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허스트와 인간이 만들어낸 진실

공포에 관하여

by 여린

네가 좋아할 것 같은 전시 표가 있는데, 나 대신 가줘.


데미안 허스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 전시에 다녀왔다. 현대미술 분야에는 큰 관심이 없는 편이라, 제안을 듣자마자 데미안 허스트를 검색해 봤다. 어디서 본 적 있는 것 같은 상어 사진이 나를 반겨주었다. 내 취향을 어떻게 알았지? 죽음과 부패를 표현한 포름알데히드 작품으로 터너상을 수상했다는 문구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가겠다고 했다. 그러니 데미안 허스트는 친구가 소개해 준 새 친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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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는 죽음과 영생, 과학·의학에 대한 인간의 믿음과 욕망, 예술 가치와 시장 논리를 탐구하는 영국의 현대미술가로 알려져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설명을 인용하자면 허스트는 삶과 죽음을 대하는 인간의 복합적인 감정과 욕망에 주목한다. 그에게 있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근원을 알 수 없는 불안과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존재다.


작품 전반에서 느껴지는 죽음에 대한 고찰은 가톨릭 집안이었던 가정의 환경과, 역설적이게도 의학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진 조부모님의 영향을 받았다고 추측된다. 그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 의학과 과학에 대한 맹신이라는 인간의 특성이 영생에 대한 욕망과 수집과 통제에 대한 강박적 집착을 낳는다고 해석하며, 인간이 욕망이 낳은 사회적 구조에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절대적이라고 여겨지는 이러한 가치들은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에 불과하며 진실이 아닐 수도 있지만, 인간이 가능하다고 믿는 영역에 속한다.




Section 1. 모든 질문에는 의심이 따른다


image.png <죽은 자의 머리와 함께>, 1991


왼쪽의 웃고 있는 남자는 16세의 데미안 허스트, 그 옆의 눈을 감은 잘린 머리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시체다. 이 사진은 데미안 허스트가 미생물학을 공부하는 친구를 따라 간 시체 안치소에서 몰래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 데미안 허스트는 웃고 있지만 실은 공포에 질려있었다고 한다.


시체 안치소의 풍경을 상상해 본다. 적정 온도를 유지하기 위한 서늘한 공간, 부패하는 시체의 냄새, 그 모든 것들에 둘러싸여서도 웃음을 지어야만 했던 이유는 강해 보이기 위해, 혹은 이미 죽은 자들이 자신을 해치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그러니까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를 웃음으로 이겨내기 의함일 것이다.


image.png <논리가 죽을 때>, 1991


1부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작품은 이것이다. 모자이크 된 사진 한 장, 책상에 올려진 온갖 수술 도구들은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지 못한 모양이다. 대부분 슬쩍 보고 별거 없다며 지나치는 이들 사이에서 나는 큐알코드 하나를 발견했다. 작품 설명 옆 큐알코드를 스캔하면 모자이크 된 사진의 원본인 시체 사진 하나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조금 잔인하기는 해도 원본 사진을 걸어두었다면 더 많은 이들이 이 작품에 관심을 가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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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 파일에는 해당 시체 사진에 대한 상세 설명이 적혀있다. 자살한 시체, 턱 아래에서 방아쇠를 당겨 생긴 총의 그을음 같은 것들. 나는 한때 프로파일러를 꿈꿨는데, 죽음이 어떤 상흔을 남기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진정으로 죽음을 목도하려는 자의 분석적 열정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Section 2. 우리는 시간 속에 산다


포름알데히드, 우리에게는 포르말린으로 잘 알려져 있는 용액이 담긴 유리 수조 안에 상어를 넣은 설치 작품이다. 공포를 느낄 정도로 거대한 상어는 멀리서 보면 지금도 살아있는 것처럼 입을 벌리고 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본다면 분명히 죽어있다. 죽음과 삶의 경계는 이토록 희미하다. 영원하게 보존하려 해도 인간이 가진 기술력의 한계는 그것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게 한다. 이 작품의 제목은 이러한 불가능성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image.png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1991


이 작품은 삶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옆에서 보면 마치 액자 프레임처럼 꼬리, 몸통, 머리로 분리되어 보이는데 열심히 흔들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꼬리, 실질적인 중심이자 몸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몸통, 비로소 생각할 수 있게 되며 입을 벌려 누군가를 공포에 떨게 할 수도 있지만 죽음이라는 공포 앞에서 의미를 잃는 머리까지. 죽음으로 달려가는 인간의 생애가 담겨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관람객들이 나오지 않는 사진을 찍으려고 한 자리에서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데미안 허스트는 거대한 유리로 만든 폐쇄적 구조를 자주 사용하는데, 내용물을 볼 수는 있지만 유리 너머로 개입할 수는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별로 개입하고 싶지 않을 듯하다. 특히나 이 작품이라면.


파리와 잘린 머리를 무서워하는 사람을 위해 앞서 다른 작품 이미지를 하나 더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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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1990


상자 안에서 부화한 파리들은 피 흘리는 소의 머리를 찾아 옆 유리 상자로 이동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살충기에 걸리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생명의 시작과 끝, 본능과 욕망을 시각화한 이 작품은 인류의 역사와 자연의 생태계에서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반복되었고, 앞으로도 반복될 삶과 죽음의 섭리를 보여준다.


날아다니는 수백 마리의 파리들과 잘린 소 머리의 단면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비위가 상한다는 듯 표정을 찌푸렸다. 그들은 다시 처음에 봤던 상어나 다시 한번 보기 위해 이동한다. 나는 그저 궁금할 뿐이었다. 이 소 머리는 부패되지 않게 처리한 걸까? 갑작스럽게 유리가 사라지며 파리 떼가 전시장을 온통 소란스럽게 만드는 상상을 했다.




Section 3. 침묵의 사치


KakaoTalk_20260324_153659781_19.jpg <죄인>, 1988


죄인은 데미안 허스트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만들어진 작품이다. 단편적이지만 작가의 삶을 가장 긴밀하게 엿볼 수 있는 작품이지 않나 싶다. 할머니의 약장은 항상 국민보건서비스(NHS)의 약품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는데, 그에게 이는 절대적 믿음이 투영된 일종의 제단처럼 보였다고 한다.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다는 말과 의학에 대한 믿음은 비슷한 듯 상충되는 지점이 있다. 어떠한 맹신자들은 약의 효과를 믿는 대신 열심히 기도하면 병이 나으리라고 생각하기도 하지 않는가. 그런 사람들과 달리 약에 의존하는 믿음이란, 그 모습이 마치 죄를 짓고 신에게 기도하는 사람들처럼 보였을 것이다.


KakaoTalk_20260324_153659781_13.jpg <그래, 그런데 네 진짜 기분은 어때?>, 1996


해당 작품의 의도는 아직도 모르겠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해골들이 모두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밀한 모양과 자국까지 동일하다.


image.png <신의 사랑을 위하여>, 2007


인간의 두개골을 백금으로 주조해 8,601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작품으로 치아는 실제 인간 해골의 것이다. 영원함과 아름다움의 상징인 다이아몬드와 죽음을 의미하는 해골의 조합이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삶의 무상함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작품명은 어머니가 자신의 새로운 작품 계획을 듣고 내뱉는 감탄사 "For the love of God!" 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데미안 허스트가 자신이 다루어온 죽음을 신에게 바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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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해부학>, 2008


전시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다. 데미안 허스트는 천사, 유니콘 등 영원해 보이는 신화적 존재들조차 유한한 존재로 해석한다. 신성하게 여겨지는 존재들도 데미안 허스트의 해체를 거치면 뼈와 살로 이루어져 있음이 드러난다. 그가 보는 현세에는 마치 영원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영원도, 죽음도, 욕망도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임이 인간의 형상을 한 반쪽짜리 천사의 모습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KakaoTalk_20260324_153610519_25.jpg <신의 무한한 권능과 영광을 묵상하며>,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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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마리의 나비로 중세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재현한 삼면화다. 나비는 전통적으로 인간과 영혼의 부활을 상징한다. 정말 좋아하는 작품에서도 주인공이 나비의 속삭임을 따라 불멸의 삶으로 이끌려가는 장면이 있다. 멀리서 보면 아름다워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나비로 이루어져 있는 이 작품은, 죽음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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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르톨로메오, 극심한 고통>, 2007




Section 4. 작가의 스튜디오: 진행 중인 연작 <리버 페인팅>


3부까지 보고 이 전시실을 찾지 못한 채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다. 이 공간은 런던에 위치한 데미안 허스트의 작업실인 '리버 스튜디오'를 재구성한 공간이다. 멋모르던 시절 그저 유명한 곳이라고 방문했는데 관광객은 없고 비둘기만 바글거리던 어느 여름의 프랑스 퐁피두센터를 추억하게 만드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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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이 잔뜩 튄 의자를 보며 작업 도중 힘에 부쳐 소파에 털썩 앉아버리는 데미안 허스트를 상상할 수 있었다. 곳곳에 작가가 남긴 말들이 적힌 종이가 있으니 찾아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하나같이 예술에 관심 좀 있다면 공감하게 되는 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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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추천하려고 한다.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각기 다른 리버 페인팅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 한 점을 골라보는 것이다! 작가의 작업실이 구현된 공간을 의미 없이 사진만 찍어 어디다 쓸 건가? 그중 가장 내 마음에 드는 작업실의 모습을 하나 골라보자. 나는 토끼가 좋아서 작품들 중 토끼가 그려진 것으로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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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가 끝나고 디지털 참여형 프로그램인 '안녕하십니까?'에도 참여했다.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현대 의학, 약에 대한 믿음과 인간의 불안을 바탕으로 관람객이 자신의 고민을 기록하고 시각화해 공유하는 디지털 참여형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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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능을 원하는 만큼 선택하라면서 최대 9개까지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무한해 보이지만 유한하다는 개념은 여기서도 다를 바가 없다. (ㅋㅋㅋ)



오랜만에 관심사가 맞는 작가를 만났다. 죽음은 유한한 삶을 의미하기에 두렵고, 두려워서 매혹적이다. 인간은 불멸을 꿈꾸지만, 결국 불가능하기에 '꿈'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진실이 없다 한들 꿈속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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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허스트의 제작 연도 논란에 관한 사람들의 비판도 결국 그 역시 욕심을 지닌 한낱 인간임을 증명한다. 그의 작품에서 적나라하게 표현되는 욕망이 정작 작가 본인에게도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렇게까지 작품의 의도와 일체하는 작가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나는 결국 포르말린에 절여진 상어 엽서 하나를 구매하고 말았다. 단 돈 삼천 원에 한 상어의 유한한 생명을 살 수 있다니,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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