이드'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가 프랑켄슈타인의 신부였던 적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The Bride!에서 브라이드는 이러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한다. 전통적인 프랑켄슈타인 이야기에서 괴물은 여러 시신의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들어진 존재이며, 인간과 닮았지만 결코 동일하지 않은 존재라는 점에서 깊은 존재론적 갈등을 겪는다.


영화 속 브라이드는 프랑켄슈타인처럼 여러 시신의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들어진 존재'라기보다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인간에 가까운 모습으로 묘사된다. 기억을 잃은 상태로 등장하지만 본인의 자각과 그들을 쫓는 주변 인물과의 관계로 인해 이전의 삶이 있었던 인물처럼 보이며, 죽었다 살아난 자 특유의 신체적인 특징 역시 크게 강조되지 않는다. 즉 그녀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라기보다는 과거의 삶을 가졌던 인간의 연장선에 있는 인물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브라이드는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방식으로 세상에 태어난 존재가 아니며, 두 인물 사이에는 존재론적인 공통점이 거의 형성되지 않는다.


이 차이는 이야기의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전통적인 프랑켄슈타인 서사에서 괴물이 동반자를 요구하는 장면은 “세상에 나와 같은 존재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나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라는 희망을 담고 있다. 그러나 브라이드가 그러한 존재가 아니라면, 프랑켄슈타인의 고독을 이해하거나 공유할 수 있는 인물 역시 되기 어렵다. 이로 인해 영화 속 두 인물의 관계는 존재의 고독을 공유하는 관계라기보다 사건 속에서 함께 움직이는 동행자, 거짓으로 붙들어둔 연인에 가깝게 느껴진다.


이 때문에 브라이드는 ‘프랑켄슈타인의 신부’라는 제목이 암시하는 역할과 실제 서사 속 기능 사이에 일정한 간극을 만든다. 괴물의 신부라는 개념은 원래 괴물과 같은 방식으로 태어난 또 하나의 존재를 의미하지만, 영화 속 브라이드는 그보다는 인간과 괴물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인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 영화는 괴물의 동반자라는 설정을 중심으로 전개되기보다는, 마치 조커와 할리퀸이나 보니앤클라이드 처럼 두 인물이 인간 사회와 충돌하는 또 다른 이야기로 방향을 틀게 된다. 이 부분에서 애초에 후자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도구로 프랑켄슈타인을 사용했다는 감상을 떨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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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 역시 이러한 설정의 모호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야기의 끝에서 프랑켄슈타인은 머리를 관통한 총알로, 브라이드는 수십 발의 총탄을 맞은 채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유프로니우스 박사는 특별한 신체 교체나 회복에 대한 설명 없이 두 존재를 다시 되살려 낸다. 물론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야기는 애초에 과학적 현실성을 기반으로 하는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원작의 괴물은 여러 시신의 신체를 이어 붙여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적어도 ‘새로운 존재의 창조’라는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반면 이 영화에서의 부활은 그 과정이나 원리가 거의 설명되지 않은 채 단순한 소생처럼 그려진다. 브라이드라는 존재는 창조된 괴물이라기보다 단순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인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국 영화는 괴물의 탄생이라는 프랑켄슈타인 신화의 핵심을 확장하기보다는, 그 경계를 점점 더 흐려 버린 채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영화가 강조하려 했던 브라이드의 사회에 저항하는 여성성 역시 서사적으로는 충분한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프랑켄슈타인 서사의 핵심 중 하나는 자신이 만들어진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은 괴물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탐색하며 괴로워하는 과정이다. 괴물은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 창조주는 왜 자신을 만들었는지, 인간과 자신은 무엇이 다른 존재인지 끊임없이 질문한다. 하지만 브라이드는 이러한 자아 탐색의 과정이 깊이 있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의 선택은 종종 상황에 떠밀리듯 이루어지며, 자신의 이전 삶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거짓에 순응한다. '집'에 가겠다고 밥상을 뒤엎다시피 했던 소생 초기의 기억마저 잃은 것처럼 말이다.


영화에서 인간이 두 존재를 두려워하는 이유 역시 전통적인 프랑켄슈타인 이야기와는 다른 방향으로 묘사된다. 기존 작품들에서 인간이 괴물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 존재가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불가해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사람들이 두 존재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그들이 ‘괴물’이기 때문이라기보다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처럼 보인다. 이로 인해 이야기의 긴장 구조는 괴물의 존재 자체에서 비롯되는 공포라기보다 위험한 범죄자를 추적하는 스릴러에 가까운 형태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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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더해 영화는 작가인 메리 셸리를 이야기 속에 직접 등장시키는 설정을 사용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설정이 프랑켄슈타인의 기본적인 구조와 충돌한다는 점이다. 프랑켄슈타인은 본래 메리 셸리가 창조한 허구의 이야기이며, 대부분의 프랑켄슈타인 영화들은 이 점을 명확히 유지한다. 실제로 메리 셸리가 등장하는 작품들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소설을 설명하거나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의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방식은 현실의 작가와 그녀가 창조한 허구의 세계를 구분하면서도, 이야기 속으로 관객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주는 극중극 구조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The Bride!에서는 메리 셸리가 단순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가 아니라, 주인공 아이다의 몸에 빙의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 설정은 프랑켄슈타인의 세계를 '작가가 창조한 허구'가 아니라 '현실에서 실제로 존재했던 사건'처럼 보이게 만든다.


물론 이러한 메타적인 접근 자체가 반드시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영화는 이 설정이 만들어낼 수 있는 서사적 가능성을 충분히 활용하지 않는다. 메리 셸리가 이야기 속에 직접 개입한다면, 창조주와 창조물의 관계라는 프랑켄슈타인 서사의 핵심 주제와도 흥미롭게 연결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영화에서는 이 설정이 이야기의 중요한 동력으로 발전하지 못한 채 영화의 호러 장르를 유지하는 장치처럼 조각나버린다. 이중인격처럼 갑작스럽게 메리셸리의 인격이 튀어나와 말을 쏟아내는 아이다의 모습은 마치 누가 더 문학 작품의 대사를 잘 읊는지 대회라도 하는 것 같다.


메리 셸리의 빙의 설정은 메타 장치라기보다는, 오히려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야기의 허구성과 현실 사이의 경계를 어색하게 흐리는 요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이 장치는 프랑켄슈타인을 새롭게 해석하려는 영화의 의도를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그 해석이 충분히 설득력 있게 확장되지 못했다는 인상을 남긴다. 메리 셸리가 자신의 이야기 속으로 직접 들어온다는 설정은 분명 흥미로운 아이디어였지만, 그 가능성이 충분히 활용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완전히 의미 없는 시도라고 보기는 어렵다. 브라이드는 기존 프랑켄슈타인 이야기에서 짧게 등장했던 캐릭터를 독립적인 존재로 확장하려 했으며, 괴물의 연인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선택을 가진 여성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프랑켄슈타인의 신부'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고 그냥 브라이드라는 인물의 일생으로 이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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