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능 평균 5등급, 지방 2년제 대학 호텔외식 조리학과 학생이었다.
요리를 시작하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고3이라는 민감한 시기에 잠시동안 같이 살게 되었던 사촌형이 김봉수라는 형이었다.
그 당시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나는 공부를 잘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어떤 큰 의욕도 없었다.
그런데 대구에 사촌형이 갑자기 같이 살게 되었다.
매일 새벽에 나가서 해가 지고 자정이 되어서야 들어오는 그 형은 항상 웃고 있었다.
처음 생겼던 카카오톡이라는 것으로 에드워드 권이라는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고 나한테 기쁜 표정으로 보여주었지만 나는 별 느낌이 없었다.
몇 개월간, 같이 생활을 하다가. 형이 뉴욕 혹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형과의 시간은 끝이 났다. (나는 까다롭고, 마음이 좁아서 같이 사는 동안 형과 다툰 적도 있었다.) 그때 형이 마지막으로 해 주었던 음식은 돼지 김치수육이었다.
그 해에 학교를 정해야 하는 시기가 왔음에도.
내 수능 성적도 어정쩡하고, 하고 싶은 것도 정확하게 없었다.
단지 사촌형이 그렇게 오랜 시간 일하면서도 항상 즐거워 보였다는 점과 내가 먹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요리해 볼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성적에 맡는 곳을 찾던 중.
경주에 서라벌 대학이라는 곳에 정시 2차나 되어서야 들어가게 되었다.
학교생활은 특별한 것이 없었고.
그렇게 1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추석기간을 이용해 서울에 잠시 올라왔다 내려가는 길에 아버지께서 책 한 권을 주셨다.
‘꿈을 요리하라 ’라는 책이었는데.
외신기자이신 아버지께서는 항상 나에게 좋은 신문기사와 글들도 따로 편집해서 주셨고.
나는 읽지도 않고, 쌓이면 버리고 쌓이면 버리는 아들이었다.
그 책을 주신 그날은 어떻게 그랬을까.
특별한 날이었다.
핸드폰 배터리는 꺼져버렸고. 졸리지도 않고.
경주까지 가는 시간은 아직 3시간이나 남아있었다.
결국 책을 펼쳤고.
그날 버스에서 오는 동안. 버스에서 내려 학교 기숙사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그리고 기숙사에 도착해서 새벽까지. 그 책을 다 읽었다. 그리고 아침까지 잠에 들지 못했다.
책의 내용은 25살 요리를 좋아하던 청년이 호주의 도축공장에서 돈을 벌어 세계를 돌아다니며 최고의 셰프들에게 “ 당신에게 요리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하고 다니는 것이었다.
레스토랑 앞에 텐트를 치고 만나줄 때까지 기다리며 결국 스페인의 엘 불리라는 그때당시 세계 1위의 최고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고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 가는 내용이었다.
큰 의욕 없이 학생 생활을 하던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고, 한 마디로 장명순이라는 요리사는 멋있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돌아다니며 결국 세계 최고라는 곳에서 요리를 하게 되었다.
그 해 겨울 장명순이라는 요리사를 서울에서 만날 수 있었고.
두 번 세 번 만남동안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다음 해에 학교에 취업계를 내고, 서울의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에 실습을 하게 되었다.
칼질도 제대로 못하고, 조리에 대한 기본 상식도 부족해서 아마 일을 못했었다.
메인 핫 주방에서 실습을 했었는데. 그때 막내로 일하던 형이 그만두면서. 새로운 파트타임 요리사를 뽑게 되었는데. 같이 실습을 하던 형들 중에는 아무도 이곳에서 일을 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고. 조리장님께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을 때. 처음에는 거절당했다.
아무래도 칼질도 서투르고, 학생이고, 21살 인 나에게 메인 주방에서 못 버틸 거라고 생각하셨을 거다.
그래도 계속하고 싶다고 말씀드리면서 한 달 실습을 더 연장해서 하게 되었다.
나에게 호텔은.
손님들에게 나갈 때는 아주 깨끗하게 잘 다려진. 어떤 자국 하나 없는 옷을 입고 잔잔한 미소와 함께 음식을 서비스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주방에서의 호텔 요리사는 항상 뜨거운 김과 끓인 고기의 잔류물 냄새 거르다 튄 소스 자국. 뜨거운 튀김기 앞에서 몇백 킬로의 고기를 서서 하루종일 튀기고 있는 곳이었다.
한 달 더 실습생으로 근무하면서
막내인 나의 주 업무는 물건을 타오고, 선배 요리사들이 일하는 밑 준비를 해주어야 했다.
내가 근무하던 메인 핫 주방은 요리사들에게는 가장 메인이 되는 조리장이었고.
항상 호텔의 큰 행사들을 진행하였다.
80명의 요리사(총괄 셰프, 메인 셰프, 어시스트 셰프, 파트 셰프, 퍼스트 쿡, 세컨드 쿡, 써드 쿡, 파트 타이머, 실습생)가 한 번에 500명에서 800명의 손님들에게 한 번에 서비스하는 장면은 정말 장관이었다.
하지만 10개월간의 근무 중에 정식으로 직원이 되는 시험에서 나는 응시조차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군대에 다녀오지 않은 내가 정직원이 될 수 있는지 당시 조리장님께서 인사팀에 확인해 주셨었고,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고 1주일 후 호텔을 그만두게 되었다.
마지막 날.
그간 일하면서 얼굴을 익혔던 모든 분께 인사를 드리며 돌아다니다가 조리 사무실에 메인 셰프님께 인사드리는데.
메인 셰프님께서 해 주셨던 말은.
“그만두는 날에 그렇게 밝게 웃으면서 인사하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다.”라는 말을 해주셨다.
그렇게 해군으로 군대를 가게 되었다.
배를 타고, 군대 생활을 하면서,
항상 유학이란 것을 해보고 싶었다.
무언가 외국에 너무 나가보고 싶었다.
무작정 준비를 하던 중에.
1년 전 읽었던 장명순 셰프님의 꿈을 요리하라라는 책이 생각났고.
스페인을 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복무를 마치고.
그래도 학교는 마쳐야겠다는 생각에.
마지막 학기를 마치러 학교에 다시 복귀하였다.
1개월가량 다시 학교를 다녔지만.
너무 근질근질하고, 요리를 하고 싶었고, 장명순 셰프님의 책에서 읽었던 그 경험을 나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항상 조금 무작정 일을 벌인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데.
이때도 그러했다.
복무기간 중에 스페인에 대해서 검색하던 중.
마르틴 베라사테기(MARTIN BERASATEGUI)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마르틴 베라사테기는 스페인 산 세바스티안(San sebastian)이라는 곳에 있었고.
미슐랭 3 스타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
산 세바스티안이라는 곳은 프랑스와 스페인이 만나는 국경 지대에 위치한.
다른 이름으로 미식의 도시라는 이름을 가졌고.
인구수로 계산되었을 때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슐랭 별을 가진 도시이다.
작은 도시이지만 바다가 있고, 작은 산들이 있고.
자신의 삶의 자부심과 유쾌함을 가진 바스크인이라는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그 당시 나는 미슐랭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다이닝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단지 식사를 하고 온 사람들의 글들을 찾아보았고.
한 글에서.
식사 후 정말 행복했다는 글을 보았고.
마르틴 베라사테기 예약메일을 하게 되었다.
날짜는 거의 2년 후였다.
레스토랑에서 정말 그때 올 것이냐 라는 메일을 받았고.
“네. 무조건 갈게요.”라고 답을 보냈고.
그 2년 후 정말 특별한 인연이 되었다.
마지막 학교생활 때로 돌아와서.
학교가 너무 지루했던 나는 호주에서 요리하던 고등학교 시절 나에게 요리라는 것에 대한 흥미를 일으켜주었던 봉수형에게 메시지를 보내어 어디서 일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물었고.
봉수형은 장진모라는 셰프님을 한번 찾아가 보라고 말씀해 주셨다.
갑자기 연락을 드렸고.
셰프님은 만나기 전에 나에게.
일은 힘들 거고, 돈은 못 주니까. 안 하는 게 좋을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다 괜찮다고, 좋다고 말씀드렸고.
셰프님을 뵙게 되었고.
짧지만 가장 깊은 2개월을 보내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다이닝이라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그저 열심히 가르쳐주는 것을 배웠다.
시키시는 것을 했고.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시는 셰프님이 너무 좋았다.
레스토랑 일과는 별개로 주말마다 어떤 회사에 이벤트적으로 브런치를 준비해 주었는데.
약 한 달 정도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기본 서비스를 하면서 금요일 서비스를 마친후에 토요일 브런치 준비를 하고. 새벽 6시 정도에 행사장으로 출발해서 브런치 식사를 만들어 드린 후에 마친 후 업장으로 복귀. 토요일 서비스를 하고, 밤에는 다시 일요일 브런치 행사를 준비. 그 후에 오전 6시 다시 행사장으로 복귀 후 브런치를 준비해 드린 후 일요일 저녁에 잠시 집에 가서 쉬고 다시 월요일부터 같은 일을 반복했었다.
대부분 새벽 4시경 일을 마치고 2시간 혹은 3시간 정도 쉬다 갔었는데.
어느 하루는 서비스도 늦게 마치고, 다음날 아침 준비도 늦어져서.
딱 6시 15분에 잠들면 다시 못 일어나겠지 하면서 그때 레스토랑의 수 셰프와 같이 바닥에 누워 뜬 눈으로 6시 30분 출발시간까지 버텼던 적도 있다.
이 기간 덕분에 스페인에서 하루 16시간에서 18시간 근무를 그나마 익숙한 상태에서 버틸 수 있었다.
그때를 기억해 보면. 제대로 누울 곳도 없는 레스토랑의 지하 창고에서 주의 대부분을 보냈는데.
그날 서비스를 마친 후 셰프님께 인사를 드리러 사무실에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인사드린 후에. 무언가 하고 계실 때 옆에 앉아 있으면.
자기 일을 계속하시다가 갑자기.
넌 이거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냐 물어봐 주시면서.
여러 가지를 보여 주셨고.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세계 최고 셰프라는 사람이 100명에게 요리를 했을 때에도.
그 셰프가 담은 의도에 대해서 이해해 주는 사람이 몇 명 되지 않는다는 말씀이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셰프님께서 기절해서 책상에 엎드려 있으시거나.
목을 꺾으시고 뒤로 젖혀계셨다.
앉아서 매트리스 위에 올려드리고. 나는 그 밑에서 집에서 가져간 이불을 대충 깔아 잠을 잤다.
(아마 그 셰프님은 이 이야기를 싫어하시겠다.)
그렇게 좋았던 시간도 빨리 지나갔다.
원래 3개월 간만 일하기로 했던 시간은 다가왔고.
장진모 셰프님과 문병철 수 셰프 그리고 스타지로 3명 혹은 4명으로 맞춰 일하던 주방에 정식으로 직원형이 들어오면서 나 스스로는 짧지만 깊은 시간을 보내고 마무리하게 되었다.
물론 2개월간의 기간 중에 많은 큰 잘못들도 있었다.
다이닝에서 손님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조리하는 사람에 식재료에 대한 태도. 일하면서의 마음가짐. 하지 말아야 할 것. 유통기한의 관리. 선입선출이 얼마나 중요한지.
좋은 시간 동안 많은 실수를 하였지만.
항상 장진모 셰프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많이 참아주시고. 많이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잘 대해주셨다.
앤드 다이닝에서의 스타지를 마치고. 군대 상병시절 정말 멋도 모르고 예약한 마르틴 베라사테기 덕분에.
복무중에 모았던 돈, 제대 후 스타지 기간 중에도 틈틈이 모아 1000만 원의 유학 비용을 준비할 수 있었다.
꼭 해보고 싶었던 유학은.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이렇게 3곳의 후보가 있었고.
느껴지기에 무언가 정열이 넘치는 나라 스페인을 선택했다.
유학원을 통해 지역과 학교를 정하던 중.
산 세바스티안이라는 지명을 보게 되었고, 산 세바스티안이라는 이름이 느낌이 좋아서 유학지로 선택했다.
그곳으로 7개월의 어학연수를 떠나게 되었다.
그렇게 유학길에 올랐지만.
나의 스페인어는 하나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산 세바스티안에 도착해서 며칠간은 호스텔에서 지냈는데.
도착해서 이틀 후 마르틴 베라사테기의 예약한 날이 다가왔다.
사실 가는 길을 미리 알려고.
도착해서 하루 만에 버스를 타고 이미 레스토랑의 위치를 보았었다.
점심 서비스 30분 전 이미 도착했고.
15분 정도 전에 레스토랑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르틴 베라사테기는 손님이 입장하는 타이밍에 맞혀서 문을 아주 완벽하게 열어주며 인사를 한다.
식사를 하는 공간에서 바깥 테라스를 보았을 때 테라스 앞으로 푸른색의 작은 언덕이 있는데.
식사를 하면서 푸르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다.
마르틴 베라사테기는 13가지에서 16가지 정도의 코스요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레스토랑에 들어와 식사를 하면서.
벼락을 맞은 느낌이었다.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수준 높은 식사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놀랐다.
지금도 이해도가 부족하고.
그때는 더 몰랐지만.
이게 대단한 것이구나라고 막연히 느껴졌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쳐갈 때즈음.
마르틴이라는 셰프님이 너무 뵙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담당 서비스를 맡아주신 분께 혹시 잠시 인사를 드릴 수 있겠냐고 물었고.
식사를 마친후에 살롱에서 잠시 가능하다고 말씀해 주셨다.
살롱에 앉아서 기다리는 동안 너무 긴장되어서 손이랑 다리랑 다 떨고 있었는데.
사진으로 보던 것과 똑같은 사람이 나와서 웃으며 인사해 주었다.
옆에는 후에 정말 친했던 호세라는 홀 치프가 통역을 위해 같이 와 주었다.
그리고 식사를 하면서 계속 들었던 생각을 덜덜 떨면서 말씀드렸다.
저는 한국인이고. 짧은 시간이지만 계속 요리를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식사를 하면서 정말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돈이나 다른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단지 이곳에서 배우고 싶습니다.
셰프님은 통역을 들으시고 잠시 생각을 하셨다.
그리고 씩 웃으시면서 여기 일이 정말 힘들 텐데 괜찮겠냐고 말씀하셨다.
괜찮다 말씀드렸고.
"Si, PORQUE NO!!"
“그래.! 그럼 일해.”
딱 한 마디 하시고. 또 다른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돌아가시며 악수를 해 주셨는데.
그 손이 나무껍질처럼 너무 까끌까끌하고 거칠었다.
아직도 손 느낌이 선하다..
나는 옆에서 축하한다. 같이 열심히 해보자는 홀 매니저의 말과 명함 한 장을 들고 그날 숙소에 돌아왔다.
하지만 바로 마르틴 베라사테기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스페인 레스토랑이 그렇지만.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이 영어를 알아도 서투르고. 굳이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스페인어를 준비하지 않고 왔고. 레스토랑 인사업무를 담당해 주던 조슈아라는 친구에게는 큰 문제점이었나 보다.
한 달간 4번 정도 직접 통화를 할 수 있었는데.
내 스페인어는 형편없었고.
나의 영어회화도 그리 수월하진 않았다.
그렇게 1달 정도 계속 연락을 하면서. 점점 일할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져 갔다.
학교에서 제공해 준 기숙사에서의 마지막주가 되어 집을 새로 구해야 하지만.
레스토랑에 만약 들어가게 되면 숙소가 배정되기 때문에 계약할 수도 없는.
아주 애매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조슈아에게 연락이 왔다.
미안하지만 안 될 것 같다고. 우리는 지금 사람을 구하지 않는 중이라고.
혹시 내년에는 가능하다고.
나중에 직접 보았지만. 마르틴 베라사테기의 인사 테이블에는 지원 서류가 정말 쌓여 있었다.
(메일로는 어떨까..)
그렇게 알겠다 말하고 침대에 누웠다.
이불을 덮어쓰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 저는 되지 않을까요, 제발 되게 해주세요.
...
한 시간 후, 다시 전화가 왔고. 받았다.
조슈아였고. 살짝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내용은.
자기 선에서 이번 달 스타지가 이미 다 배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렵다 이야기했었는데.
마르틴한테 가서 보고하던 중에 나의 이야기를 했고.
마르틴이. “내가 일 하라고 한 애라고. 일 시키라고.”
그렇게 마르틴이 말했다고 전해주며 언제까지 오면 좋겠다고 말해 주었다.
그렇게 다시 레스토랑에 방문하여 주방도 볼 수 있었고. 마르틴을 만났다.
재미있는 건.
스페인에서도 악수를 많이 하는데. 아마 온 유럽에서.
한국식 악수는 아주 가볍게 상대방에게 실례되지 않는 악수를 하는 것이지만.
그렇게 마르틴에게 악수했을 때. 이건 뭐지.? 하는 눈빛과 함께 다시 아주 부서질 듯이 꽉 내 손을 잡아 주었다.
인사 담당자 조슈아와 이야기하던 중.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내 스페인에서의 비자는 어학원을 등록한 7개월이었고. 만약 학교를 다니지 않을 시에 내 비자는 성립되지 않았다.
주 20시간 수업에 참여해야 비자의 효력이 발생하는.
마르틴 베라사테기에서는 남들과 똑같이 일하지 못하면 일할 수 없었고.
나는 우선은 보류라는 말을 다시 듣고 학교로 갔다.
내 어학 담당 선생님께 말씀드렸고.
학교장님과 마르틴 베라사테기의 조율 끝에.
그 달과 다음 달에 4개월분의 수업을 다 몰아서 듣고. 7월부터 9월 말까지 레스토랑에서 스타 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조슈아에게 부탁받은 건. 스페인어를 좀 더 잘해서 오면 일하기에 수월할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고.
다음 한 달간. 유치원 수준도 안 되는 내 스페인어는. B2 수준으로 올라 있었다.
그 한달간 짧게 좋아했던 여자애의 한 마디가 결정적이었다.
" 난 똑똑한 사람이 이상형이야 "
그 다음주 언어 시험을 준비하며 3일간 '현재완료, 과거형, 미래형의 모든 스페인어를 다 외우고, 시험에서 98점을 맞았다. '
그리고 7월 1일 마르틴 베라사테기에서의 첫날이 시작 되었다.